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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소설인지 아닌지부터 헷갈리는 소설.
소설 자체로만 보면 괜찮은 편이지만
이후 스치듯이 본 해당 출판사 관련 기사 때문에 썩 마음은 좋지 않았더랬다.
결국 이도 저도 다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지만.
요즘 들어 종종 하는 생각이 있다.
과연 사람의 속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것.
그러니까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대거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속성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고
누구에게나 적당히 친한 척을 하며 좋게 지낼 수 있는 속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늘 화를 내는 저 사람의 속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생각의 끝은 늘 나에 대한 생각으로 끝나게 된다.
나. 나의 속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극단적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은 2015년(사적으로 만난 사람이 1명이니 말 다했지)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느낀 속성은 '아무 것도 없다' 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어떤 이야기를 그려도
결국 들은 것을 그럴싸하게 재조합해서 내는 것 뿐이고
이제 와 하늘 아래 무엇이 새로운 게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 것도 없기에 직장과 나를 더욱 분리할 수 있는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소설에 그려진 것 같은 유형의 사람을 보면 꽤나 생경한 것이다.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언가.
내가 끝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줄기차게 운동권의 속성을 이어가는 이유는 대체 무얼까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또 어떻게 만들어진 속성이고
그렇지 못 한 사람은 또 무얼까
어느 쪽이 되었든간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사람이 안에서부터 겉까지 일관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래가 다면적인 게 인간이니 말이다
헌데 기왕지사 그렇게 일관되지 못 할 거라면
본문 중 등장하는 문장처럼 뻔뻔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일이다.
하루를 마감할 때마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되짚으며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게 말이다.
p.s.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80~90년대의 이야기라면
디마이너스는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쯤으로 넘어온 듯 싶다.
(아닐 수도 있다. 날짜감각이 없는 인간이라)
과연 이 시기 이후에는 어떤 모습이 그려질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