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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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아직 독서 취향이 확립되기 전

학교나 학원에서 필독서로 내주었던 것이 아닌 순수의지로 구매하게 된 첫 책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처음 순수의지로 구입하게 된 책은

펄벅의 대지와 지은이도 기억나지 않는 꼬마성자(우화모음집) 라는 책이었다.

 

펄벅의 대지를 알게 된 경위는 당시 학교 교지를 통해서였다고 기억한다.

교지에 한 때 같은 반이었던 아는 아이의 이름이 실렸고 그 아이가 쓴 글이었는지

아니면 그 아이의 글 옆에 있던 모르는 아이의 글이었는지 흐릿하지만

교지를 통해 누군가가 쓴 펄벅의 '대지' 를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일어 구입하게 되었다.

이후 만화에 빠져 살기 전 혹은 무라카미 류의 책들을 모으기 전까지 내가 구입한 첫 책이었다.

아마 이청준의 '축제' 와 더불어.

 

그런 최초의 기억(?) 탓인지 내가 약한 몇 가지 주제에는 '가족사' 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진 가족사에 약한 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조건을 붙인다면

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여성의 시각에서 씌여진 가족사에 약한 편이다.

그 이유가 무얼까 에 대해 생각해보면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 곳이 그녀를 억압하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하는'

그 기묘한 관계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안식과 지배. 혹은 안식과 억압.

가족이라는 집단이 그 양면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직까지는 아시아 문화권의 여자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이는 내 공통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죄와 벌' 이나 '애증' 등 전혀 다른 두 개의 얼굴이 하나의 몸뚱아리에 꿰매어진 것.

 

여성적 시선 을 좀 더 좋아하는 것은

아마 '지나치게 극적인' 것을 싫어하는 스스로의 취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성작가가 쓴 글에서 그려지는 여성형이 어쩔 수 없이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는 것처럼

남성작가가 쓴 세계사와 가족사는 어딘가 모르게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전형적으로 진부한 것들은 깨야만 한다-고 어떤 식으로든 말하는 것 같다.

전부 다- 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읽어 본 책에 한해서는 그러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글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에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내용은

내가 읽어본 중에서는 대부분 여성작가의 시선에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가 쓴 가족사에 약한 편이고

본래의 취향대로 여러 권보다는 단권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을 기억한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표지가 흥미를 끌었다.

넓게 펼쳐진 호수(아니면 저수지? 아무튼 물의 풍경)가 마음에 들었고

아름답거나 평화롭다고 할 수 없는 색채가 마음에 들었다.

물 위에 띄워놓은 몇 사람의 모습은 지우고 싶었지만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사게 된 책 중의 하나였다.

 

간결한 문장 또한 마음에 들었다.

같은 내용 여러 번 말하기나

A를 말하기 위해 B,C,D 를 말하는 그런 문장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드물게 취향에 맞는 문장이었다.(내용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마음에 드는 것은 드문 경우임)

 

더욱 마음에 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족 내의 누구의 이야기를 할 때도 작가는 스스로 설정한 그 거리를 잊지도, 잃지도 않았고

덕분에 늘 같은 곳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흔들의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작가가 그려놓은 정경에 흡수될 수 있었단 거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길다는 것.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한 것은 아닌데 책 자체가 무겁다 보니 목이 뻐근하고 손목도 아프다.

달리 생각해보면 책 자체가 긴 것이 아니라

편집시의 판형과 여백 조절 등으로 그리 된 것 같은데...

뭐 아무튼.

 

김진규 씨의 '달을 먹다'

라니 마니카의 '쌀의 여신'

등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진 가족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적극 추천하는 책.

허나 몇 대에 걸친 가족의 암흑사와 가족 내의 암투 등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읽기 전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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