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보다 서울이 더 춥게 느껴졌던 나는 4월까지 코트를 입었고 옷자락에 묻은 기름자국도 그렇게 봄까지 학교생활을 함께했다. - P83
"아직도 코트 입고 다녀?" 잘생긴 이목구비 때문에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얼굴이지만 나는 누군지 못 알아본 척을 했다. 금성무는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내 코트자락을 가리키면서 "아직도세탁 안 한 거야?" 하고 다시 말했다. - P85
누군가 놓친 유원지 풍선처럼 날아가버려도 그만일 테니까. 대문 밖만 나가면 아는 얼굴들이 나타나는 섬과, 사람물살을 헤치고 다닐 때마다 생소한 얼굴들이 차고 슬프게그를다가왔다 사라지는 이곳의 봄은 완전히 다른 계절이었다. - P87
"내가 괘럽와서 못 겐듸겠어요. 열몇살 어린 것 식집살이를 다 하고, 같이 늙어간 형님 봐서 참아왔어도 이제는전부 싫어요. 상황 되면 중국도 다시 갈 거고." - P93
"한참을 보고 있으니까 고기 살라고요? 하고 물어 내가 돈은 없어요. 했더니 영두 할머니가 어디 먼 데서 오셨시까? 하고 슥 묻더니 물고기 한 사라를 그냥 주더라고켜 먹어요. 하면서.. - P97
장사하러 나온 외할머니와 손님으로 만났다는 건 뭔가시시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수수께끼 하나는 푼 셈이니까나는 실망감을 감추며 그랬군요. 했다. - P97
리사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마음에 안 들어했다면 안나는 나의 이런저런 면들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그래서 마치 스프레이 방향제처럼 칭찬을 뿌려댔다. 내가 금방이라도 돌아설까봐 붙잡아놓고 싶은 것처럼. - P99
"사람을 믿는 게 잘못은 아니야. 네 말대로 그렇게 혼자라면 믿어야 살 수 있으셨겠지.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누군가를 믿기도 해." - P102
"백화점 과일이라고 하나 다른 거 없어. 한국 사람들은거뜻하면 사치를 부려서는." - P105
내가 답하자 리사는 복숭아씨를 벤치 아래로 뱉고는땅속으로 밟아 밀어넣었다. 그리고 창경궁은 밤에 봐야정말 사람이 살았던 곳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말 사람이 사는 집처럼 적당히 비밀스러워진다고. - P113
"수준을 들키는 것보다는 낫지." - P113
‘포도를 너무 좋아해서 죽다니." - P118
"그래서 섬으로 왔구나. 지금 반에서는 괜찮니?" "적어도 우린 벌집 아래 누군가를 세워놓진 않아." - P122
명령들이 만들어주는 영향력만큼 허망한 게 있을까. 그런 식의 만족감이란 겨울의 빈 새둥지처럼 허망하고 쓸쓸하지 않나.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주지 않음으로써 누•군가를 결국 무력화하는 힘이 있는데 어떤 부류들은 그런진실에는 무관심하곤 했다. - P128
벚꽃철이면 그 당시 경성 인구의 10분의 1인 2만 5천명의 입장객이 하루 만에도 들어와 북새통을 이루는 창경궁에서 가장 조용한 곳은 의외로 맹수사였다. 사람들이 붙어 휘파람을 불며 관심을 끌려 했지만 교토에서 들여온사자는 단 한번도 포효한 적이 없었으며 위장병을 앓았다. 백두산에서 사로잡아 온 호랑이도 있었지만 암컷 한마리뿐이었기에 그다지 용맹함을 드러낼 필요 없이 심심해했다. - P131
"어렵겠니?" 자신은 없었지만 거절할 도리는 없었다. "아니요. 할게요, 할머니." - P141
"계속 사람이 살면 창덕궁 담 모양을 제대로 못 본다는거지. 야, 근데 궁만 보면 됐지, 바깥담까지 누가 보냐? 너창덕궁 담다 보고 싶어, 안 보고 싶어?" - P140
"나, 평생 들을 멋지다는 말 도희씨에게 다 들은 것 같아. 자존감 장난 아니게 높아진다." "들을 만하십니다." - P147
. 가만히 침묵할 때 오히려 뭔가가 더 힘있고 따뜻하게 부풀어올랐다. - P156
"구원이 뭔데?" 어려운 질문이었다. 누가 그것에 답을 할 수 있을까. - P157
순종이 창덕궁과 창경궁에 박물관과 식물원 그리고 동물원을 만드는 데 동조한 것도 교육을 위해서였다. 순종은 어찌 되었든 왕궁 문을 직접 열어 근대 문물 수용에 앞장서는 행동을 취했다. 유서 깊은 궁에 백성들의 흙발이들어서는 일은 참을 수 없다며 대신들이 들고일어나자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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