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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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딴데로 새지 않고 한번에 읽은 책이다. 신나게 포스트잇으로 태깅하고 언급되는 책들 중 흥미로운 책들을 보관함(그리고 곧 장바구니 ㅠ)에 쌓으면서 말이다. 2주 전 시어머니 병상 옆에서 반 읽고 나머지 반은 2주에 걸쳐 찔끔찔끔 읽었지만. 그러니까 지난 2주 동안 읽은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일단 ‘읽는 직업’이란 게 부러울 뻔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되진 않았다. 아무튼 나에게는 저자가 보여주는 그런 집중력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끌고갈 만한 끈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일, 아니 끝이 있기나 한지 때로 알 수조차 없는 일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낫다고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언제나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이다. 이 정도가 꽤 오랜 세월 나의 자아란 놈과 타협한 결과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것이 결국 ‘일’이 되는 것은 내 생각엔 바람직한 것과 거리가 멀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정말 속속들이 알고 나면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도 있는 법이다. 취미로 즐길 때는 그런 걸 무시할 수 있지만 ‘일’이 된다면 그런 것도 다 감수해야만 한다. 오랫동안 그걸 감수하다 보면 사랑이 미움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아예 밥벌이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모험(!)을 시도할 생각은 없다.

모든 읽기의 끝은 결국 쓰기로 이어지는 건가.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라는 소설에서 심심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 여왕은 소설의 끝에서 이제 글을 쓰기 위해 여왕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선언한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여왕의 결정에 마치 내 일인 듯 설레었었는데 그건 나도 닥치는 대로 읽다 보면 언젠가는 ‘그래, 이제는 써야 해!’라는 순간이 닥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하고 쌓인 책들이 이제는 세기도 무서운 지경에 이르고 보니 괜찮은 독자로 남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뭐 나에게도 비밀이 있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읽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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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 논쟁으로 읽는 존엄사,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유영규 외 지음 / 북콤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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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도 연구서도 아닌 탐사보도의 확장판 보고서라 한 번에 읽힌다. 그만큼 깊이 있는 논의나 결론은 없지만 생각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다.

... 여러 가지 생각을 찍었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이라 이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길게 쓰려 하면 나로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말할 수 없으면 침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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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끝없는 투쟁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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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한 시간 동안 한 바닥 찍은 걸 한 순간 날림!!! orz.
전의 상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 대한 생각.

이긴 전투는 별로 없지만 2차대전이라는 전쟁에서는 승리.
그러나 전후 세계 질서 구축이라는 궁극의 전쟁에는 실패. 그가 천재였고 격렬한 인간이었으며 그만큼 동시대 인간들을 자기가 이끌어내 할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이라는 생각.

히틀러에 대해서도 읽어봐야 할 것 같고. 처칠이 쓴 제 2차 세계대전도 찍어서 보관함에 넣었음.

세간에도 알려진 처칠의 재치있는 유머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게 좀 아쉬웠다. 예를 들면, 매일 의회에 지각한다고 비난하는 상대에게 “그 의원님도 저처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면 알텐데요”라고 했다던가.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나 시민 의원의 절대적 • 이념적 원칙주의는 근본적으로 그에게는 낯설었다. “자신을 개선하려는 자는 변해야 하고, 완전해지려는 지난 매우 자주 변해야 한다”라는 것이, 그토록 여러 번이나 관점과 입지를 바꾼 것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그가 이따금 던진 답변이었다. “ p136.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윈스턴 처칠 개인에게는 지옥이었다. 장관을 지내는 동안에도 그는 한 번도, 아니면 거의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일과 책임감으로 완전히 충족되지 못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불만스러워 하고 규율 없고,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를 지나 다른 모든 것으로 넘어가 간섭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p157.

“처칠은 타고난 전사임에도 매우 인간적이었고, 자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마치 정열적인 사냥꾼이 흔히 동물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인 것과 비슷하다. 더 약한 존재, 패배한 존재에 대한 잔인성을 그는 죄악처럼 싫어했다. 이런 종류의 잔인성은 히틀러의 성격 특성이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 안인희 역, <처칠, 끝없는 투쟁>, 돌배게.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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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리커버 에디션, 양장)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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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판 마르틴 베크 연작을 한 권으로 묶은 것 같다. 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해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더 서늘한 것이 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특히 홍콩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도 느끼듯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람 사는 곳. 지금 우리 사회도 큰 무리 없이 겹쳐져 보인다. 이런 소설을 자꾸 읽으면 희망 같은 걸 잃지 않기가 어렵지 않을까. 소설보다 더 한 도람푸라는, 2차 대전 이후 세계사에서 민주주의의 최대 악당도 목도하고 있는 현실까지 있는데.

홍콩 경찰의 생소한 계급명과 중국어 이름들(보통어 이름과 광둥어 별명들? 아무튼 러시아 이름보다 더 입에 붙이기 힘들었다) 때문에 초반엔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관전둬 하나만 붙잡고 끝까지 잘 봤다. 마지막 단편 <빌려온 시간>이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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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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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 전 앞부분 몇십 페이지 읽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었다가 <건강 격차>를 읽고 난 후 다시 꺼내어 처음부터 내리 읽었다. 요즘 우리나라 의사들도 병원에서 겪은 일들을 녹여 많은 에세이들을 쓰고 출판하는데 비슷한 일을 겪었고 겪는 사람을 가까이서 봤던 이로서 보기엔 뭔가 말랑하고 감상적이라 슬쩍 얼굴을 돌리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이 책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 흔한 ‘담담함’도 없다. 그러면서 쌀쌀한 글도 아니고. 부럽다.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게.

저자가 이 책을 쓴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고 책을 쓸 당시 외과 레지던트 4년차이던 그는 (비교적 최근 난 책에 실린 약력을 보니) 이제 수련받던 병원의 스탭이자 의과대학생들의 교수가 되었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고 이 책이 전하려고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의학의 불완전함-이 조금이라도 빛이 바랬을까? (그건 그렇고 4년차가 어떻게 이런 책을 쓰지? 나는 4년차 때 당직 서고 아랫년차들 백커버(?)하고 컨퍼런스 준비하고 막판 두 달은 전문의 시험 공부하느라 저자에 비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같네. 정말 남는 시간은 자기 바빴다.)

의학의 수많은 골아픈 점들 중 하나는 불완전한 지식이라도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고 일단 적용해봐야 하는 상황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에게. 많은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처치나 약물이 예견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 어떤 과정으로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도’된다. 즉 ‘complication (합병증; 이 책의 원제)’의 위험을 알지만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래도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의사들은 수많은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써진 소위 ‘동의서’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들이밀게 된다... 거기다 바쁘고 위중하고 의식이 없는(아파서이거나 치료과정 중 의도적으로 의식을 눌렀거나) 환자를 여러 명 한꺼번애 돌봐야 하면 ‘사람’, 그러니까 감정과 생각과 싫고 좋은 것과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잊고 질병, 교정해야만 하는 잘못된 상태 자체에 매몰되기도 쉽다.

종합병원을 떠나 동네 의원에서 일하면서 이 책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프고 그래서 걱정 속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똑같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나 또한 자잘한 걱정거리와 여러가지 기분에 좌우되는 ‘사람’이고.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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