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彩を持たない多崎つくると、彼の巡礼の年村上春樹Murakami Haruki(2013) / 양억관 역 / 민음사 (2013)2017-7-13첫 페이지부터 순간 이십 대 초반이 기억에서 밀려나와 당황스러웠다. 삼분의 일을 지나니 ‘여느‘ 하루키 소설이로군, 싶으면서 맥이 풀렸다. 오히려 <상실의 시대> 쪽으로 더 간 듯한 느낌.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빼박‘ 하루키적 인물이다. <해변의 카프카>의 나카타 씨 빼고 내가 읽은 너덧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made in haruki‘라고 찍혀 있는 듯. 특히 나에게 하루키 소설이 거슬리는 이유는 자급자족 식물성 남자 주인공들의 옷과 요리와 와인과 음악과 시계 같은 액세서리 등등의 상표까지 상세한 취향이다. 적응이 안 된다. 내친 김에 신작도 사버리는 것 아닌가 했는데 접었다.
3탄까지 오니 공포의 원인과 그 세계의 대략적이나마 윤곽을 그릴 수 있어서 공포 자체는 많이 경감되었다. 그러나 속속들이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제시되지 않는다. 작가가 자신도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 쓴 것인 마냥. 읽으면서 아주 오래 전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을 읽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서 고든 핌이 선원이고 마지막에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존재를 맞닥뜨린 것 같다... 정도만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읽으면서 느꼈던 공포 다음 혼란과 지루함이 지금 이 시리즈를 덮으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또 <메이즈 러너>의 설정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메이즈 러너>는 영 어덜트 소설답게 모든 것을 결말에서 깔끔하게 풀어주지만 이 소설은 뭐 전혀. 위어드 픽션은 내 취향은 아닌 걸로.
시리즈 판타지라면 덮어놓고 사는 편인데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다 뭐지 궁금해서 우선 읽었다. 뭔가 설렁설렁 읽을 것으로 기분 전환을 하고 싶기도 했고. 가슴 졸이면서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다 읽고 난 지금 무엇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스릴러이기도 하고 호러이기도 하고 판타지이기도 하고. 위어드 픽션이라고 불린다 한다. 그런 장르명(?)이 있는 줄 몰랐다. <에일리언>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그리고 내 취향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의문들이 거의 해소되지 않은 채로 끝나버린다. 그것도 호러가! 공포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읺은 채 끝나버리면, 뭐 악몽이라도 꾸라는 건가! 너무나 모르는 게 많아서 그냥 2탄을 빨리 읽어버려야겠다. 이어지는 이야기도 아니라던데...
기말시험 때문에 초치기로 교과서에 실린 이창래의 글을 보고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결국 읽기로 한 것은 스파이 소설이란 소릴 어디서 봤기 때문이다... 뭐 스파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정체성을 탐구하는데 스파이만큼 훌륭한 도구가 또 있을까?), 장르로서 스파이 소설은 아니었다. 전체 23장 중 6장 정도까지는 정말 모호했고 지루했다. 진정한 자기를 숨기는 것이 본능인 스파이(어쩌면 진정한 자신이란 게 뭔지 몰라서 또렷한 목소리가 안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의 1인칭 주인공/관찰자 시점으로 풀려가는 이야기라 더 그랬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이에게 사고가 생긴다... 기억하고 있는 어떤 사고보다 충격적인 묘사였다. 이 때부터 다시 심기일전하고 읽었지만... 사건을 화자의 심리로 은유로 느릿느릿 따라가면서 도대체 내가 읽는 것이 한국어가 맞나, 모르는 단어는 없는데 진정한 의미는 잡히질 않나, 독해력이 이렇게 형편없었나... 아무튼 끈질기게 읽었고 마지막 장은 모든 주제를 명료하게 폭발시킨다. 개운치 않은 여운... 그 말이 맞다. 영어로 쓰인 소설은 ‘서정적이고 신랄하고 명민한 언어‘라는 평가도 있던데 번역을 거쳐서 그런가(아니면 정말로 형편없는 독해력 탓일지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속 깊은 곳을 찌르는 몇몇 문장들을 건질 수는 있었다. 원제 <Native Speaker>와 한국어 번역서의 제목 <영원한 이방인>은 어찌 보면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단어들인데 묘하게도 같은 의미를 지시한다. 개운치 않은 여운의 이유 중 하나다.
발자크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외계인인) 헵타포드처럼 시간을 인식했던 것 같다.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보았고 한꺼번에 살았다. 천재이자 지치지 않는 노동자로서, 당장 외에는 아무 것도 볼 줄 몰랐던 동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쫓기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그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살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가 아닌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와 동시대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시대에 살았다면 불멸을 바라보며 엄청난 노동을 감내한 이 사내를, 하루만큼의 전망도 갖지 못하고 사는 나는 결코 알아볼 수 없었겠지. 너무나 우스꽝스러워서 차라리 미친 거 아닐까 의심하며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150년 뒤에 살아서 츠바이크 같은 사람의 격렬하고도 생생한 안내를 따라 발자크라는 인간을 만난다.<외제니 그랑데>와 <사촌 베뜨>를 어떻게든 읽어봐야겠다. 일단 내일 <잃어버린 환상>이 집에 도착하니 그것부터 읽고. 에 또 불어 공부를 해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