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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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엘바와 바라나시

P324 대인춘풍 待人春風 지기추상 知己秋霜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반대로 합니다.

P325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 먹으면서 사는 거지요." 못 배운 사람들은 변명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짧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냥 단념하고 욕먹으면서 살 각오를 합니다.
P328 절대로 미리 속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한 박자 늦추어 대응하자. 심지어 나를 지목해서 욕하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나 보고 하는 거 아니지?"

P320 *우엘바: 콜럼버스가 출항한 우엘바 항구 (Huelva, 스페인 남서부)
P330 중요한 것은 현대 미국을 미국의 역사와 함께 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유럽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와 함께 읽는 일입니다.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반대의 것과 대비해야 합니다.

P336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 中에서 백인 마을을 지날 때 백인들은 덜커덕거리며 행렬의 뒤를 따라가는 빈 마차를 보고 어리석은 체로키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체로키들 중 어느 누구도 웃거나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빈 마차는 그들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콜럼버스 이후 지금까지의 세계질서는 본질에 있어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유럽의 근대사는 한마디로 나의 존재가 타인의 존재보다 강한 것이어야 하는 강철의 논리로 일관된 역사였습니다. 그것이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언제나 ‘나의 존재성’을 앞세우고 다른 것들을 지배하고 흡수하려는 존재론의 논리에 한없이 충실합니다.

P339 콤플렉스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하위에 그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무하려는 심리적 충동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보르헤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입니다. 보르헤스는 촛불을 끄라고 합니다. "촛불을 꺼라! 촛불은 어둠을 조금 밀어낼 수 있을 뿐 그 대신 별을 보지 못하게 한다.

P342 1겁은, 바위 크기를 정확하게 모르긴 합니다만, 바위가 옷깃에 스쳐서 닳아 없어지는 시간입니다.

P344 바라나시 (varanasi): 인도 갠지스강 중하류의 도시,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강과 아시강을 합친 지명이다. 산스크리트어 바라나시는 ‘신성한 물을 차지한다’라는 뜻이다. 갠지스강 연안에는 5km 에 걸쳐 가트(목욕탕)가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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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비와 우산
P290 자부심은 고난을 견디게 합니다. 물질적 도움보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P291 그 처지가 같지 않고, 그 정이 같지 않은 사람의 동정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물질적으로는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동정 받는 사람에게는 상심이 됩니다.

P293 자본은 나누지 않습니다. 자본은 본질적으로 자기증식하는 가치입니다. 자본축적이 자본의 운동법칙입니다. 그것이 자본인한 기부나 나눔은 불가능합니다.
기계화, 자동화, 인공지능화와 함께 상대적 과잉인구가 양산됩니다. 해고와 비정규직은 우리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적 분배방식만으로는 재생산시스템이 작동될 수 없습니다.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력의 요소 소득만으로는 유효수요가 부족할 뿐 아니라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활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나눔의 문제는 인정이나 동정의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후기 근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로서 다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복지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P296 친구와 함께 비 맞으며 걸어가면 덜 처량합니다.

18 증오의 대상

P300 증오의 대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혐오가 더욱 괴롭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여름 징역살이’ :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향한 부당한 증오는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 증오를 불태우고 있는 자기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301 우리가 처한 힘든 상황이 그런 ‘표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혹독한 상황이 그런 공공의 적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P302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옆 사람을 향하여 부당한 증오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 증오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하는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304 지금도 증오를 하거나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는 늘 감옥의 여름 잠자리를 생각합니다. 증오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해서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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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위악과 위선
P265 벌레들의 문양이란 대체로 작고 힘없는 벌레들이 살아가기 위하여 도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소자들의 문신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P268 위악이 약자의 의상이라고 하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P270 테러는 파괴와 살인이고 전쟁은 평화와 정의라는 논리가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테러가 약자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입니다.

P278 객관 客觀은 뒤집으면 觀客이 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이 되게 합니다. ‘관계없이 인식없다’는 결론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P279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잘 안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관계없는 사람에게 자기를 정직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관계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쑥’과 ‘잡초’의 차이는 이름에 있습니다. 쑥은 이름이 있는 풀이고 잡초는 이름이 없는 풀입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쑥이 인식대상인 까닭은 우리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P280 모든 인식은 그 대상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발견해 내는 것에서부터, 즉 관계를 자각하고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P281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Grameen 은행의 유누스 총재는 사람을 먼저 봅니다. 그 사람이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꾸준히 지켜봅니다. 그리고 그가 반드시 성공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대출금상환율이 95%를 상회합니다.

P283 계급과 경제적 조건은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합니다. 빵없이 살수 있지만, 빵만으로는 살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경제적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적 공감이 바탕에 깔리지 않는 한 관계는 건설되지 못합니다.

P284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답변이 이러하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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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일이와 공일이
P239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자기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입니다. 같은 키의 벼 포기가 그렇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잔디가 그렇습니다.

P249 단기수는 만기날짜만 기다립니다. 하루하루는 지워가야 할 나날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기가 없는 무기수의 경우는 그 하루하루가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깨달음으로 채워지고 자기자신이 변화해 가야 그 긴 세월을 견딥니다.

14 비극비
P251 풀 한포기 꽃 한송이를 조용히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속에 우주가 있습니다. 꽃 한 송이의 신비가 그렇거든 사람의 경우는 말할 나위 없습니다. ‘누구나 꽃’입니다.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

P252 미 美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글자 그대로 ‘앎’입니다. 미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은 미가 바로 각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P254 ‘얼굴’의 옛말은 얼골입니다. 얼골은 얼꼴에서 왔습니다. ‘얼의 꼴’ 다시 말하자면 ‘영혼의 모습’ 입니다.

P260 어느 성직자가 이 노랑머리에게 여성다운 동행을 설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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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푸른 보리밭

P206 청구회 어린이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그 때 그 곳의 추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글을 적는 동안만큼은 행복했습니다.

P209 나는 같은 추억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힘겨운 삶을 이어 왔을 그들에게 청구회에 대한 추억이 나의 것과 같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13. 사일이와 공일이

P223 그렇게 열심히 썼던 이유는 언제가는 그 상념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P224 ‘한발 걸음’의 핵심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한발’이란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입니다. 아마 수영생활 20년동안 책 읽는 시간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것을 나의 목발로 삼아서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험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그 참혹한 실패의 경험들은 육중한 무게로 나의 사유를 견인했습니다. 처음에는 목발이 생다리를 닮아가리라고 예상했지만 생다리가 목발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한 발 걸음과 목발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변화에 관한 자기 개조의 담론입니다.

P229 심지어는 나를 두고도 ’사람은 좋은데 사상이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경우 대부분의 먹물들은 연설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 점을 극히 경히 경계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듯이 그 사람의 생각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승인하고 존중하는 정서를 키워가게 됩니다.

이 과정이 서서히 왕따를 벗어나는 과정, 그것이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었습니다. 결론을 미리 얘기하자면 ‘가슴’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입니다.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P231 노인목수이야기입니다. 왕년 목수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집을 그렸습니다.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집그리는 순서와 집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나는 그 집그림앞에서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건강한 노동 품성을 키워 가리라는 결심을 합니다.

차이는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목주의’입니다. 들뢰즈, 가타리의 노마디즘입니다. 톨레랑스는 은폐된 패권논리입니다.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두는 것입니다. 강자의 여유이긴 하지만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닙니다.

P235 자기개조는 자기라는 개인 단위의 변화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의 변화를 ‘가슴’이라고 한다면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을 ‘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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