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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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푸른 보리밭

P206 청구회 어린이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그 때 그 곳의 추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글을 적는 동안만큼은 행복했습니다.

P209 나는 같은 추억이라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힘겨운 삶을 이어 왔을 그들에게 청구회에 대한 추억이 나의 것과 같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13. 사일이와 공일이

P223 그렇게 열심히 썼던 이유는 언제가는 그 상념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P224 ‘한발 걸음’의 핵심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한발’이란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입니다. 아마 수영생활 20년동안 책 읽는 시간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것을 나의 목발로 삼아서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험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온 그 참혹한 실패의 경험들은 육중한 무게로 나의 사유를 견인했습니다. 처음에는 목발이 생다리를 닮아가리라고 예상했지만 생다리가 목발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한 발 걸음과 목발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변화에 관한 자기 개조의 담론입니다.

P229 심지어는 나를 두고도 ’사람은 좋은데 사상이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경우 대부분의 먹물들은 연설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 점을 극히 경히 경계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적(?)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듯이 그 사람의 생각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승인하고 존중하는 정서를 키워가게 됩니다.

이 과정이 서서히 왕따를 벗어나는 과정, 그것이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었습니다. 결론을 미리 얘기하자면 ‘가슴’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입니다.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P231 노인목수이야기입니다. 왕년 목수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집을 그렸습니다.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집그리는 순서와 집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나는 그 집그림앞에서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건강한 노동 품성을 키워 가리라는 결심을 합니다.

차이는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목주의’입니다. 들뢰즈, 가타리의 노마디즘입니다. 톨레랑스는 은폐된 패권논리입니다.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두는 것입니다. 강자의 여유이긴 하지만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닙니다.

P235 자기개조는 자기라는 개인 단위의 변화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의 변화를 ‘가슴’이라고 한다면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을 ‘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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