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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2009 골든글로브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과 2009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 음향상까지 8개 부문을 수상했다는 굉장한 광고에도 영화를 놓치고 말았다. 덕분에 원작소설을 보는 즐거움은 한껏 누릴 수 있었으니 오히려 영화를 못 본게 고마웠다. 450쪽이나 되는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잡으면 손에서 놓기 어렵다. 책을 읽는 동안 중독 수준이 알라딘 접속도 안 했다면 이해되려나.^^
비카스 스와루프는 인도의 현직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두 달 만에 집필했다니 정말 놀랍다. 아마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묘사한 신들린 집필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5년 발표된 후 프랑스어, 독일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우리나라 등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하니, 그 인기와 명성에 걸맞게 파리 도서전 독자상, 남아프리카 부커상, 벤저민 프랭클린 상 등 여러 문학상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책 속의 람 모하마드 토마스처럼 작가에게도 행운이 따른 듯하다.
배움이 없는 가난한 웨이터가 TV퀴즈쇼에서 열세 문제를 척척 맞추며 십억의 상금을 거머쥐게 된 열일곱 살 청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퀴즈쇼와 교차 진술된다. 상금을 주지 않으려는 방송국의 음모로 그는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하고, 알지도 못하는 변호사가 그를 구하러 나타난다. 그가 어떻게 모든 답을 알게 되었는지 자기 삶을 들려주며, 퍼즐을 맞추듯 수수께끼가 풀린다. 교묘하게 짜맞춘 문제와 그의 삶이 엮어내는 반전이 놀랍다.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돼 지루할 틈이 없으며, 그의 삶과 퀴즈쇼의 문제가 기막히게 잘 짜인 소설적 구성에 감탄하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신부님 손에 거둬져 힌두교와 이슬람, 카톨릭 세 종교를 담은 이름 람 모하마드 토마스라 불린다. 일곱 살까지는 신부님 손에서 곱게 자라며 글과 영어를 익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성당을 떠난다. 그 후 전전하게 되는 주인공을 따라 인도의 슬럼가 다라비와 델리 등 그의 동선에 따라 거침없이 진행된다. 신부님의 죽음 이후 꼬이기 시작하는 토마스의 삶은, 인도 사회의 밑바닥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고아원 관리자들의 부패, 돈 있는 자들의 욕심과 비열함, 국민에 봉사해야 할 정치가와 경찰들의 썩어빠진 행태는 우리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선이란 탈을 쓰고 행해지는 조직폭력배에게 잡혀 구걸해야 하는 아이들, 그 틈바구니에서 용케 도망쳐 나온 살림과 토마스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비록 열두 살의 어린 나이지만 자기 삶에 용기있게 대처하는 모습은, 아이들을 과잉보호하지 말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신부님에게 배운 글과 영어는 그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성당에서의 성장과정이나 그 후 겪는 인생살이가 결코 만만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사람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된다.
누군가를 돕기 위한 일이 사람을 죽게 하고 그 두려움에 도망쳐 새로운 삶을 살지만, 토마스는 같은 상황이 와도 역시 똑같이 행동 할 것이다. 그의 행운은 늘 손에 잡으면 빠져 나가는 마술 같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가 퀴즈쇼에서 모든 답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마지막에 그를 구하러 온 변호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그가 얻은 행운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그 삶의 결과였음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행운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내게 찾아 온 소중한 인연들을 어떻게 했는냐에 따라 결국은 행운을 가져 온다는 감동이 밀려온다. 읽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을만큼 몰입한 멋진 소설이었다. 영화를 못 봤지만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고 하니까, 아직 책을 못 봤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