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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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이금이 작가와 황선미 작가를 동화계의 쌍두마차라 생각한다. 동화를 즐겨 읽는 엄마라면 이 두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심리를 잘 그려낼 뿐 아니라, 작품에서도 따뜻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하면서 두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토론했는데, 특히 '마당을 나온 암탉'은 초등독서회에서 두 번, 중학교독서회까지 세 번이나 토론한 작품이다. 작품성도 뛰어나 인지도가 높고 나눌 이야기도 많다. 엄마들은 잎싹의 모성애와 자아실현에 초점을 두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쳐내며 감동을 나누었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토론하던 장면이 지금도 떠오른다.

2002년에 처음 읽었는데 막내가 일곱 살부터 눈물을 흘리며 읽고 또 읽은 책이라 더 애정이 간다. 아이들도 여러번 이 책을 읽으며 눈높이가 다른 만큼 읽을 때마다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고 말했다. 막내를 비롯한 삼남매가 서너 번은 읽었고, 나도 세 번을 읽었더니 잎싹의 마음이나 장면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모성애와 자아실현이라는 주제를 잘 드러낸 황선미 작가 최고의 작품으로 추천한다.  
 
암탉은 어느 양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알낳는 닭이지만, 우리의 주인공 잎싹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잎싹'이란 이름을 붙이고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과, 알을 품어 새끼를 까고 싶은 꿈을 가졌기에 여늬 닭과는 달랐다.

잎싹은 물렁거리는 알을 낳으며, 점차 알을 낳고 싶은 마음도 없고 입맛도 잃어 폐계닭으로 내쳐진다. 병든 닭들과 구덩이에 버려졌지만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족제비에게 벗어나 마당으로 돌아 온다. 수탉부부와 오리를 비롯한 마당식구들은 잎싹을 달가와 하지 않지만, 잎싹은 알을 낳아 품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꿈꾸며 버틴다. 
 

마침내 청둥오리 새끼인 초록머리를 부화시켜 키우게 된 잎싹은 마당을 나와 물가에서 떠돌며 사냥꾼 족제비를 피한다. 나그네처럼 겁내지 않고 맞서는 용기만 있으면 절대로 족제비가 건드리지 못할 거라며, 날마다 잠자리를 바꾸어 초록머리를 지켜낸다. 스스로 헤엄치는 법을 터득한 초록머리는 부쩍 자랐지만 우울한 얼굴로 생각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었다. 족제비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넋을 놓은 초록머리를 지키기 위해 잎싹은 족제비에게 덤벼 들었다. 죽을 각오로 덤벼들었지만 내동댕이처진 잎싹은 눈을 감았고, 초록머리는 마침내 날아 올랐다. 

만세~ 기적이다! 잎싹은 초록머리의 비상에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족제비를 겁내지 않아도 되고, 넓은 저수지를 금세 다녀올 수 있고, 갈대숲 위에서 둘러보고 좋은 잠자리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잎싹의 눈물겨운 모성애로도 초록머리의 쓸쓸함을 알지 못했고,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다고 확인시킨다. 하지만 초록머리는 마당으로 돌아가길 원했고, 마당에 가도 외로울거라는 걸 아는 잎싹은 말리고 싶었지만 멀찍이서 뒤따라 갈 뿐이다. 

마당에서 살아도 여전히 따돌림당하고 외톨이인 초록머리는 주인여자에게 붙잡혀 다리에 끈을 매고 기둥에 묶인다. 잎싹은 기회를 엿보다 주인여자가 기둥에서 풀었을 때, 달려들어 초록머리가 도망치도록 돕는다. 자식을 지키는 엄마는 어떤 일에도 겁내고 두려워하지 않는 건 모성애의 특징이다. 물론 청둥오리 나그네의 부성애도 뒤지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초록머리는 다리에 끈을 매단채 날아 올라 저수지로 돌아온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152쪽)


초록머리는 사춘기가 되었을까? 저수지로 돌아온 후로는 잎싹에게 다가오지 않고 잠자리도 따로 정했다. 잎싹은 먼 발치에서 초록머리가 잘 먹고, 잘 자는지 지켜보는 것 뿐이라 슬프고 외로웠다. 서로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초록머리를 이해하고 발에 묶인 끈이라도 없애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잎싹의 모성애도 막바지로 치닫는다. 초록머리를 청둥오리 무리로 떠나 보낸 뒤 잎싹은 커다란 슬픔과 외로움을 느낀다. '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결국 떠나는구나!' 땅이라도 치며 통곡하고 싶지 않을까? 부모들이 자식을 독립시키며 느끼는 배신감(?)은 수습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잎싹의 심정을 가늠하며 마음이 아팠다. 자식이 장성하면 떠나 보내는 게 정한 이치라는 걸 알지만, 초록머리를 지켜보는 잎싹은 안타깝다.  

 

무리에 끼이지 못하고 힘들고 외로워서 엄마를 찾아 온 초록머리는 지쳐 잠들었고, 잎싹은 초록머리 다리에 묶인 끈을 밤새 부리에 피가 나도록 쪼았다. 비록 발목의 끈은 무리 속에서도 알아보기 좋은 내 아기라는 정표로 남았지만, 자식의 장래를 위해선 피흘림도 불사하는 모성애가 절절하게 이해되는 장면이다.   

이 책의 절정! 아직 눈도 못 뜨는 족제비 새끼들을 발견한 잎싹은, 초록머리를 노리는 족제비를 유인하기 위해 그 새끼들을 이용한다. 어린 것들을 움켜 쥐고 족제비와 맞짱뜨는 잎싹, 비참한 표정으로 제 새끼들의 안전을 애원하는 족제비는 보편적 모성애의 진수를 보여준다. 잎싹과 족제비를 내세워 우주적 생명 질서를 설파하는 이 장면은,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생명의 목숨을 이어주는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제다.

잎싹과 족제비는 각기 제 자식의 안전을 위해 타협한다. 청둥오리 나그네가 갈 수 없었던 그 곳을 초록머리는 파수꾼이 되어 훨훨 날아갔다. 잎싹에게 찾아와 머리 위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작별을 고하고... 잎싹은 언젠가 말하려고 간직했던 말들을 미처 들려주지 못하고 떠나 보낸 후, 세상이 너무 조용하고 껍데기만 남은 듯했다. 잎싹은 '날고 싶은 또 다른 소망을, 자신보다 몸이 간절하게 원하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잎싹은 고달프게 살았지만 행복했음을 기억하며, 족제비 새끼들의 먹이가 되어 주는 것으로 우주를 품어 안은 모성애를 마감한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비록 적일지라도 그 새끼를 불쌍히 여겨 목숨을 내어준 잎싹은, 진정한 모성애의 완성이고 실현이었다. 흰눈이 아카시아 꽃처럼 내리던 날, 잎싹은 아주 가볍게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았다. 비쩍 말라서 축 늘어진 암탉을 물고 가는 족제비를 보며 자유를 느꼈으리라! 잎싹아, 이제 모든 짐 내려놓고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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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0-11-18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감동적인 책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기회 되면 다시 읽어봐야 할 책으로 꼽고 있고요.

순오기 2010-11-18 20:08   좋아요 0 | URL
몇 번을 읽어도 감동받는 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