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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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미스터리물의 붐이 일기 시작할 때부터 몇 권(혹은 꽤 많은 양)의 책은 읽긴 했지만서도

   글쎄. 썩 강한 인상이 남은 작품이 없었다.

   딱히 일본 미스터리물이라서 그런 건 아니지 싶다.

   이유가 있다면 아마 기담은 좋아하되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싫어하는

   나의 편협한 취향 탓이리라.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넓고 크고 깊은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또 단편은 잘 읽지 않는다니 참 복잡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내 손을 거쳐 간 꽤 많은 양의 일본 미스터리물 중 살아남은 건 몇 권 되지 않으며

   살아남은 책들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2. '흑백' 의 경우 괴담에 대한 내 취향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방에서 시작하여 집으로까지 확대되는 이 스케일은

    썩 좋아하지 않는 일련의 방식을 답습한 것처럼 느껴졌고

    예쁜 것, 아름다운 것 - 이라는 식의 묘사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부분은

    '아름다워서 더욱 처연한 기담' 를 만들고자 한 기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서 미미여사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마지막 부분에서였다.

 

 

3. 상처가 있는 사람이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며 그것을 쓰다듬는다-

   굳이 문학 장르가 아니더라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도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효험이 있다고 믿어지기도 하고.

   다만 이러한 도식을 적용했을 때 짐작되는 책의 마지막은

   '결국 주인공은 상처를 이겨내고 삶을 마주하였네' 이다.

   허나 흑백은 그것과 조금 다르게 주인공을 다시금 자신의 상처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또다른 죄를 덧입혀서.

   이것이 '안주' 라는 후속격의 글을 염두에 두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막판 뒤집기 한 판으로써는 꽤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주인공이 다시 상처로 되돌아간 것이.

 

 

4. 이 책이 언제까지 내 책장에 꽂혀 있을지는 모르겠다.

   뒤집기 한 판의 효력으로 이제껏 읽어온 괴담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인식은 있으나

    내가 좋아하는 렌조 미키히코의 정사 시리즈나

    나쓰히코의 웃는 이에몬 정도의 애착은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미미여사가 다르긴 한가 보구나 하는 것.

   과연 '안주' 를 재독할 때까지 이 인상이 유지될 지는 모르겠다만 일단은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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