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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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악이 함께 하는 까닭>
P427 순자가 악론을 전개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자는 법과 제도적 통제가 가져올 폐단을 경계했던 것이지요. 나아가 사회의 질서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나라 자발적인 공감과 동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를 계승한 법가의 이론이 바로 이점을 간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가가 단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28"난세의 징조 (악론편)"
난세의 징조는 그 옷이 화려하고, 그 모양이 여자같고, 그 풍속이 음란하고, 그 뜻이 이익을 좇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그 음악이 거칠다. 그 문장이 간사하고 화려하며, 양생 養生에 절도가 없으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그러나 태평시대에는 이와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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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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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설의 이해와 오해>

P414 맹자의 성선설이 천성과 천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순자의 성악설은 그의 사회론을 전개하기 위한 개념이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선악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이란 DNA 의 운동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 DNA의 운동은 자기 自己의 존속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닭이 먼저냐? 게란이 먼저냐?" 라는 질문에 대하여 윌슨은 단연 계란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닭은 계란 속의 DNA 가 자기의 존속을 위하여 만들어낸 생존기계일뿐입니다.

P415 인간의 모든 욕망도 이 DNA의 존속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식욕과 성욕이 이 DNA의 활동인 것은 물론입니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활동도 일정한 수의 화학적 및 전기적 반응의 총체적 활동을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DNA의 생존을 위한 장치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무는 먹줄을 받아 바르게 됩니다.>
P424 순자가 맹자에 비해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순자는 예 禮 (예절 예), 즉 제도의 의미를 높게 평가함으로써 오히려 맹자에 비하여 문화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가가 치인 治人에 앞서 수기 修己를 요구합니다. 이 경우의 치인이 순자의 체계에서는 예 禮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점에서 순자는 수기보다는 치인을 앞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수양에 앞서 제도의 합리성과 사회적 정의에 더 큰 비중으로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훌륭한 규범과 제도가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도덕성의 근원을 사회제도에 찾는 순자는 주지주의 主知主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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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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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하늘은 하늘일뿐>

P404 순자는 예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맹자 계통)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를 계승하여 예를 중요시 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공자의 예와는 달리 선왕의 주례가 아니라 금왕 今王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안정기에는 예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변혁기에는 사회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P405 순자가 유가학파로부터 배척당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의 천론 天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자의 천 天은 물리적 천입니다.

인간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유가의 전통적 천인 도덕천 道德天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는 종교적인 천, 인격적인 천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능동적 참여>

P408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천명합니다. 천 天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천론은 당시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천문학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에 있습니다.

P409 인간의 적극의지와 능동적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P411 주희의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이학입니다. 그런 이 理 (다스릴 이)는 매우 복잡한 철학적 주제이지만 쉽게 이야기한다면 바로 천 天입니다. 말하자면 이 理는 천리 天理입니다. 모든 사물에 내재되어 있으며, 세상을 관통하고 잇는 최고의 원리이자 규범이 이 理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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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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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워야?>

P383 자본주의 발전과정이 곧 제 齊 (엄숙할 제) 나라와, 진 晉 (나아갈 진) 나라가 추구했던 부국강병의 과정을 반복한 것이 사실이지요.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와 처참한 죽음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살리는 자본 축적의 돌파구가 되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29년의 세계공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스의 처방때문이 아니라 전시경제 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체제입니다.

P386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하다>

P388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물든다는 것은 곧 묵자의 사회문화론이 됩니다. 물건을 많이 소비하는 것이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나라가 그렇게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P390 자본주의 체제하의 생산과 소비수준은 한 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그 규모가 결정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축적 논리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소용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 운동의 일환일 뿐입니다.

P393 공전 攻戰 (칠 공, 싸울 전) 과 별애 別愛 는 존재론적 논리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배타적으로 강화하려는 강철의 논리입니다. 전쟁과 병합은 기본적으로 존재론적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적 구성원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사회적 혼란은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을 묵자는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국 國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가 家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몸 身만을 생각하는 것이 존재론적 논리입니다.

P394 (묵자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상호관계를 강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겸애와 함께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관계의 본질을 상생 相生으로 규정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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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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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P376 애인약애기신 愛人若愛其身 (若 같을 약) 이 그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묵자의 하느님 사상(天志)은 기독교의 사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공회대 정보과학관 휴게실에 겸치별란 兼治別亂 (兼 겸할 겸) 이란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내가 쓴 글씨입니다.
겸애하면 평화롭고 (治) 차별하면 어지러워진다는 뜻이며 물론 묵자의 글에서 성구한 것입니다.이 別이야말로 공동체적 구조를 파괴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악이라는 것이지요.

P377 "큰 나라가 약소국을 공격하고, 큰 가 家가 작은 가를 어지럽히고, 강자가 약자를 겁탈하고,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억압하고, 간사한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신분이 높은 자가 천한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의 세계질서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마라>

P381 묵자께서 말씀하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전쟁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전쟁이야말로 흉물임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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