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이의 빛고을 독서마라톤 일지, 9월 30일까지 18,260쪽 달성!
9월 1.2일, 야생초 편지
황대권씨는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계신 투사셨는데, 옥중에서 처음엔 만성기관지염을 고쳐보려고 야생초를 먹은 것이 이내 매료되고 말았다. 감옥에서 쓴 일기라고 해 난 처음엔 되게 어두운 줄 알았는데, 소소한 에피소드와 자세하고 애정있게 그려진 야생초들의 면면들이 재미있었다. 좋지 않은 물과 다기라고는 도저히 말할수 없는 도구들을 가지고 야생초차를 드시는 황대권씨, 너무너무 최고였다. 야생초를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나도 정말 야생초차를 마시고 직접 야생초를 보고싶었다. 정말 둘러보니 그 많던 야생초들은 다 사라지고, 회색의 도시에서 살고 있다 우리들은. 옥중에서 화단을 만들어 야생초를 경작하고, 뽑아 비빔밥을 해 먹고 차를 끓여먹는 생활들이 재미있었다. 어찌나 맛있게 설명을 하시던지, 정말 나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전까지는 안동교도소에서의 이야기였는데, 이번에는 대구교도소에서의 이야기였다. 92년에 안동교도세 들어와 97년에 대전교도소까지의 이야기였는데, 이 책에 나오지 않은 것까지 하면 무려 13년 2개월의 형을 사셨다고 한다. 전두환 시절에 간첩으로 조작되어 무기징역을 살다 정권이 바뀌어 나오셨다고 한다. 후기를 읽어보는데 생각보다 굉장한 분 같으셨다. 나라면 있지도 않은 죄를 조작해 감옥에 무기징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필시 이 분처럼은 살지 못했을 것이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겠지. 하지만 황대권씨는 옥중에서 야생초 화단이며 야생초차, 심지어는 개구리를 페트병에 잡아 기르고 곤충들을 관찰하는 등 스스로 주위에 관심을 갖고 생활하신다. 같은 곳에 있어도 행동과 생각의 문제다. 책을 보다보면 이곳이 '범죄자들이 죄를 짓고 갇혀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9월 3일, 소나기밥 공주

주인공인 '안공주'는 어머니 없이 알콜중독인 아버지와 사는데, 아버지마저 재활원으로 들어가 혼자 살게 된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공주이지만 보조금으로 방세와 전기세도 내는 둥 바지런하게 행동한다. 그 생명력이 너무나 대단하고, 아직 어린 아이가 저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찡했다. 공주가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 때는 학교 급식 때뿐이라 최대한 많이, 빨리 먹다보니 '소나기밥'이라는 별명까지 붙어버렸다. 공주를 놀리는 아이들의 철없음과, 꿋꿋하게 대처하는 공주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공주는 결국 너무 배가고파 마트에서 배달될 식품을 가로채버렸고, 급체로 쓰러져 결국 도와준 아줌마에게 자신이 훔쳤다고 고백해버리고 만다. 이 이야기는 결코 어른들이 공주를 도와주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래도 벌은 받아야 한다했고, 공주는 훔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빚을 갚고 아줌마에게도 사과한다. 어린이가 온전히 사회의 한 자리를 맡는것이 이 이야기의 미덕인 것 같다.
9월 5일, 날아라 태극기
교실 벽에 꼭 하나씩 달려있는 태극기. 매일같이 태극기를 보고 살지만 정작 아이들은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태극기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아이도 흔치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소 닭보듯 태극기를 대하지만,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태극'이란 이름조차 입에 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얄팍한 책이라 금방 읽었지만, 짧고 생생하게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장면을 담아내 책 장면이 저절로 상상됐다. 독립운동을 하는 작은아버지가 머물다 간 방에서 발견된 태극, 일본사람들이 분노하는 걸 보고 복이는 태극이 무얼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호랑이보다 무섭게 생기고, 일본사람만 작아먹고 안개로 변할 수 있어 절대 잡을 수 없는 태극. 수많은 우리민족의 얼과 정신이 그 '태극'에 담겨있었다. 해방이 되는 날, 복이는 새하얀 태극기를 처음 보고 감동겨워한다. 한 나라의 국기에는 얼마나 많은것이 담겨있는지. 태극기가 좀더 소중하게 생각됐다.
9월 6일, 열라라 뇌

과학에 관한 이야기지만 어려운 용어도 별로 없고, 중간중간 만화도 있는 둥 재미있게 짜여져 있어서 금방 읽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심장 등과 함께 대답할 뇌. 그만큼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나 또한 저번 시험범위라 달달달 외웠으나 머리에 남은 건 '중뇌는 눈동자와 홍채의 움직임을 관리한다.'이것밖에 없어 안타깝다. 이 책은 뇌에 대한 상식 같은 것을 확실히 할 수 있어 좋았다. 흐느적거리는 오징어도 뇌가 있어 물 속에서 생각하고 떠 있는다는 것, 몸집에 비례한 머리크기에 따라 지능이 달라진다는 것, 우리 머리는 단단하기 때문에 외부에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적혀 있었다. 인체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라도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책을 보면서 '정말 이런 게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건가?'하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했다.
9월 7일, 읽은척 매뉴얼
읽은 척 매뉴얼!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고 특이하다. 사람의 마음을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는 제목이다. 읽기 쉽지 않은 고전,명작에 대해 남들 앞에서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었으나, 이 책의 목적이 그런 약간은 부끄럽게 노골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죄와 벌, 1984,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개츠비, 연금술사 등등. 제목만 들어본 것도 있고 아주 드물게 읽어 본 것들과, 제목도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소개를 읽어보니 단순히 고전이라 머리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내용에 읽고 싶은 흥미가 생겼다. 결국은 그 책에 대해 더 알게 해주고, 흥미를 생기게 해 주는 것 같다. 제목 그대로인 사람들 앞에서 읽은 척 하며 자신의 지성을 뽐 낼 때도 유용하게 쓰일 것 같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게다가 범상치 않은 문체 또한 읽으면서 더 신이 나게 하였다.
9월 8일, 형제 
같은 배에서 난 존재는 특별하다. 나도 언니와 오빠가 있으니, 함께 자라나며 어려울때 누구보다 힘이되는 남매가 있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니나 오빠가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상상만 해도 정말로 싫었다. 책의 주인공 루크는 반년전에 동생 마우스를 윌슨병으로 잃는다. 동생의 열다섯번째 생일날 어머니는 동생의 물건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하고, 루크는 동생의 일기장을 지키기 위해 그 뒤에 자신의 일기를 써 놓는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서로의 속사정들. 고지도를 좋아했던 마우스는 힘든 투병중에 점점 사라지고, 그 끝에는 바짝 말라버리고 정신병으로 오인받은 동생이 남아있었다. 루크는 마침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비밀을, 인정하고 부모님에게도 털어놓는다. 마우스도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형제는 언제나 '형제'로 남는다. 언제나 같이 있는 형제,남매의 존재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형제 자매들이 오래오래,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9월 9일, 식객24-동래파전 맛보러 간다
만화이기 때문에 쪽수를 0으로 해 놓았다. 저번 23권 이후로 오랜만인 식객이라 반가웠다. 권 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익숙해져 재미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번권은 여러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어 금새 읽었다. 학꽁치, 김치찜, 엿, 소갈비, 동래파전이 나왔는데 학꽁치하고 동래파전은 처음 보는거라 신기했다. 학꽁치 회를 떠서 김밥에 얹어서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비린내가 날 것 같은데 진짜 맛있을까 신기했다. 소갈비는 갈비를 먹어본지 하도 오래되서 진짜 먹고 싶었고, 동래파전은 만드는게 신기하고 재밌어 보였다. 파전이 맛있을 것 같았다. 소갈비에서는 자신이 의사라고 거짓말을 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였다. 엿은 자운선생님의 애인인 할머니가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가서 처음엔 고생하다가 점점 친구를 사귀지만 옆집의 한국할머니는 한국음식과 한국을 거부한다. 처음엔 왜 그러나 싶었더니, 일제강점기때 위안부였던 경험이 있으셔서 아직도 잊지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났다.
9월 10일, 마녀들의 전쟁 - 늑대들의 피

스페인의 판타지 소설은 처음이었다. 어느 시골마을의 빼빼마른 계집아이 아나이드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뺴빼마른 몸매와 못생긴 얼굴로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날, 조금 철이 없기는 했지만 사랑했던 어머니가 갑자기 실종되고 아나이드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된다. 아주 예전부터 이어져 온 마녀들의 전쟁. 아이들을 잡아먹고 영생을 사는 '악'의 마녀 오디시와 '선'의 마녀 오마르.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옆집 부인과 선생님, 고모할머니는 오마르였던 것이다. 빠른 속도로 마법을 배워가는 아나이드는 오디시들에게 잡혀간 어머니를 구하러 가는 여정을 떠난다. 그냥 가볍게 보려고 빌려왔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과연 아나이드는 오디시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구할 수 있을지, 마녀들의 전쟁은 어떻게 끝날지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9월 12.13일,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씨는 자신을 참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성이 한씨인 것도, 우리 아빠와 같은 나이인 58년 개띠인 것도, 셋째 딸이라는 것도 모두 마음에 든다고 썼다. 일단 진심으로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좋아해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이 보기에도 빛나보이는 듯 하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한비야씨를 얼마전에 보게 되었는데, 내 예상과는 살짝 다르게 말이 무척 빠르고 목소리가 높으셨다. 분명 조용한 분이실거라 철썩같이 믿고있던 예상이 살짝 깨져서 놀랐다^^. 지금의 기운차고 적극적이신 한비야씨의 모습에는 어린시절에 졸졸거리며 심부름을 도맡아하느라 칭찬을 많이 받았던 '우물집 셋째딸'이 분명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인간 한비야의 모습이 많이 들어 있었는데, 한비야씨가 우울증 증세에 말라리아 증상이 겹쳐져 우울해 했을 때 사실 조금 놀랐다. 한비야씨가 쓴 책의 영향인지,언제나 활기차기만 할 것 같던 한비야씨도 우울해 할 때가 있다는 게 책을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 같다ㅎㅎ.
고등학교 1학년때 단짝 친구와 1년에 백권읽기를 약속한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한비야씨. 전국민이 1년에 백권읽기를 실천한다면 정말 좋을거라고 쓰셨는데, 내가 생각해도 좋은 것 같다. 나는 다행히 집에 책이 많이 있는 편이지만 다른아이들은 정말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책 읽는 습관의 중요성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도 1년에 백권은 안 되도 꾸준히 책을 읽어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매번 느낀게 한비야씨는 자신의 삶을 참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거다. 월드비전의 구호팀장, 늦은 나이에도 외국어를 배우려는 결심 등. 특히 외국어는 배우면 참 좋을 것 같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친 중국인 여자를 도와주고 천사라는 소리도 듣고, 활용도가 참 많다 외국어는. 자연재해가 일어나가나 기아로 인해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을 도우러 냉큼 달려가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분이다!
9월 14.15일, 꾀주머니 뱃속에 차고 계수나무에 간 달아 놓고
학교 논술대회에 나갈 책으로 선정되어 도서실에서 빌려왔는데, 간단한 걸 원했던 나와 달리 구어체의 문장과 줄줄 기다란 문장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며칠을 내버려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그런데 시작과 달리 처음 읽기 시작하니까 우리 고전 특유의 맛깔나는 문장과 이야기에 순식간에 절반을 읽을 수 있었다. 그전에 알고있던 짤막한 토끼전과 달리 내용이 훨씬 길고 추가되어 있었다. 특히 그 재미있는 문장들이란 정말, 금상첨화였다. 용왕이 토끼의 간을 구해오라고 신하들을 불렀을 때 바다속 생물들이 꼭 사람마냥 벼슬을 달고 줄줄줄 입궁하는 장면도 재미있었고, 산짐승들이 잔치를 해 서로 나이를 대며 허풍을 치는 모습들도 재미있었다. '자네들 내 나이를 들어보소. 자네들 내 나이를 들어보소.'이런 것 처럼 문장을 반복하는 것도 실감이 났다. 처음에는 학교 숙제로 읽었지만 나중 갈수록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 같다.
전에 알지못했던 내용들도 들어가있어 읽는내내 흥미가 일었다. 토끼가 별주부의 아내와 잠자리를 갖고, 별주부의 아내가 토끼를 그리다 상사병에 걸려 죽고, 지상으로 돌아온 데서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또다시 토끼의 지혜를 보여주는데도 놀랐다. 외간남자라 칠 수 있는 토끼와 정을 통하고, 끝내는 상사병에 걸려 죽은 별주부의 아내가 조선시대에 들어있었다는데 놀랐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웃었으면 그 때에도 이런 아내들이 있었을 법 하다. 정말 뱃속에 간 대신 꾀주머니가 들어있는 듯, 용궁 전체를 훌륭하게 속인 토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드라마틱한 인생이다. 게다가 이렇게 힘들게 돌아온 육지에서는 또 사람의 덫에 걸렸다가 파리똥을 몸에 붙여 벗어나고, 매에게 잡혔을 때도 용궁을 속인 세치 혀로 속여 또 살아남는다. 정말로 대단한 동물이다, 토끼는! 다만 가장 불쌍한 건 별주부. 아내의 마음도 뺏기고, 토끼도 데려가지 못하고, 정말 불쌍하다.
9월 16일, 록밴드 비틀스의 작은 이야기
'비틀즈'하면 가장먼저 생각나는 건 'let it be'뿐이다. 영어학원에서 들어본 'obladi oblada'도 포함되겠다. 비틀즈는 너무 먼 세월의 이야기인 나에게, 이 책은 비틀즈를 좀더 쉽게 이해하는데 편했다. 어린아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멤버 개인들을 어린시절부터 비틀즈가 되어 성공하기까지 한 명 한 명 나타내고, 비틀즈의 전체적인 부분을 나눠 대표곡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다만 역시 짧은 책이므로 언젠가 봤던 비틀즈에 대한 책에서 나타난 그들의 고난과 방황했던 일들은 나타나지 않고 다만 '행복했다,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이렇게 나와있어 약간 실망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얼마 전 죽은 마이클 잭슨이 갑자기 떠올랐다. 자신의 팬이라고 했던 사람에게 총에 맞아 죽어갈 때, 존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들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이었고, 짧았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사람들인 것 같다.
9월 17일, 어절씨구 열두 달 일과 놀이

초등학교때 배웠던 '농가월령가', 일년 열두달 불렀던 농사 노래를 설명해 놓은 그림책이었다. 생각보다 그림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서 더 좋았다. 오월령에는 단오가 있어 여자아이들이 그네를 타는 그림도 그려져있었고, 팔월령에는 서서히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과 허수아비들, 시월령에는 추수를 마치고 텅 빈 들판과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는 장면들이 재미나게 그려져 있었다. 계절마다 그 달의 행사나 놀이같은 것도 나와있었는데, 십이월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잔 아이가 눈썹이 하얗게 칠해진 그림이 웃겼다. 뒤에는 여태 나왔던 그림들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돌을 끼워두는 과일나무 시집보내기, 연자방아,물레방아 찧기, 타작마당 등이 신기했다. 힘든 농사일이지만 일년 열두달 이렇게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열심히 살았나 보다, 옛날 사람들은. 농가월령가를 보니 나까지 기분이 흥겨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9월 18.19일, 효재처럼 살아요
여자들의 로망의 삶을 살고있는 이효재씨. 보자기 공예, 한복집, 인형옷 등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감탄스러웠다. 사진과 글이 5:5로 넉넉하게 짜여져서 좀더 구체적인 상상을 하고, 실제 효재씨의 집과 삶이 이런거구나,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주로 자연을 찍은 사진이 많아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의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소꿉 살듯'살림을 하시는 효재씨. 페트병에 오곡을 담아 부엌 창가에 올려놓고, 마음 담은 선물들을 예쁜 보자기에 싸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아기자기 예쁜 인형옷을 떠 인형에게 입혀주고ㅎㅎ. 전에는 소꿉 살듯 살림한다는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책을 조금 읽고나니까 이제 알겠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넉넉히 여유가 있어보이는 모습이 부럽다. 우리들 집에서는 아기자기하게 인형옷 뜰 시간에 돈 한 푼 더 버는게 당연한데 말이다.
어머니도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셨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이 효재씨의 삶을 부럽다고 쓴 반면에 '당신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고 쓰셨다. 세 남매를 낳고, 키우고, 남편과 지지고볶고 힘들어도 이렇게 사는 자신의 삶이 더 마음에 든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이것에 공감한다. 사람에겐 자기에게 딱 맞는 옷처럼 정해진 삶이 있는 것 같다. 한복과 보자기, 인형옷 등을 만들고 가르치시는 효재씨는 효재씨의 삶이고, 우리에겐 우리들 자신에게 맞는 삶이 있다. 다만, 나도 오십이 되었을 때는 이렇게 편안하고, 넉넉하게 세상을 살아갔으면 싶다. 지인들에게 조그마하지만 정성과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하며 그렇게 주고, 받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9월 22.23일, 조선왕조실록 14 - 숙종실록
만화이기 때문에 0쪽으로 해 놓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권, 숙종실록이 왔다. 내가 외워왔던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에 '숙'자가 추가되는 날이다. 개국때부터 시작해서 쭉 봐왔던 조선왕조실록이지만 최근에 본 인조, 효종, 현종 등은 복잡해지는 정치와 당파싸움이 시작되어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오랜 기간을 두고 다시 보는 거라 전 권의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았고, 이래저래 복잡한 숙종실록이었다. 14살의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숙종이었지만 수렴청정도 없이 바로 친정을 시작한다. 대신들에게 휘둘림 없이, 오히려 당파 싸움의 뒤에서 그 싸움을 이리저리 조종하며 여러 환국을 만들어 정치의 흐름을 자신에게 집중한 숙종이었으니, 정치적 수완은 뛰어나다 하겠다. 다만 그다지 이룬 성과가 없어 아쉬웠다.
드라마로도 많이 제작되고, 연산군의 녹수와 함께 조선시대 희대의 요녀로 표현되는 장희빈이 숙종 시대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이용 만화책으로 장희빈을 본 게 기억나는데 그 책에서는 장희빈과 숙종의 사랑을 참 아름답게 표현했던 것 같다. 음, 그 때 그 기억에서도 희빈이 사약을 먹고 죽는게 굉장히 신기하고, 집중이 잘 됐던 것 같다. 다만 숙종실록에선 희빈이 사사되는 장면이 없어 의아했는데, 뒤에 작가의 후기에는 자신도 그 장면이 드라마에서 제일 많이 회자된다는 걸 알고 있으나, 정사에 없기 때문에 뺐다고 한다. 난 장희빈이 굉장히 오랫동안 숙종과 사랑한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다들 짧은 사랑이었다. 숙종의 정치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중전으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환국은 참 어이가 없었다.
9월 25~27일,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의 소개글은 정혜윤씨가 어릴 적 책을 읽었던 경험부터 시작한다. 메리 포핀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빨간 머리 앤 등을 읽으며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나름 진지한 생각도 하고, 책 속 인물들을 누구보다 가깝게 느끼기도 했다. 확실히 책의 재미를 일찍 안다는 건 축복이다. 이렇게 책을 읽었던 것이 커서도 그대로여서 마침내는 자신이 책을 쓰는 사람이 됐으니, 정혜윤씨와 책은 정말 뗼래야 뗼 수 없을 것 같다. 진중권, 공지영, 신경숙, 박노자 등의 명사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인데, 왜 제목이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인지 이제 알겠다. 진중권 씨의 '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는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도서관'이라는 거대한 머릿속의 개념과 그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떠나는 행위'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자꾸 헷갈렸다. 정이현씨의 글은 그나마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공지영,김탁환,임순례,은희경씨의 인터뷰를 읽었다. 솔직히 전부 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문장들과 들어 본 적 없는 시와 소설, 문구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쨌든 공지영씨는 나도 알고 있던 분이라 그나마 부담을 덜었다. 공지영씨가 정말 공자의 78대손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세 번 이혼을 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실 이혼을 몇 번 했건 그런 것은 상관 없는 일이지만, 그 이후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김탁환씨가 고등학생의 나이에 '척추에 구멍을 내서 피리를 만들어 달라'라는 범상치 않은 내용의 시를 좋아했다는 것이,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 시를 좋아했다는 것은 거기에 나온 만큼의 고통을 이해하고, 동감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인생에서 겪은 아픔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 같다.
어린시절 말없고 내성적이고 책 읽는 걸 좋아했다는 이진경씨, 공부를 잘 했는데 특히 수학문제를 좋아하고 잘 풀었다는게 우리집하고는 참 달랐다. 우리는 다 전형적으로 문과쪽들이라, 팔에 마비가 와서 수학시험을 망치자 대학 수학 교재를 사서 풀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친구를 따라 수학 수업을 쫓아들었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도 당하셨다는데, 참 다이나믹한 삶인 것 같다. 시골에서 자라나 책을 읽을 때만 엄마가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신경숙 씨. 셋째오빠와 책 쟁탈전이 심했다는데, 역시 작가가 될 사람이니까 어려서부터 싹이 보였구나 싶다. 이렇게 많은 분들에 인생에 책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부분이었다. 책이란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나, 싶기도 하고. 어떤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책은 사람을 꿈꾸고, 희망하고, 지탱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드디어 다 읽었다는 해방감이 들었다.
9월 29일, 토끼전
완전히 옛날 장터에 서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듯 생생하게 읽었던 저번 '계수나무에 간 달아놓고~'와는 달리, 이번 토끼전은 어린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비교적 말이 순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짧기는 훨씬 짧았으나, 그 구수한 입말 특유의 재미는 반감돼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 토끼전은 인간에게 잡히고, 매에게 잡혔던 계수나무의 뒷부분과 달리 또다시 용궁과의 추격전을 벌인다. 지상으로 돌아간 토끼에게 속았다는 분함에 용왕이 산신령에게 명을 내려 토끼를 잡아오라 시킨 것. 다시 꼼짝없이 용궁으로 잡혀 들어간 토끼는 또 다시 재취를 발휘해 저번에 왔을때 용왕의 아내에게 입을 맞춘 것을 기억하고는, 그것으로 용왕이 죽고 새로 용왕이 된 용왕의 아들을 속인다. 정말이지 재치 넘치는 토끼다. 작은 몸집이나 모습에 상관없이, 살아남으려면 머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고전이었다.
9월 30일, 심청전
옛날이야기에 단골로 나오고, 신데렐라와 같이 단숨에 신분상승한 여자의 대표 캐릭터 심청전이다. 공양미 300석이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인당수로 다이빙하러 간 심청은 도대체 그 중들의 뭘 믿고 자기 목숨을 걸었을까? 쌀을 주고 기적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의 힘은 무슨 병원 차리는 힘인가, 아니면 그냥 공짜로 해줘도 될 것을 쌀은 중들에게 힘을 발휘하기 위한 에너지 같은건가?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그저 믿었던 어렸을 때와 달리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위해 이것저것 다하고 목숨까지 바치면 신분높은 자의 아내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라는 이야기. 언젠가는 쨍 하고 해 뜰이 온다는 그런 믿음일 것일까? 어쨌든 조선시대 효성깊은 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동화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