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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요 선생님 - 남호섭 동시집
남호섭 지음, 이윤엽 그림 / 창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남호섭 시인의 '놀아요 선생님'은 2007년 울산시가 수여하는 '제1회 서덕출문학상'을 받았는데, 2회 수상작인 신형건 시인의 '엉덩이가 들썩들썩' 때문에 알게 되었다. 2009년 내가 처음 읽은 책이고 첫 리뷰다.
남호섭 시인은 간디학교 선생님으로 처음 접하지만, 시를 읽기도 전에 시인이 쓴 머리말부터 찡한 울림이 왔다. "교사로 살다가 힘겨울 때, 나는 시인이지 하면서 얼른 시 뒤로 숨었다. 시인으로 살다가 부끄러울 때, 그래 나는 교사지 하면서 학생들 뒤로 숨었다." 고 고백하는 그의 시에선 간디학교 생활이 잘 드러난다. 그들의 학교생활이 부럽고, 우리 애들도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자연과 하나된 모습이 좋았다.
만우절에는 '오늘은 쉽니다' 교무실 문에 써 붙여 놓고 선생님들이 먼저 도망가는 학교, 아이들이 쌤이라 부르면서 싸준 김밥을 들고 소풍을 간 선생님, 시를 읽으며 삶도 읽어내도록 가르치는 시인선생님, 처음 오신 선생님을 환영한다며 냉이와 달래 광주리를 내미는 아이들, 교문 없는 학교라 동네 개들까지 모여 들어 네 다리 쭉 뻗고 잠드는 풍경까지... 경쟁을 부추기는 도시의 공교육 현장에선 느낄 수없는 것들이 부.럽.다. 이 시집엔 관념어로 된 시는 찾을 수 없다. 짐짓 꾸미지 않은 생활 그대로 그려낸 시인의 시적 진술에 감동이 된다.
네살 때 미국 가서 / 아버지가 박사 될 때까지 / 우리말 모르고 지내다가 / 우리나라 학교에 와서 / 수업 알아들을 수 없어 / 말문 막히고 마음 문 막힌 정식이 / 숲길로 산길로 산책하면 친구들이 하나 둘 함께 걸어주어 천천히 마음 문 열어 갔다는 진술에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더 공감이 됐다. 표제가 된 '놀아요 선생님'은 공부하기 싫어 떼쓰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대응이 유쾌하다. 건강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놀아요
이렇게 날씨 좋으니까 놀아요.
비오니까 놀아요.
(눈 오면 말 안 해도 논다.)
쌤 멋지게 보이니까 놀아요.
저번 시간에 공부 많이 했으니까 놀아요.
기분 우울하니까 놀아요.
에이, 그냥 놀아요.
나는 놀아요 선생님이다.
한솥밥을 먹으며 한 식구가 되어 가는 간디학교 풍경이 쓱쓱 그려진다. 환경을 위해 일반 치약을 '물사랑' 치약으로 바꾸자는 지구특공대 동아리의 치약전쟁과, 힘들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와 울고 불다가 졸업하면서 '내 여자 친구'라고 선생님 핸드폰에 새겨 놓고 떠난 현정이. 바쁠 것없는 시골 마을버스와 뭔가 없어지면 두양댁 할머니가 다녀갔다는 걸 아는 도둑할매. 말 못하고 걷지 못하는 손녀를 돌보느라 머리 빗을 새도 없는 명동댁 할머니는 귀신 할매로 불린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어우러진 정다운 모습이 동시를 통해 오롯이 살아난다.
특히 시집 뒷편에 실린 신경림 시인의 해설은 독자가 놓친 것들과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들을 친절히 알려준다. 밝고 환한 이미지와 활기찬 언어 구사가 뛰어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살아가는 힘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자연을 꿰뚫어 보는 눈과 사람이 아름답게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도록 돕는다. 사는 것의 진정성을 똥을 누는 소를 보면서도 깨닫게 된다. 정말 내 맘에 쏙 드는 시집이다.
똥
풀 뜯는 소가 똥 눈다.
긴 꼬리 쳐들고
푸짐하게 똥 눈다.
누가 보든 말든
꼿꼿이 서서
푸짐하게 똥 눈다.
먹으면서 똥 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