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별 때때롱 (양장) 개똥이네 책방 1
권정생 지음, 정승희 그림 / 보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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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님이 보내준 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2008 올해의 좋은 책 설문에 답하려고 서둘러 읽었다. 권정생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어린이 잡지에 2년간 연재했던 것을 묶었는데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서도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환상동화를 남겨주셨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선생님은 집필하는 동안 당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을 예감하고 그토록 사랑한 어린이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작품에 다 담았을거라 짐작해본다.

순수한 동심으로 한번쯤은 상상해 봤을 지구 밖의 생명체와 소통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화로 그림자 극을 보는 듯한 삽화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새달이와 마달이 형제가 어찌나 익살맞고 귀엽던지 보는 내내 즐거웠다. 삽화의 수준을 넘어 그림책으로 분류해도 좋을 듯하다.



시골에 사는 새달이와 마달이가 랑랑별에 사는 때때롱과 매매롱 형제랑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나누는 꿈같은 일이 전개된다. 다들 잠든밤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엄마와 아빠는 형제의 말을 믿어주고 약간의 동조도 해준다. 여늬 부모 같으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무시했을 테지만,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부모상은, 이렇게 아이들 말에 귀 기울이고 믿어주는 새달이와 마달이 부모님 같은 분인가 싶다.  아이들과 주고 받은 일기장과 편지, 사진을 보는 부모로서 믿지 않을 수 없기는 하겠다.^^
이야기는 비약 발전하고 새달이네 개 흰둥이와 소 누렁이까지 때때롱을 만나러 하늘로 오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날마다 날개야 나온나 날개야 나온다' 하루 다섯번씩 열흘간 주문을 외운 흰둥이에게 날개가 솟은 것이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바로 표지 그림이다. ^^



흰둥이의 꼬리에 매달린 누렁이와 그 꼬리에 매달려 하늘로 오르는 새달이와 마달이가 부럽기조차 하다. 아마도 어린 독자들은 엄청 부러워할 것 같다. 랑랑별에 도착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려 친구로 지낸다. 놀랍게도 때때롱 별에선 사람들이 원시적으로 살고 있다. 과학의 이로움을 빌리지 않고 모든 걸 아끼고 절약하는 게 몸에 밴 생활을 한다. 반찬도 딸랑 세 가지 이상은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다 맛있어서 새달이와 마달이도 맛있게 먹는다. 너무 많은 음식을 차리고 버려지는 게 많은 우리의 식생활태도를 나무라는 작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ㅜㅜ 

새달이와 마달이는 때때롱 가족과 같이 500년 전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과학이 발전하여 모든 일은 로봇이 대신하고 목에 매달린 스위치만 누르면 원하는대로 척척 다해준다. 사람이 할 일 없는 세상은 무슨 재미로 살까? 좋은 유전인자만 골라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아이들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지도 않으며 부모 형제와 제각각 떨어져 산다. 이 책은 5~6학년으로 분류되었지만, 3학년 정도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님은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다가 없다가 한다고 미안해 하셨지만, 아이들 상상의 나라에선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듯한 얘기다. 작가의 따끔한 일침을 깨달을 수 있는 주제의식도 좋다. 과학이 사람의 전유물이 아닐진대 함부로 사용함으로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부모 없이도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복제의 잘못을 일깨우고 있다. 못생겨도 부모의 생김을 닮아 태어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일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생명을 소중이 여기고 자연을 귀하게 여길 때, 그 생명질서를 깨뜨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의 철학이 잘 녹아있는 동화다. 별 생각없이 세태를 따라 영어식 표기를 많이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억지스러움 없이 예쁜 우리말을 잘 살려 쓴 작품이라 더욱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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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0-2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명제예요. 이토록 자연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신 분이 이제 안 계시다는 게 참 슬퍼요.

순오기 2008-10-27 20:46   좋아요 0 | URL
권정생선생님이 세상에 안 계신 건 슬프지만 이젠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위로를 삼아요.ㅜㅜ

메르헨 2008-10-2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선생님 글이었군요.
네...발전이 행복은 아니죠.^^
예쁜 우리말책이라고 하시니 더 보고 싶네요.^^

순오기 2008-10-27 20:48   좋아요 0 | URL
영어식 표기는 거의 없어요. 로봇, 카메라 이런 정도 빼고는...^^

후애(厚愛) 2008-10-2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는 배울 점이 많은 책이네요.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요^^; 저는 권정생선생님의 글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순오기님이 쓰신 서평을 보니 읽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_@

순오기 2008-10-27 20:49   좋아요 0 | URL
권정생선생님의 동화는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답니다. 강아지똥이나 몽실언니 등은 동화계의 전설이요.^^

가시장미 2008-10-2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그림도 특이하고 너무 잼날 것 같네요. 우리 희망이한테 읽어줘야 겠네요 ㅋㅋ

순오기 2008-10-28 08:12   좋아요 0 | URL
그림자 그림이 정말 예뻐요~~ 태교에도 좋을 듯...

bookJourney 2008-10-28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글도, 그림도 참 좋아요~.

순오기 2008-10-28 08:12   좋아요 0 | URL
권정생 선생님 글에 이런 멋진 그림이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