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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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 전 앞부분 몇십 페이지 읽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었다가 <건강 격차>를 읽고 난 후 다시 꺼내어 처음부터 내리 읽었다. 요즘 우리나라 의사들도 병원에서 겪은 일들을 녹여 많은 에세이들을 쓰고 출판하는데 비슷한 일을 겪었고 겪는 사람을 가까이서 봤던 이로서 보기엔 뭔가 말랑하고 감상적이라 슬쩍 얼굴을 돌리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이 책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 흔한 ‘담담함’도 없다. 그러면서 쌀쌀한 글도 아니고. 부럽다.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게.

저자가 이 책을 쓴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고 책을 쓸 당시 외과 레지던트 4년차이던 그는 (비교적 최근 난 책에 실린 약력을 보니) 이제 수련받던 병원의 스탭이자 의과대학생들의 교수가 되었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고 이 책이 전하려고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의학의 불완전함-이 조금이라도 빛이 바랬을까? (그건 그렇고 4년차가 어떻게 이런 책을 쓰지? 나는 4년차 때 당직 서고 아랫년차들 백커버(?)하고 컨퍼런스 준비하고 막판 두 달은 전문의 시험 공부하느라 저자에 비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같네. 정말 남는 시간은 자기 바빴다.)

의학의 수많은 골아픈 점들 중 하나는 불완전한 지식이라도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고 일단 적용해봐야 하는 상황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에게. 많은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처치나 약물이 예견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 어떤 과정으로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도’된다. 즉 ‘complication (합병증; 이 책의 원제)’의 위험을 알지만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래도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의사들은 수많은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써진 소위 ‘동의서’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들이밀게 된다... 거기다 바쁘고 위중하고 의식이 없는(아파서이거나 치료과정 중 의도적으로 의식을 눌렀거나) 환자를 여러 명 한꺼번애 돌봐야 하면 ‘사람’, 그러니까 감정과 생각과 싫고 좋은 것과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잊고 질병, 교정해야만 하는 잘못된 상태 자체에 매몰되기도 쉽다.

종합병원을 떠나 동네 의원에서 일하면서 이 책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처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프고 그래서 걱정 속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똑같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나 또한 자잘한 걱정거리와 여러가지 기분에 좌우되는 ‘사람’이고.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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