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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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이 책이 창의력 개발 서적을 연상시키게 하는 표지를 갖고 있을 무렵

   학교 도서관에서 도전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바로 덮어버렸다. 

   전쟁과 살인. 그것에 무뎌져야만 하는 설정이 무거웠던 게 첫째 이유이겠고

   둘째 이유는 표지와의 괴리감(?)을 견디지 못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표지 때문인지 아니면 쌍둥이와 비밀노트 라는 요소 때문인지

   당시의 난 정말 동화를 기대하고 이 이야기를 접했더랬다.

   1부를 채 읽기도 전에 그 기대는 깨져버렸지만.

 

2. 사실 지금도 굉장하다거나 이런 걸작이?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묘하다 는 인상 뿐. 무엇도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무엇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왜 그들이 헤어졌는지 왜 그가 거짓말을 했는지 알려주는 듯 하지만

   명확하게 정의내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묘하다 싶은 점.

   왜 모든 이야기들이 뚝뚝 끊겨 있는 걸까.

   이러한 설정에 이 정도 두께라면 꽤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를테면 전쟁에 혼자 남겨지게 된 한 아이가 어른들의 온갖 추악한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어쩌고저쩌고

   헌데 이 쌍둥이의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단지 쌍둥이의 기억으로만 남고 심지어 기억마저 제멋대로 날조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남는 것은?

   독자인 내가 아니라 쌍둥이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3. 어릴 적부터 기억력이 좋지 못 해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재독 습관이 생긴 것도,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다 이 건망증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책을 읽어도, 어떤 것을 보아도 그저 단편적인 잔상만 남길 뿐

   서사가 되진 못 한다. 만화가를 꿈꿨던 예전에 누군가 왜 만화를 그리려고 하냐고 물었을 때

   이야기가 쓰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자 그 누군가가 그럼 소설을 쓰지 그랬어 라고 답한 적이 있

   었다. 아마 지금이라면 내게 있어 이야기는 잔상과 잔상으로 연결되는 거라 길어진 문장을 쓰

   지 못 한다. 그래서 그리려고 한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에서 느껴지는 것 역시 그와 비슷하다.

   분명 글자의 형태를 가지고 문장이 되어 있지만 단편적인 이미지의 집약체.

   그 이미지가 진실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채 그냥 뒤섞여 버린 것들.

 

4. 그러다보니 드는 생각은.

   어쩌면 모두 죽어버린 누군가의 상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3부에서 드러나는 몇몇 인물들의 악의 탓일 거다.

   (악의 보다는 자기 방어적 심리가 아닐까 싶지만)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하여 같은 감정일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 이 마지막에 서로에게 드러낸 악의는 생각보다 많이 슬프더라.

   그래서 자꾸 없던 일 치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5. 이미지의 강렬함으로 치자면 1부가 인상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관계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선의도 아니고 악의도 아닌 감정들로 치자면

   3부가 가장 인상적인 듯.

 

6. 내 인생의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강렬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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