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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문고판) ㅣ 네버엔딩스토리 3
이미륵 지음, 이옥용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평점 :
초등 6학년 2학기 읽기 셋째 마당 2단원에 실린 ’옥계천에서’ 원작이다. 소설보다는 동화라고 해야 더 어울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3.1운동 이후 쫒기듯이 독일로 건너간 이미륵 선생이 독일어로 쓴 자전소설로 1946년 독일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독일인들의 눈에는 동양의 신비로운 풍경이, 우리가 어린왕자에 끌리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어로 쓴 가장 빼어난 문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독일 중학교 고과서에 실렸다.
우리 교과서 읽기에는 이미륵(1899~1950) 선생과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옥계천에서’ 전문을 실었다. 교과서에 실린 정규화 번역의 다림출판사 글보다 이옥용 번역의 보물창고 책이 훨씬 더 매끄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냈다. 우리말로 된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 싶은 소망을 스스로 번역하면서, 작가의 느낌과 생각이나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작업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말로 쓴 원작이 없으니 최선을 다한 번역으로 접하는 것도 다행이다. 아래 사진은 교과서에 실린 전문이다.
이 책은 이미륵 선생의 기억에 남은 유년기 추억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기억, 신식학교에서 받은 서양식 교육과 경성의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다 독일로 망명한 것까지 나온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식민지 조선의 문제를 크게 다루진 않는다.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과 정서를 전달하려고 노력했음이 엿보인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조용하고 온화하게 표현하면서 단호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바람직해 보인다. 딸 셋을 낳고 미륵불에서 사십구일 기도를 올리고 얻은 아들이라 아명을 미륵이라 했고, 작가는 이의경이란 본명을 두고 필명으로 썼다.
사촌 수암형과의 유년기는 그야말로 악동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륵은 조용히 수암형을 숭배하며 따랐지만 의외로 만만찮은 고집을 보여주는 아이였다. 짖궃은 장난으로 얼룩진 유년기를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내,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다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간 작가의 삶에 짠한 마음이 든다. 신식학교에 가거나 휴교하는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순종했고, 독일로의 망명도 어머니를 근심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단행했는데, 우여곡절을 거쳐 독일에 도착한 6개월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누이의 편지를 받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아버지와 바둑을 두거나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어찌나 좋아 보이던지 우리 아이들에게도 읽어주었다. 몰래 술을 나누다 어머니에게 들킨 아버지와 두 잔 술에 취한 아들이 나눈 대화는 사랑스런 장면이다.이 장면을 읽고 나서 우리 삼남매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고2를 앞두고 있는 아들녀석이 학교에 다녀오면 두어 시간씩 하는 컴퓨터 게임을 끊으면, 가족 모두 까투리에서 맛난 안주에 생맥주를 사겠다고 했더니 그날로 게임을 딱 끊었다. 그래서 약속대로 1월 24일 다섯 식구가 생맥주 단합대회를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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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조금 마셨다고?니 친구가 있어야 해요."
"오늘 한 번만 봐 주는 거예요!"
"아, 시인에게 술은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어머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 그렇지? 아니, 아버지께는 존댓말을 써야지요. 그렇지요, 아버지?"
"그러게 말이다."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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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시 아이들에겐 이 책에 나오는 놀이나 정서에 공감하긴 어렵겠지만, 나이가 제법 든 어른들이라면 잊고 있던 유년기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좋은 책이다. 바쁜 일상과 도시생활에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유년기의 추억을 되짚어 보는 감흥에 취할 만한 책이다. 박완서 선생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그려진 유년의 풍경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수채화를 감상하는 독서였다. 이미륵 선생의 또 다른 작품 ’무던이’도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