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馬와 淑女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1955년, 시집 '박인환선시집'>

 

 

 

 

 
어제, 남편이 귀가해 TV를 켰는데 퀴즈 프로가 나오더군요.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으로 졸업생 100명과 고승덕씨랑 겨루던 프로였어요. 그때 문제가 전혜린의 책 제목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나왔는데~~~ 제 청춘기에 전혜린과 박인환을 모르면 자칭 문학도라 할 수 없었던 전설(?)이 있었지요. 한때 줄줄이 외우며 폼을 잡았던 목마와 숙녀가 생각나서 올려봤어요. 박인희씨의 노래(?) 혹은 낭송(?)으로 더 유명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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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0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가면(지금 그 시람 이름은 잊었지만)도 박인희 누나 노래죠!!! 목소리 안 받쳐주는 여자가 부르면 확 깨는 노래입니다만...

순오기 2008-10-09 19:14   좋아요 0 | URL
세월이 가면~~ 좋지요, 감미로운 목소리~~~ ^^
확 깨는 노래를 들어 보셨나 봐요~`ㅎㅎㅎ

노이에자이트 2008-10-10 15:46   좋아요 0 | URL
그 분 얼굴은 20대인데 목소리는 팥쥐엄마였어요.목소리가 늙으면 아무리 동안이라도 나이들어 보이더라구요.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살 수도 없구요.순오기 님 애창곡은요?

순오기 2008-10-11 00:09   좋아요 0 | URL
제 애창곡이 궁금하세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요~~~ㅎㅎㅎ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것을 즐기는지라~~~ ^^
10월의 마지막 날은 '잊혀진 계절'을 꼭 부르지요.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08-10-11 15:16   좋아요 0 | URL
하하하...그 날 나이트 가는 남녀들이 많다고 하죠.제 애창곡은 눈동자.들을 땐 권은경 것이 더 좋더라구요.21세기 노래 중에선 버블 시스터즈의 애원을 즐겨 부릅니다.

감은빛 2008-10-09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고등학교때 이 시 외우곤 했었어요. 오랫만에 다시 한번 읽어 보게 되네요.

순오기 2008-10-09 19:1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만나면 더 반갑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