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첫날에 모든 집안일을 몰아서 하고
다음 날은 좀비처럼 바닥에 늘러붙어 있었다.
작업은 한 컷 정도 그렸나...
써놓고 보니 좀비가 아닌
전자렌지에 너무 오래 돌려진 떡 같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연휴 셋째 날인 오늘은
그나마 정신이 좀 드는 거 같아서
아침부터 일어나 다시 쌓인 빨래를 돌리고 정리하고
그간 방치 중이던 영어교재도 다시 보고
새로 산 그림책이랑 천일야화도 조금씩 들여다보다가
sns서 기후위기 글을 읽고 무력감을 느끼다가
어쨌든 오늘은 작업을 하자 싶어 책상 앞에 앉은 상황.

혼자 산 지는 5개월.
가정폭력사건이 터진 지는 3개월
부모님이랑 연락 끊은 지는 2개월 정도 지났다.
명절이고 하니 연락을 드릴까 말까 하다가
결국 드리지 않기로 했다.

원망, 분노 등의 감정이 남아서는 아니다.
단지 내가 지난 이십여년간 들어온 그 하소연들이
내가 전화를 거는 순간 재개될 것이고
난 더이상 그것을 버틸 힘이 없다는 것 뿐.

과거의 재조립을 위해 그리고 있는 만화는
얼추 마무리 되어가는 단계이다.
친구는 다 그리면 부모님은 힘들더라도
언니, 오빠 에게는 보여주는 게 어떻냐 물었고
상담선생님도 그 의견에 부정적이진 않았다.
난 잘 모르겠다. 보여주고 싶은지 어떤지.

10여년전 처음 상담치료를 받았을 때
상담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그렇게 힘들다면 그냥 외면하는 방법도 있을텐데
왜 그렇게 둘 사이를 원만하게 하려 하냐˝

당시에는 말리지 않으면 엄마가 맞을 테니까 가 이유였다.

어제 바닥에 떡처럼 늘러붙어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족을 사랑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난 부모님이 싸우지 않는 걸 보고 싶었고
둘이 너무 사이가 좋아 내가 방해꾼처럼 느껴지길 바랬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그로 인해 좋았던 기억도 모두 휘발되었으며
내게 있어 그들의 인상은 ‘진짜 이기적인 사람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아마 이십여년 전의 나는
이런 결말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본인들이 자초한 거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난 그들 사이에서 할 만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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