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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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빼앗긴 국화 – 형수님께, 1981.10.17>

P225 국화장의 비닐 온실에 밤새 불을 켜놓기에 아마 계사에 다른 전등불이나 한 가지려니만 여겼더니만 이것은 꽃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꽃을 누르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국하는 장야성 長夜性 식물이기 때문에 밤이 길어야 꽃이 피는 법인데 시장의 꽃값이 비쌀때 내기 위하여 개화 開花를 억제해 둔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껍질 – 어머님께, 1981.10.21>

P226 문자를 구하는 지혜가 올바른 것이 못됨은, 學止於行 모든 배움은 행위 속에서 자기를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산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와 고, 巧와 固 – 아버님께, 1981.11.14>
(공교로울 교, 굳을 고)

P227 글씨에 변화를 주려는 강한 충동 때문에 붓을 잡기가 두려워집니다. 무리하게 변화를 시도하면 자칫 교 巧로 흘러 아류가 되기 쉽고, 반대로 방만한 반복은 자칫 고 固가 되어 답보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교 巧는 그 속에 인생이 담기지 않은 껍데기이며, 고 固는 제가 저를 기준 삼는 아집에 불과한 것이고 보면 ‘윤집궐중’ 역시 그 중 中을 잡음이 요체라 하겠습니다만, 서체란 어느덧 그 사람은 성정이나 사상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결국은 그 ‘사람’과 함께 변화, 발전해감이 틀림없음을 알겠습니다.

"우차 牛車가 나아가지 않으면 소를 때리겠느냐 바퀴를 때리겠느냐?"는 우문이 때로는 우리를 깨우치는 귀중한 물음이 되듯이, 본말을 전도하고 선후를 그르치는 것은 거개가 졸속한 육심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윤집궐중 允執厥中 ( 진실로 윤, 잡을 집, 그 궐, 가운데 중)

堯(요) 임금이 舜(순) 임금에게 禪讓(선양)하며 "하늘의 운수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로 그 中(중: 지나침도 없고 모자라지도 않는 핵심)을 잡아라. 천하가 困窮(곤궁)해지면 하늘이 임금에게 내리시는 녹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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