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조각보 미래그림책 15
패트리샤 폴라코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1월
구판절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는 패트리샤 폴라코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숱하게 봐 온 올림머리 사진이라 더 반갑다.^^
1944년 미국 미시간에서 태어나,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예술사를 공부했다. 러시아에서 건너온 부모님을 비롯하여 이야기 작가가 많은 집안에서, 그분들이 들려 주는 찬란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가족의 역사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이며, 러시아 민속풍의 그림이 많다. 아들과 딸을 두었으니 진즉 할머니가 되셨겠지!^^

30권이 넘는 그림책을 쓰고 그렸다는데, 내가 읽은 건 12권이지만 사진엔 '꿀벌나무'와 '한여름밤의 마법'이 빠졌다. 내가 읽은 12권의 책 속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할머니의 조각보'는 바로 패트리샤 폴라코의 증조할머니 안나의 어머니부터 패트리샤의 딸까지 6대의 가족사를 펼쳐 보인다. 패트리샤의 증조할머니 안나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배를 타고 왔다. 고단한 항해의 뱃전에 빨간 수건을 쓴 소녀가 패트리샤의 증조할머니 안나다.

그들은 뉴욕에 와서 마차에 짐을 실어 나르는 일과 종이꽃을 만드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러시아와 다르게 붐비는 도시에서 바쁘게 살았다.

증조할머니 안나는 학교에 가서 6개월이 지나자 영어를 할 줄 알아 부모님의 입과 귀가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꼭 얕은 물살이 조약돌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단다. 쉬쉬쉿...

미국 생활은 모든 게 바뀌었지만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안나 증조할머니가 입고 있던 옷과 머리에 쓰는 바부슈카였다. 춤출 때 바부슈카를 치켜들고 나풀거리기를 좋아했고...
러시아어로 할머니를 '바부시카'라 부른다고 <바부시카의 인형>에서 나왔는데, 바부슈카와 바부시카는 다른 말일까? 러시아어를 모르니 알 수가 없네.ㅜㅜ

안나 증조할머니가 점점 자라서 작아진 옷과, 삼촌 숙모의 옷과 앞치마로 조각보를 만들었다.이웃 아주머니들이 옷에서 동물과 꽃 모양을 오려 내었고, 조각보 가장자리는 안나 증조할머니의 바부슈카로 마무리했다. 흑인들의 퀼트와는 또 다른 패트리샤의 조각보가 탄생했다.

증조할머니 가족은 조각보를 씌운 식탁에서 안식일 기도를 하고 식사했고, 아가씨가 된 안나는 사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패트리샤의 할머니 칼을 낳았다. 조각보는 식탁보, 바닥깔개, 후파(결혼식에 신랑 신부를 씌워 주는 천막)가 되고 아기를 감싸는 이불이 되었다.
프로포즈를 하거나 아기 탄생을 축하할 때, 금과 꽃, 소금과 빵을 선물로 주었다. 금은 가난하게 살지 말라고, 꽃은 언제나 사랑받으라고, 소금은 뜻깊게 살라고, 빵은 조금이라도 배고픔을 겪지 말라고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 깊은 선물에 축복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안나 증조할머니의 딸 칼도 자라서 결혼하고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가 바로 패트리샤의 어머니 메리 앨렌, 그때도 어김없이 조각보가 함께 했다.

안나 증조할머니는 패트리샤의 엄마에게 '귀부인 할머니'라 불리며 아흔여덟까지 살며 자손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조각보 이불을 덮고 삶을 마감하셨다.

패트리샤의 어머니 엘렌이 집을 떠날 때 칼 할머니는 조각보를 주셨다. 증조할머니에서 할머니로 다시 어머니에게 대물림 된 조각보다.

패트리샤의 어머니도 조각보 천막 아래서 결혼을 했고, 패트리샤가 태어났을 때도 이불이 되어 준 것은 조각보였다. 패트리샤는 조각보에 있는 동물 모양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다가 잠이 들었고, 어머니는 조각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말은 누구의 옷소매로 만들었고, 닭은 누구 앞치마였는지, 증조할머니의 바부슈카로 조각보 가장자리를 만들었다는 것도. 조각보가 대물림 되면서 가족의 역사도 함께 들려주어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는 교육은 정말 멋지다!

조각보는 패트리샤의 놀이 망토가 되었다가 텐트도 되었고, 마침내 패트리샤가 앤조 마이오와 결혼하던 날에도 천막이 되어 주었다. 물론 금과 빵과 소금으로 꾸민 꽃다발도 들었고, 웃으며 살라고 포도주도 뿌려 주었다. 결혼식의 전통이 이어지는 풍경도 멋지다.

패트리샤가 딸을 낳았을 때도 갓난 아기를 감싼 것은 조각보였고, 딸이 자라서 집을 떠날 때 조각보도 딸을 따라가게 되리라.
조각보로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추억과 전통이 아름답다. 자기 것을 홀대하거나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모계로 이어지는 전통, 나는 엄마로부터 대물림 받은 게 뭐가 있을까? 또 내가 우리 딸들에게 대물림 해줄 것은 뭐가 있을지 궁리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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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3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퀼트 배우잖아요!
아.. 저도 멋진 이불 하나 만들어서, 울 딸아이가 두고두고 간직하도록 해야겠어요... ㅎㅎ

순오기 2010-05-01 14:18   좋아요 0 | URL
퀼트~ 그거 눈을 혹사하는 작업이니가 많이 하지는 마시고, 따님한테 물려줄 멋진 이불 하나 만드시는 정도로?^^

마노아 2010-05-0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있는 책인데 아직 읽지 못했어요. 순오기님의 리뷰를 읽으니 패트리샤 폴라코가 더 좋아져요.^^ '조각이불'과 내용이 비슷해요. 그 책은 상상력에, 이 책은 전통의 의미를 더 새겨주는 듯해요.

순오기 2010-05-02 00:55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갖고 있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곧 패트리샤 폴라코의 책을 모두 소장하게 될 거예요. 불끈~^^

찌찌 2010-05-0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딸 피아노를 사줬는데 천안으로 이사간 친구엄마가 퀼트로 피아노 커버를 만들어 보내 줬답니다. 앞으로 피아노가 더 잘 쳐지겠다며 좋아라 했어요. 한땀 한땀 정성이 느껴지죠. 저도 퀼트를 쪼금 배워서 수고로움과 정성을 암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