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접한 게 몇 년 전이었을까? 서지사항 아래 "1938년 간행된 '조선아동문학전집'을 원전으로 삼았다"는 일러두기 때문인지,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는 식민지 조선이고, 아이가 기다리는 엄마는 해방된 조선으로 인식되었다. 처음 이렇게 다가온 그림책은 여러번 다시 봐도 여전히 같은 의미로만 읽혔다.  

1938년이라면 민족말살통치 기간으로 조선을 병참기지화하고 민족문화를 말살하던 때였으니, 핍박이 강해질수록 조국의 해방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을 기다리는 희망 하나로 견디고 있을 동포에게 낙심치 말라고 쓴 글이 아닐까?

상허 이태준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이 아니라, 단순히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를 그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이기에 나혼자 시대적인 의미로 읽어내고는 콧날이 시큰거렸다. 담채화로 색깔이 절제된 보기엔 평화로운 마을 전경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쳐기 전에 나온 배경이라 또 내 맘대로, 1930년대 강점기 경성이라고 해석한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려본 유년의 추억이 있다면, 추운 날 전차 정류장에서 코가 새빨개지도록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맘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아~ 엄마는 왜 오지 않는 걸까? 전차가 하나, 둘, 셋~ 자꾸 지나 가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달라진 모습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사람들 뒷전에 앉아 뭔가 끄적이는 아이, 기다리는 엄마를 그리는 걸까?  



땡땡 전차는 들어오지만 기다리는 엄마는 오지 않는다. 땅바닥에 엄마를 그려가며 기다리던 아이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정류장 표지판을 잡고 지루함을 달랜다. 



전차가 올때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차장에게 물어보지만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땡땡 소리내며 그냥 지나쳐갈 뿐이다. 아이는 이젠 사람들 앞으로 나서 쪼그리고 앉았다. 엄마는 왜 오지 않는 걸까? 아이의 기다림에 감정이입 된 독자는 덩달아 긴장감으로 팽팽해진다.



그냥 가버린 차장과 다르게 세 번째 온 전차 차장은 친절하게 내려와서 타이른다.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구나.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그냥 가버린 차장과 친절한 차장은 무얼 의미하는지 헤아려 본다. 그냥 가버린 차장은 조선의 해방을 믿지 않는 사람, 세번째 차장은 엄마가 꼭 오실 거라 믿는 아이를 격려하는 것처럼 해방조선을 믿는 사람일까? 아이가 기다리는 정류장 풍경은 30년대 조선 경성을 되살려 낸 듯, 당시 옷차림을 알 수 있는 사람들과 손수레와 자전거도 보인다. 희망전자, 우성의원, 종로식당, 마산정공사, 진미국수, 코니상회, 태양성냥, 저 멀리 동양구락부까지 보인다.  



아이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다. 야속한 하늘은 눈발까지 날린다. 아이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엄마가 빨리 왔으면...... 기다리는 엄마가 더디 오는 것처럼 조선의 해방도 쉽게 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엄마를 기다린다. 기어이 엄마가 오실때까지......




일부 독자들은, 엄마마중 온 아이가 끝내 엄마를 만나지 못한 줄 알고 책을 덮는다. 아이가 기다리는 엄마를 '조선의 해방'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는지 우리 막내와 6학년 아영이에게 물었더니, 둘 다 엄마를 못 만나고 이야기가 끝난 줄 알더라. 맨 뒷장에 눈내리는 골목을 엄마 손잡고 올라가는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ㅜㅜ 엄마 마중 나갔던 아이가 엄마랑 골목길을 오르는 것처럼, 조선의 해방도 꼭 올 거라는 희망을 내비치는 것이라 내맘대로 해석한다. 1938년 간행된 '조선아동문학전집'을 원전은 못 봤지만, 김동성 화가는 원작을 봤을테니 엄마마중의 행복한 결말을 알고 그렸으리라 짐작한다.    



엄마 손잡고 가는 아이를 확대시키면 오른손에 든 붉은 막대사탕까지 보인다.^^



마침내 아이는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엄마 손잡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간다. 1945년 8월 15일 식민지 조선이 해방 된 것처럼...... 하늘은 포근한 함박눈을 내려 축복하고, 엄마를 마중한 아이 등을 쓸어주며 '춥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엄마를 마중해서 장하다'고 가만가만 속삭이는 듯하다. 



코가 새빨간 아이가 엄마 손잡고 가는 모습은 보고 또 봐도 마음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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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09-11-2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책 무척 훌륭하지요. 그런데, 어떤 분이 이 그림책에 대한 혹평을 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나요. 원작을 해쳤다는 것이 그 이윤데요. 그림책 작가의 새로운 해석이 아닐까 싶어요. 겨레아동문학선집 1 <<엄마마중>> 마지막 편이 이태준의 <엄마 마중>이에요. 모두 2쪽 분량의 글은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로 끝나거든요. 이전 작품들을 찾아 모은 겨레아동문학선집에서 있는 대목을 삭제하고 글을 싣지는 않았을거라고 저도 추측하고 있어요. 음, 어떤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요.

순오기 2009-11-29 19:15   좋아요 0 | URL
음, 그런 평이 있었군요.
원전을 안봐서 모르지만, 그림책 엄마마중은 마지막 엄마 손잡고 가는 장면이 있어서 좋아요.^^

잎싹 2009-11-2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하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이 너무 앙징맞아요.
조선의 해방을 기다린다...
정말 다시 한번 읽어봐야할 것 같네요.

순오기 2009-11-29 20:19   좋아요 0 | URL
김동성 그림은 정말 마음에 와 박히죠.^^
나만의 해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