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글이 있음을 감사하며 읽을 책 '뚜깐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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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깐뎐 ㅣ 푸른도서관 25
이용포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0월
평점 :
올해로 한글날이 562돌이 되었으나 영어 몰입교육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때에, 우리의 한글사랑을 되새겨 볼만한 책이 나왔다. 바로 청소년 소설 '느티는 아프다'로 알려진 이용포 작가의 '뚜깐뎐'이다. 중국의 문자를 최고로 알던 조선조 우리글이 홀대받던 연산군 때, 우리글 사용을 금지하고 서책을 불태웠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적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다. 작가는 20년 전 떠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10년 전 1,200매의 원고로 썼고, 다시 2년을 다듬고 다듬어 원래의 절반 분량으로 출판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20년 동안 작가의 가슴에서 숙성되고 곰삭았을 이야기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감동이 왔다.
'뚜깐뎐'은 똥뚜깐에서 낳았다고 뚜깐이란 천한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수많은 여자들의 대명사 같은 뚜깐이 주인공이다. 어려서 선채로 오줌을 누기도 했던 당찬 그녀가, 나라말이 핍박받던 때에 남몰래 글을 배운다. 사부에게 '해문이슬-해를 물고 있는 이슬'이란 고운 이름을 받아 시문을 썼다는 설정하에, 딸에게 대물림되는 서책과 시문이 적인 비단 한 조각의 진실을 밝혀가는 이야기다. 하나 남은 비단 한조각의 시문을 물려받은 제니가 사는 현재는, 고도의 기술문화를 자랑하는 '한글창제 600년'이 되는 2044년 6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별볼일 없는 허섭쓰레기 같은 천조각 하나를 엄마의 유물이라고 전하며 몇만 달러의 가치가 있을거라는 엄마의 새아들 캐빈의 말에 솔깃한 제니는 뚜깐뎐을 만난다.
뚜깐뎐의 소제목마다 인용된 해문이슬의 시문은 정축년(1517년)부터 을사년(1545년)까지 이어진다. 뚜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구성되었기에 시대순으로 나오진 않는다. 작가가 지어낸 시문일진대 마치 그 시대에 지어진 시문을 보듯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잠시 감상하시길......
한 걸음 앞서 진 곳을 짚어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고
깊은 산골 외로이 걸을 때 말벗이 되어 주던
괴팍한 늙은이의 지팡이
타락한 세상을 꾸짖어 땅을 때린다
할(喝)!
뚜깐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시문을 먼저 선보이고 시문이 어떻게 쓰여졌을지 짐작케 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임금의 잘못을 꾸짖는 벽서가 붙으므로 우리글이 핍박받았음을 보여주고 중세국어와 가장 가깝다는 전라도 말의 구수함을 맛볼수 있다. 사랑으로 엮어졌으면 좋을 듯한 바우뫼와 뚜깐의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좋고, 오로지 글을 배워 연모하는 서진도령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뚜깐의 마음도 귀하게 읽힌다. 뜰에봄의 신분을 위장한 것에서 멋진 반전을 기대했는데 서둘러 마무리 된듯한 아쉬움은 작가가 품은 이야기를 절반으로 줄인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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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것은 임금이 금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즉, 많은 백성들이 쓰는 데에는 도리가 없는 게야. 물론 총명하고 명민한 성군이 나서서 나라말 쓰기를 권장하고 스스로 익힌다면 훨씬 빨리 유포되겠으나 아무리 임금이 쓰라고 권장하고 법으로 정한다 해도 그 백성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뿐인 게야. 글이란 이런 것이지. 임금만 탓할 것이 아니라 백성 하나하나가 각성해야 하느니라. (뚜깐뎐 1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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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말을 박해하던 일은 조선 중기의 역사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날은 더 교묘한 수법으로 아니 더욱 노골적으로 '영어공용화'니 '영어몰입'이니 떠벌리면서 우리글을 박대하는게 현실이다. 중국을 사대했던 조선처럼 미국과 영어를 사대하고 마치 속국이나 되는 양 우리글을 소홀히 하는 한국인에게 던지는 사부의 말씀이다. 오늘의 현실과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 대목에서, 나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소리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끄럽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우리글이 홀대받던 조선조에 민초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한글사랑에 더 마음을 써야 하리라. 내 자식 영어공부 시키는 일에만 불켜지 말고, 우리말 우리글로 된 아름다운 작품을 읽고 다듬는 일에 마음을 써야겠다고 불끈 다짐하는 독서였다.
짧은 이야기로 수많은 뚜깐이들의 애환을 다 담아내긴 어려워도 핍박받던 시대 민초들의 우리글 사랑을 통해, 현재 우리의 한글 사랑을 되짚어볼수 있었다. 세대를 단절시키는 인터넷 용어나 우리말 줄여쓰기의 폐해도 있지만, 한 나라의 언어는 그 시대와 같이 진화 변용되고 있음에 아름다운 우리말 가꾸기에도 마음이 쓰인다. 한글창제 600년 후인 2044년의 제니처럼 영어로 읽거나 말하기가 쉽고, 한글은 통역기나 낭독기로 대신 읽고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작가의 장모님이 어렵게 글을 배워 사위에게 보낸 편지가 이 소설을 쓰고 다듬는데 자극이 되었다며, 장모이신 '김금순여사'께 이 소설을 바친다는 작가후기는 읽을때마다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막내 사우에게!
밥 잘묵고 싸우지마고 의좋게 잘 사시게. -장모가 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