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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기다려줄게 -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8년, 엄마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
박성은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이기고 있다고 다 좋은 게임은 아니다. 이기고 있는 것과 좋은 게임을 치르고 있는 것은 다르다. 내가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을 위한 좋은 게임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천재이지만 그 천재성이 발휘되는 곳은 모두 다르다. 잘 놀 수 있는 물을 만날 때 각자의 천재성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열심히 대답만을 하느라 우리는 지쳐가고 있다. 왜 대답만 하고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대답이 아닌 질문을 하는 삶으로 바꾸면 어떨까?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다만 내가 열어야 할 문이 모두가 열고자 하는 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 각자를 위한 길은 따로 있다. 자기에게 맞는 길을 걸 을 때 우리는 비로소 휘청거리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된다. 믿 고 걷는 그 길에 내가 있는 것이다. (p.220~221)
사실 이 책은 “읽을 책”칸에 무려 4달가까이 그냥 '꽂혀'있었다. 전반부를 읽고 조금 버거운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등교거부. 경찰이 출동할만큼의 고성과 울음. 감정이 쉽게 전이되는 나는, 이 책을 쉬이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주쯤,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문득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변화의 강을 타겠지, 하는 막연함 때문이었다.
『엄마가 기다려줄게』는 나에게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아이의 무기력함과 등교거부, 이를 채근하고 몰아세우는 엄마, 주말부부라지만 역할을 하지 않는 듯한 아빠,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없는 환경 등이 버겁게 느껴졌고, 아이도 아이지만 엄마의 모습이 위태로웠다. 뒤쪽을 읽으면서 한참이 지난 후 기록된 책임을 알게 되었지만, 초반에는 그걸 느끼지 못할만큼 긴장과 무력함이 손끝에 묻어났다.
책의 내용이 중반까지 진행되도록 나는 『엄마가 기다려줄게』를 마저 읽을지 그만읽을지를 부지런히 고민했다. 그러다 “진심으로 내려놓기”라는 장을 만났고, 비로소 내 마음도 조금 덜 버거워졌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숨쉬기”라고 깨닫는 작가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공정한 세상에서 그나마 공교육이라도 있어 많은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교육의 테두리가 미처 해결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영역이 있음을 또 한 번 실감하고, 낙담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숨쉬기라는 것을 깨달은 후, 『엄마가 기다려줄게』의 작가는 진정한 기다림과 이해를 시작한다. 그에 따라 아이도 점차 동굴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되었고. 작가는 아이와의 농담에서 “동굴 밖으로 나오는 법을 잊어 반대편으로 파고 나왔을 거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가 '혼자'라는 어두운 곳을 벗어났다는 것 아니려나. 『엄마가 기다려줄게』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왜 나보다 먼저 읽은 독자들이 이 책을, “자녀교육서”라고 표현했는지 이해했다. 이 책은 그 모든 것에 앞서 아이의 마음을 돌보고, 아이와 진정한 이해관계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잘 담아둔 책이었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기다려줄게』의 말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사랑의 방식이다. 오늘도 나는 어떻게 나를 사랑해줄 것인지를 궁리한다.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자. 건강을 챙기자. 진 빼지 않으며 마음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그렇게 오늘도 행복하자(p.239)”
나는 내 내면의 에너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생각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져 “이너피스”에 큰 중점을 두고 살아간다. 타인에게서 일희일비하지않으리,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않으리 다짐하면서. 이 책을 읽고 어쩌면 육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엄마지만, “진빼지 않으며 마음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의 진을 빼지 않고 아이 마음에 무리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를 키워야지.
이것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이와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에너지를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로 오래오래, 깊이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