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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 늙다리 ㅣ 보리피리 이야기 5
이호철 지음, 강우근 그림 / 보리 / 2008년 12월
평점 :
다큐영화 '워낭소리'로 진한 감동을 받았는데,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워낭소리라고 이해된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늙다리 소의 추억을 풀어 놓은 이호철 선생님의 이야기다. 이호철 선생님은 '살아있는 글쓰기'와 '살아있는 교실',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등 학교 현장에서 필요한 지첨서 같은 책을 많이 쓰셨다. 이오덕 선생님과 더불어 아이들에게 어떤 글쓰기를 가르쳐야 하는지 알려주신 분이다.
작가님의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글과 어우러진 그림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 폭의 동양화 같고, 소 먹이던 기억이 있는 어른 독자에겐 추억의 한 귀퉁이를 슬쩍 비집고 들어올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우리 어려선 소가 큰 재산이었고, 자녀들의 학자금이었고, 농사에 꼭 필요한 위대한 일꾼이었다. 내가 직접 꼴을 베거나 소를 돌보진 않았지만 내 동무들이 학교만 갔다 오면 꼴을 베고 소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겐 익숙한 유년의 추억을 불러다 주었다.
엄마 소와 송아지가 여물을 먹는 모습은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한다. 쌀뜨물과 구정물을 모아 솥단지에 붓고 말린 풀이나 짚을 적당하게 썰어 넣고 푸욱~ 끓이면, 소가 좋아하는 소죽이 된다. 거기에 콩깍지나 콩을 듬뿍 넣어주면 최고의 영양식이 된다. 어린 호철이는 소죽을 끓이는 일을 맡아서 착실하게 해냈다. 때론 동무들과 노느라 어머니가 부른 소리를 못 들은 척하기도 했지만... ^^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뜯기며 악동들은 개울에서 가재을 잡거나 밀서리를 해 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해질녁이면 꼴을 베어 소를 몰고 돌아오는 행렬은 신성했고, 제 할일을 해낸 뿌듯함으로 당당하게 돌아와 저녁밥을 먹었다.
어느 날, 호철이는 사라져버린 소를 찾아 공포의 공동묘지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만 놀란 늙다리는 무서워 벌벌 떠는 호철이를 두고 제 새끼만 데리고 내뺐다. 화가 난 호철이는 고삐를 바투 잡고 늙다리를 마구 때렸다.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다가 돌멩이를 들어 사정없이 때렸다. 늙다리는 주둥이에선 피가 흐르고 얼마나 놀랐는지 똥을 싸버렸다. 앗차~ 싶은 호철이는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와 말없이 밥을 먹었다. 외양간에 갔던 아버지는 피가 난 늙다리를 보고, 어느 놈이 이리 해 놓았냐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호철이는 소가 이리 맞도록 몰랐냐고 다그치지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밤중에 등불을 들고 슬그머니 외양간으로 다가간 호철이, 늙다리가 눈물 흘리는 걸 보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확 치밀어 올랐다. 늙다리에게 미안해서 풀도 갖다 주지만 늙다리는 외면을 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미안함에 밤새 뒤척인 호철이, 날이 밝자 외양간으로 달려갔다.
'늙달아, 내 다시는 안 그러께. 늙달아 참말로 미안하대이'
늙다리는 알았다는 듯,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호철이는 짐승이라도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호철이와 늙다리 소는 그렇게 미운정 고운정 들여가며 유년의 추억을 함께 나눴다.
호철이와 늙다리 소 이야기는 어린이를 위한 워낭소리로 읽힌다. 짐승과 사람도 함께 지내며 정이 들고, 해야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저절로 알아간다. 서로 돌보고 도와주는 공생 관계였던 농촌의 모습은 이제 추억 속 한 폭의 수채화다. 이 책은 그런 추억의 수채화를 불러내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