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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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 형수님께, 1982,2.9>

P233 철야의 어둠이 평단의 새 빛에 물러서는 이 짧은 시간에, 저는 별이 태양 앞에 빛을 잃고 간 밤의 어지럽던 꿈이 찬물가득한 아침 세숫대야에 씻겨나듯이, 작은 고통들에 마음 아파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청산하고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생각에 잠겨봅니다.

<따순 등불로 켜지는 어머님의 사랑 – 어머님께, 1982,4.30>

P243 돌과 돌이 부딪쳐 불꽃이 튀듯이 나(我)라는 생각은 ‘나’와’처지’가 부딪쳤을 때 공중에 떠오르는 생각이요. 한점 붙티에 지나지 않는 것, 그 불꽃이 어찌 돌의 것이겠는가, 어찌 돌속에 불이 들어었다 하겠는가고 싯다르타는 가르칩니다.

‘나’라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에 억눌려 무척 작아졌을 때 일어나는 불티같은 순간의 생각이며 물에 이는 거품 같은 것, 찰나이며 허공인 나를 버림으로써 대신 무한히 큰 나를 얻고, 더 큰 고통을 껴안음으로써 작은 아픔들을 벗는 진지(眞智)와 해탈은 불꽃을 돌에 돌려주고 거품을 물에 돌려주고 빈비사라 왕의 마음을 백성들의 불행에 돌려주려는 싯다르타의 뜻과 한 뿌리의 열매입니다.

<바다에서 파도로 만나듯 – 아버님께, 1982.5.25>

P246 새의 울음소리가 그 이전의 정적없이는 들리지는 않는 것처럼 저는 이 범상히 넘길 수 없는 소외의 시절을, 오거서의 지식이나, 이미 문제에서 화제의 차원으로 떨어진 철 늦은 경험들의 취집에 머물지 않고, 이러한 것들을 싸안고 훌쩍 뛰어넘는 이른바 ‘전인적 체득’과 ‘양묵’에 마음바치고 싶습니다.

<환동 – 아버님께, 1982,6.5>

P248 아버님의 자상하신 옥바라지에 비해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제 자신이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나 이 부끄러움이 때로는 다음의 정진을 위한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되기도 한다는 것으로 자위하려 합니다.

그것은 (정향 선생님의 행초서의 경지, ‘환동’) 물이 차서 자연히 넘듯 더디게 더디게 이루어지는 천연함이며, 속이 무르익은 다음에야 겨우 뺨에 빛이 내비치는 실과 같아서 오랜 풍상을 겪은 이끼 낀 세월이나 만들어낼 수 있는 유원함인지도 모릅니다.

<저마다의 진실 – 계수님께, 19827.13>

P256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이며 순수한 의미의 관찰, 즉 대상으로부터의 완전히 독립된 가치중립적인 관찰이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 형수님께>

P259 열 다섯해는 아무리 큰 상처라도 아물기에 충분한 세월입니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을 시종 자신의 상처 하나 다스리기에 급급하였다면, 그것은 과거 쪽에 너무 많은 것을 할애함으로써 야기된 거대한 상실임이 분명합니다.

세월은 다만 물처럼 애증을 묽게 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옛 동산의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 것’ 또한 세월의 소이 (所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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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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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빼앗긴 국화 – 형수님께, 1981.10.17>

P225 국화장의 비닐 온실에 밤새 불을 켜놓기에 아마 계사에 다른 전등불이나 한 가지려니만 여겼더니만 이것은 꽃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꽃을 누르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국하는 장야성 長夜性 식물이기 때문에 밤이 길어야 꽃이 피는 법인데 시장의 꽃값이 비쌀때 내기 위하여 개화 開花를 억제해 둔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껍질 – 어머님께, 1981.10.21>

P226 문자를 구하는 지혜가 올바른 것이 못됨은, 學止於行 모든 배움은 행위 속에서 자기를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산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와 고, 巧와 固 – 아버님께, 1981.11.14>
(공교로울 교, 굳을 고)

P227 글씨에 변화를 주려는 강한 충동 때문에 붓을 잡기가 두려워집니다. 무리하게 변화를 시도하면 자칫 교 巧로 흘러 아류가 되기 쉽고, 반대로 방만한 반복은 자칫 고 固가 되어 답보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교 巧는 그 속에 인생이 담기지 않은 껍데기이며, 고 固는 제가 저를 기준 삼는 아집에 불과한 것이고 보면 ‘윤집궐중’ 역시 그 중 中을 잡음이 요체라 하겠습니다만, 서체란 어느덧 그 사람은 성정이나 사상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결국은 그 ‘사람’과 함께 변화, 발전해감이 틀림없음을 알겠습니다.

"우차 牛車가 나아가지 않으면 소를 때리겠느냐 바퀴를 때리겠느냐?"는 우문이 때로는 우리를 깨우치는 귀중한 물음이 되듯이, 본말을 전도하고 선후를 그르치는 것은 거개가 졸속한 육심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집궐중 允執厥中 ( 진실로 윤, 잡을 집, 그 궐, 가운데 중)

堯(요) 임금이 舜(순) 임금에게 禪讓(선양)하며 "하늘의 운수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로 그 中(중: 지나침도 없고 모자라지도 않는 핵심)을 잡아라. 천하가 困窮(곤궁)해지면 하늘이 임금에게 내리시는 녹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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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님의 추억 – 아버님께, 1981.8..27>

P221 담담하고 유연한 자세는 어려움을 건너는 높은 지혜라 생각됩니다.

<글씨 속에 들어있는 인생 – 부모님께, 1981.9.27>

P223 글씨도 그 속에 인생이 들어있는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어떤때는 글씨의 어려움을 알기 위해서 글씨를 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창백한 손 – 계수님께, 1981.10.6>

P224 몸 가까이 있는 잡다한 현실을 그 내적 연관에 따라 올바로 이론화해내는 역량은 역시 책 속에서는 적은 분량 밖에 얻을 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가 남의 사고를 반복하는 낭비일 뿐이라는 극언을 수긍할 수야 없지만, 대신 책과 책을 쓰는 모든 ‘창백한 손"들의 한계와 파당성은 수시로 상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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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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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요설 – 계수님께, 1980 세모에>

P203 숲속에 흔히 짐승들이 사람을 피해 숨어 살듯이 장광설은 부끄러운 자신을 숨기는 은신처이기도 합니다.

침묵과 요설은 정반대의 외모를 하고 있으면서도 똑같이 그 속의 우리를 한없이 피곤하게 하는 소외의 문화입니다.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 – 계수님께, 1980. 4.27>

P211 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물상지(玩物喪志, 玩 희롱할 완, 喪 죽을 상),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창의를 잠식하기도 합니다.

이기(利器)를 생산한다기 보다 ‘필요’ 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내고 현실을 살면서 오연히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 속이 빔 虛으로써 쓰임이 되고 넉넉함은 빈 몸에 고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를 당당히 간수하지 않는 한,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 모든 뜻이 껍데기만 남을 뿐임이 확실합니다.

* 오연히 (傲然, 傲 거만할 오, 然 그럴 연 - 태도가 거만하거나 그렇게 보일 정도로 담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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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마음 – 부모님께, 1980.11.25>

P198 ‘시’는 고인 (古人) 들의 절절한 사연이 긴세월, 숱한 인정에 의하여 공감되고 다듬어지고 그리하여 키워진 노래라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어도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고 하였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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