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한숨도 아픈 신음도 아닌 어떤 소리가 입술도 아닌 가슴에서부터 새어나왔다. 스무 살 때는 겪어 보지도 않고노래방에서 청승맞게 부르기나 했던 친구의 연인 어쩌고 하는유행가 가사가 마흔하나에 현실이 돼 있었다. 차라리 그때라면폭음과 노래방으로 마음을 달래고 잊어버리기라도 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어른이 되면 모든 게 쉽고 가벼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건하나도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문제들은 어렵고 복잡해졌다. - P137

도망이라면, 단지 도망이기만 했다면 아까 준연 씨가 말한 것처럼 뭘 더 알고 할 수 있게 되고, 그러지 못했을 거예요. 예전엔 준연 씨의 의지로 시간을 써 왔다면 이제는 써 왔던 그 시간에 의지해 준연 씨가 원하는 걸 해요. 사랑하는 걸, 사랑하고 싶은 걸요. - P217

괜찮겠어?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오늘은 집에서 자고 내가여기서 준연과 같이 있어 주겠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하진에게 조심스럽게, 뭘 못 믿어서 그런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물어봤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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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자전거 때문이었다. 집에 자전거가 생긴 이래로되는 일이 도통 없었다. 내가 연재하는 웹툰의 조회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자전거를 집에 들인 직후였다. - P131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더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 P135

그는 내앞에서 자랑스러운 듯 떠들었다. "결국 플롯은 뻔하고, 핵심은 테크닉이야."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려는 사람처럼 그는 내게 말했지만, 그건 굳이 에로 비디오를 수백 편 보지 않더라도알 수 있는 사실에 불과했다. - P141

. "혹시, 룸메이트 구한다는 분?" 안나가 처음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제일 먼저 내 시선이 머문 곳은 그녀의 눈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 중 가장 작은 눈. 안나가 살아온시간 동안 끊임없이 놀림거리가 되었을 그 눈. 안나는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가 안나와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 P145

얼굴 바로 아래 늘어져 있는 제이의 턱살을 훔쳐보았다. 턱살이 접힌 자리에 흥건하게 고여 있던 땀이 뚝 뚝 떨어져내렸다. 땀 탓에 제이가 입은 민소매 티셔츠는 군데군데 색이 짙어져 있었다. 육중한 가슴과 뱃살에 파묻힌 티셔츠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땀을 닦기 위해 제이가 팔을 들 때마다팔뚝 살이 덜렁거렸다. 보살 나셨네, 보살 나셨어. P와 안나를관통한 분노의 화살은 애꿎은 제이의 육체에 겨누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인가, 자책감이 밀려왔다. - P154

"내 자전거잖아."
"그래그래 니 거지."
"내 거라고."
"그래, 틀림없이 니 거야." - P161

왠지 나는 이제 유머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 P163

우리는 아쿠아리움의 수족관 사이를 거닐며 시간을 때우고있어. 약속 시간은 훨씬 전에 지났지만 당신의 전화가 오기를기다리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은 할일이 없어서였어.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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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부터 먼저 시작했다 - P43

쿵쿵 큰 소리 나는 춤 - P37

네 몸에서 내가 씨를 심은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졌음,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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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두 거짓말입니다방금 말한 흰 새는 내 앞에 흰 손수건처럼 앉아공손하게 차를 마시는 새입니다 - P28

나는 새 속에서 태어났다고 했다그 반대가 아니라나는 새 속에서 죽었다고 했다그 반대가 아니라내가 태어나서 죽었다고 했다 - P27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공중에 있답니다 - P23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 P24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공중에 있답니다 - P23

새가 나를 오린다시간이 나를 오리듯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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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주저앉았다. 기가 다 빨린것 같았다. - P324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까지 모蜀재우리는 다시 짧게 입맞췄다. 출근길의 신혼부부처럼. - P330

파를 썰고 계란물을 젓가락으로 젓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국물이 끓어 라면 냄새가 났지만 식욕은 오히려 떨어졌다. 준연에게서 원하는 얘기를 듣지 못한 탓이었다. 데리고 가라고, 괜찮으니 먹고 같이 가라고. 준연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방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생판 모르는 남녀라도 같이 있고 불을 끄면 일이 날 수밖에 없을 만큼 좁디좁은 방이었다. - P336

믿음을 쌓는 데에는 오랫동안 많은 일이 필요하지만 깨지는건 단 한 번으로 충분하니까. 나는 작지만 확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밀하게, 은밀하게. - P339

하진의 도움을 받아 꽤나 시간을 쓰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노안의 모범생, 근데 살짝살짝 보일듯 말 듯 멋을 부린 애처럼 보였고 하진은 연예인이 되고 싶은일진 언니 같았다. 우린 손을 잡고 촐랑촐랑 놀이공원 입구로뛰어갔다. - P352

그게 세상이지, 그런 게 세상이야. 하지만 하진은 나를 봤다.
나 사연 많은 여자야. 다 겪어 보고, 당해 보고 하는 말이지. 하진은 그저 웃으며 가만히 잔을 비웠다. - P361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있다면 돈을 벌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의지로 만들어 낼수 있는 것도 있어. 둘 다 평가의 기준은 하나. 잘 만들었느냐아니냐지만 그 전에 무엇을 위해 잘 만들었느냐, 그걸 봐야 해.
돈을 벌기 위해 잘 만들었는지, 다른 뭔가를 위해 잘 만들었는지. 어느게 낫다 못하다 하는 건 그 다음이야. 목적도 쓰임새도 다른걸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는 없고 그렇게 다르기 때문이 모두가 이기는 게임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어.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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