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자습 시간에 생물 선생님이 교실 앞을 지나갔고, 선생님이 시야에서 사라진 걸확인한 나는 내적 괴성을 지르며("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화장지를 들고 주섬주섬 일어섰다. - P29
그 모든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는 배 아픈아이처럼 몸을 수그리고,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체육복에 감싸 들고서 혼자 공개방송을 만끽하러 가장조용한 화장실로 향한 것이다. - P30
우리 가족에게 음악을 듣고 라디오를 켜두는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가족 앨범 속에는내가 한두 살이던 아기 시절에 이미 미제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웃고 있는 엄마 아빠와 부모님 친구분들 사진이 있을 정도고(미군 부대 근처에 거주하셨음), 사진 찍힐때 좀처럼 힘을 못 빼서 늘 차렷 자세에 굳은 표정의 사진뿐인 내 유년 시절 사진 가운데 몇 안 되는신나 보이고 자연스러운 사진은 주로 전축 옆에서였으니까. - P41
그날 나는 결국 영을 따라 시내 번화가 쇼핑몰 맨꼭대기에 있는 롤라장에 입성했다. 나의 두뇌와 마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줄 알았던 소심함과 두려움을 단숨에 이길 만큼, 사춘기가 올동말동한 고학년 어린이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아주 뜨겁고 뒤를 돌아보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였다. - P47
지금의 내 인생을 강이나 바다라고 한다면 그날의일이 강물이나 바다로 흘러가게 한 의미 있는 물줄기였음을, 혹은 그 이상이었다는 얘기를 한 번쯤 나눌 기회가 와도 좋을 것 같다. - P52
누군가에게 시네마 천국이 있다면 라디오 천국이라 불렀던 내 인생의 한때가 그렇게 시작됐다. - P53
과함이 있으면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고 ‘과유불급‘의 뜻을 제맘대로 해석해온 나는 과몰입러(무언가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 의미 부여 중독자답게 8월 6일 술자리를 ‘볼리비아와 자메이카의 독립을 축하하는 파티‘이자 ‘량쯔충(양자경), 앤디 워홀, 노무현 탄신일인 동시에 천경자 화가 기일을 기념과 추모하는 파티라 명명한 뒤 남은 준비를 하기시작했다(멋있어! 완벽해! 완전 맘에 들어!!!). - P57
계속 건강한 몸으로 계절 별미에 술을 곁들이려면 운동 열심히 하고 식이조절도 하면서 건강지표 잘 체크하며 살아야 한다고 서로에게 훈수도두면서.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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