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김주영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 바로 내 어린시절 이야기라 공감이 갔다. 삽화가 곁들여진 한편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추억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농부인 박기도씨나 그 딸 재희가 아닌 똥친 막대기가 주인공이다. 백양나무 곁가지였던 똥친 막대기는 재희네 가족의 삶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똥친 막대기의 시선으로 본 재희네 가족 이야기와 더불어 산전수전 다 겪은 똥친 막대기가 나무로 뿌리 내리는 야무진 꿈을 이루는 즐거운 감동이 있다.  

챕터 하나의 에피소드가 한 편의 단편소설 같은 맛이 난다. 화물차 기관사인 이장의 아들이 날마다 마을 앞을 지나며 울려대는 기적소리에, 놀란 암소가 써레질을 하다 달아나 버려 휘초리로 쓸려고 백양나무 곁가지를 자른 박기도씨. 하지만 새끼를 가진 암소의 등짝을 때리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막대기를 집으로 가져와 싸리울에 세워두었지만, 공부가 형편없다고 회초리를 가져오라는 엄마의 서슬에 회초리를 찾는 재희의 손에 들린 막대기. 엄마는 재희가 빌거나 도망치기를 바랬지만 당당하게 목침 위에 올라선 재희의 종아리를 세차게 내려친다. 말리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면서... 

매를 맞고 쓰러진 딸을 끌어안으며 눈물 흘리는 엄마는 연고를 발라 주고, 다음 날엔 학교도 쉬게 한다. 부모 마음은 다 이런 것이거늘... 나도 어린시절 매맞을 일이 있으면 빌거나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맞았다. 훗날 엄마는 도망칠 줄도 모르냐면서...에미 맘을 그리도 모르냐고 푸념하셨다. 내가 엄마가 돼 보니 그 마음을 알겠더라. ^^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게 된 막대기는 측간으로 쫒겨나고, 항아리를 묻고 발판을 걸친 측간에서 볼일을 본 박씨는 똥덩어리가 빨리 삭아 거름이 되라고 휘휘 젓는 똥친 막대기로 쓴다. 아~ 이 일을 어쩐다냐? 그 오물을 뒤집어 쓴 막대기의 운명은 이렇게 끝날 것인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몸을 버린 똥친 막대기는 동무들의 놀림에 당당히 맞서는 재희의 손에 들려 위력을 과시한다. 나 어릴때도 이런 녀석들이 있었다.ㅋㅋㅋ 

재희의 손에 들려 논에 나간 똥친 막대기는 파리 한마리 꿰어진 낚시대가 되어 개구리를 잡아 올린다. 착한 딸 재희는 엄마의 몸보신을 위해 똥친 막대기의 허리가 휘어지도록 개구리를 잡았다. 나도 어릴 때 동무들이 잡아온 개구리를 깡통에 끓여 뒷다리 하나 떼어 주길래 먹어 봤는데 닭고기 맛이었다.^^ 

낚시대에 임무가 끝나자 졸지에 봇도랑에 버려진 똥친 막대기는 홍수를 만나 떠내려 가다가, 돼지 등에 올라타고 넓은 들판으로 나와 드디어 뿌리 내릴 곳에 이르게 된다. 회초리 매에서 똥친 막대기와 개구리 낚시대도 되었지만,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다. 똥친 막대기는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미나무가 살았던 것처럼 몰아치는 비바람과 천둥 번개에 겨울 칼바람을 이겨내며 의연하게 살아갈 것이다.  

수채화 같은 내 어릴 적 고향 풍경을 그려내며 생명 철학을 담아 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 똥친 막대기는, 어른들에겐 유쾌하고 따뜻한 추억여행을 선사하고 어린이들에게 옛날엔 이런 뒷간에서 볼일을 봤구나~ 이해하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강산의 삽화가 참 정겹고,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발견하는 기쁨은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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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9-02-1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똥친막대기가 그런 데 쓰이는 거였군요. 뜻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 ^^;

순오기 2009-02-19 00:38   좋아요 0 | URL
흐흐~ 시골 출신이 아닌 분들은 잘 모르실 듯...
저런 측간에서 볼일을 본 적도 물론 없겠죠?^^

마노아 2009-02-1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대기가 주인공이었군요. 표지 그림의 단발머리 아이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자주자주 들여다보았는데 보관함에만 계속 머물러 있었거든요. ^^

순오기 2009-02-19 02:52   좋아요 0 | URL
그림도 스캔받아 한 컷 정도 올려볼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2-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부터 만점 인데요 ^^;;
저는 기억에 없는데 어릴때 사진보니까 비료포대 하나가득 개구리를 잡아서 한마리는 손에 기념으로 들고 찍은 사진이 있더라구요.. 그땐 개구리가 많았나봐요.

순오기 2009-02-20 01:35   좋아요 0 | URL
개구리가 많았죠~ 우린 풀꿰미에 줄줄이 꿰어 잡아오면 삶아서 닭에게 먹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