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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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초상' 이라는 뻔한 말은 붙이기 싫지만

그 말을 붙일 수 밖에 없는 글...이라 말하고 싶다.

 

 

아침 나절, 미루고 미루던 영화 '한 공주' 를 본 것을 시작으로 

오늘처럼 드물게 결심이 선 때가 아니면 못 읽을 것 같은 책들을 읽기로 했다. 

그래서 '한 공주' 에 이어 집어든 책이 '눈먼 자들의 국가' 였고

뒤이어 곧바로 든 책이 '투명인간' 이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 의 경우 부분적으로 좋고 부분적으로는 이상했으며

몇몇 글에서는 지식과 교양 외에는 발견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기도 했다.

 

'투명인간' 의 경우 좋지만 가능하면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신경숙 씨를 좋아하면서도 '엄마를 부탁해' 는 아직도 읽지 않은 것과 같은 까닭이리라.

 

 

그리 모날 것도 없지만 평범하지도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와 폭력적인 남편의 모습이

나의 유년을 넘어 청년기까지 한데 공존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수없이 상처받고, 상처받은 것이 덧나 병으로 진화되어 치료까지 이어졌던 걸 보면

그 양 극단의 모습이 날 무던히도 괴롭혀왔던 건 사실인 듯 싶다.

지금은 너무도 달라져버린 모습에 가끔 꿈이었나 싶기도 하니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류의 공상을 즐기는 편이다.

이를테면 그림 그리지 말고 공부해서 사무직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기왕 그릴 거였으면 정말 죽을 고비까지 넘어가면서 그려서 뭐라도 되었다면 어땠을까

허나 늘 여러 이유에서 달리다가 멈칫 해버린 나로서는 도저히 그 끝을 떠올릴 수 없다.

물론 떠올려봤자 지금과 별 차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또 한 가지의 공상이 늘고 있다.

이제 와 조금씩 평화를 찾아가고 있는 모습에 드는 의문

차라리 자식에게 덜 헌신적이고, 아내에게 좀 더 좋은 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도 같이 상의하여 같이 결정하는 그런 사이였다면

아직까지도 짐으로 남아있는 많은 문제들이 아예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제 와 평화가 찾아드려는데 우리 가족은 슬슬 끝이 보이고 있다.

슬프지만 현실인 사실 앞에서 자꾸만 시간과 죄

내가 받은 상처와 내가 준 상처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가정을 보고 자랐다는 것은 나의 상처겠지만

그에 대해 줄곧 무애정으로 앙갚음 해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 죄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사죄해야 하나.

당신이 먼저 준 상처이니까 뻔뻔하게 퉁치자며 덤벼들어야 하나.

 

아니면 이렇게 환부는 덮고 모른 체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유야무야 용서한 척 되어버리는 걸까.

 

여전히 끝을 보지 않고 멈칫해 버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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