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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스토리 한국사 - 시공간을 초월한 33번의 역사 여행
이기환 지음 / 김영사 / 2024년 9월
평점 :
우리의 여행은 유적지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인 경우가 많다. “역사는 과거의 한 지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연결된다”는 것을 아이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중복된 곳은 피하려 하지만, 굳이 매년 방문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동궁과 월지'다. 낮이든 밤이든 연못에 비치는 풍경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동궁과 월지'를 방문한 날, 남편이 웬일로 으스대며(역덕 와이프 앞에서 역사로 으스댈 기회가 잘 없다.) “여기가 안압지야”라고 설명을 시작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동궁과 월지'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
만약 그때 남편에게 『하이, 스토리 한국사』가 있었더라면! 남편은 “요컨대 674년에 조성된 연못(안압지)은 679년에 세운 동궁의 부속시설로 기능했으며, 그 이름이 월지일 가능성이 높다(p.66)”라고 멋지게 설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 『하이, 스토리 한국사』는 딱 그런 책이다. 교과서에 갇힌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 어딘가로 연결되는 이야기. 여행 중에, 소주를 한잔 마시다가, 댓글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선 시대에도 말이야~”할 수 있는 이야기.
『하이, 스토리 한국사』는 『흔적의 역사』로 유명한 히스토리텔러, 김기환 기자님의 신간으로, “임금도 눈치를 봐야 했던 현판 쓰기”, “5만 대 1의 극한 경쟁률”, “100년 전부터 시작된 꼴값 영어” 등의 주제로 역사 속 에피소드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룬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만을 다룬 책이었다면, 이렇게 극찬하지는 않았을 것. 기자답게 풍부한 사료와 검증된 내용으로 알차고 정확한 역사 정보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역사 칼럼”이다. 그저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역사 속으로 여행을 하도록 돕는다. 문장은 또 어찌나 맛깔난지! 한 장 한 장 줄어들 때마다 아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책이었다. 분명,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읽으면 역덕이 될지도 모를 만큼 재미있다.
한가지 예로, 서민의 술 '소주'가 조선 시대를 뒤흔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하이, 스토리 한국사』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나라의 운명을 바꾼 소주 - 세종조차 '임금도 못 먹는다'고 인정하다”라는 주제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보면, “1433년 10월 28일, 세종은 술의 폐해와 훈계를 담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세종이 특히 개인과 나라를 망치는 술로 지목한 것은 바로 '소주'였습니다. (p.299)”라고 한다. (물론 이때의 소주가 지금의 참 00 등은 아니다) 아버지의 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의 충신으로 남기로 한 진안 대군(태조 이성계의 맏아들)은 결국 소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이로 인해 태조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어린 아들 방석이 세자가 될 기회를 얻는다. 만약 진안 대군이 죽지 않았더라면 어린 이복동생이 세자가 되었을까? 또한,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까? 그 외에도 소주로 인한 사만사, 소주를 독극물처럼 사용한 살인사건 등 역사 속 “소주의 난”을 무척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렇듯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읽고 나면, 소주 한 잔에서도 역사가 보인다.
이토록 재미있는 역사는 소주로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고양이가 도도히 걸어도, 반려동물 1위 자리를 1500년째 유지하고 있는 개, 빼어난 화가 신윤복의 여성해방 운동, 실록에 기록된 방귀, 쌍욕과 음담패설이 난무한 조선의 댓글부대까지! 역사 속의 유적과 유물, 역사기록 등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고 재미있게 담아낸다. 수많은 역사서를 읽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책을 고르라면, 고민도 없이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고를 것 같다.
『하이, 스토리 한국사』의 작가 이기환 기자는 이 책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는 유리창”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창문 너머의 세상을 보듯 선명하고 확실하게 역사를 체감하게 해준다. 당장 우리 집 너머에 있는 듯 신석기를, 백제를, 신라를, 조선을 만난다. “역사는 과거의 한 지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연결된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의 가치관에 “그럼 당연하지!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라고 대답해주는 듯한 살아있는 역사서, 『하이, 스토리 한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