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몇 주째 국방부 불온도서를 보는 중이다. 너무 무거워서 하루에 많이 읽지 못하고 한 두 챕터씩 읽다 보니 계속 마음에 품게 된다. 그래서인지 꿈속에선 내가 운동권이라 쫒기기도 하고 심한 고문도 당했다. 또 며칠 전엔 뜬끔없이 김용택선생이 운동권으로 등장해 내게 당신이 쓴 일기를 비롯한 기록물을 맡기며, 무슨 일이 있을 때 공개하라는 비장한 말씀을 전하고 홀연히 사라지셨다.ㅎㅎㅎ
이건 확실히 볼온서적의 여파다. 그래서 잠시 머리를 비울겸 내사랑, 상뻬 아저씨를 만나고 싶었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이 가을에 다시 읽으면 좋겠다 싶어 고른 '속 깊은 이성 친구'는 역시 배반하지 않았다. 찬찬히 그림만 살펴봐도 좋고, 꼼꼼히 글만 읽어도 좋다. 때론 별로 속 깊지 않은 친구도 등장해 '속 깊은 이성 친구'가 부러운 비열한 나의 질투심을 잠재우며 유쾌하게 낄낄거릴 수 있어 좋다.
짧은 이야기와 파스텔톤의 간결한 삽화가 부드럽게 다가온다. 포인트를 살리고 주변은 흐리게 처리한 수법은, 마치 피사체만 살리고 뒷배경은 흐리게 하는 사진 기법처럼 읽힌다. 색감도 가을 색에 딱 어울리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훌쩍 가을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물론 속 깊은 이성 친구와 떠난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지만.ㅜㅜ
너무나 즐거웠던 이야기 하나 구경해 보시라.^^ 그림이 옆으로 나란히 있는데 편의상 아래로~
또 하나~ 뜻이 맞는 친구와 부부동반으로 만났는데, 서로 자기 동성(여성, 남성)은 특별한데 배우자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속내를 보여주는데 우리랑 닮은꼴이라 찔리면서도 즐거웠다.
"당신 친구 엘렌 말이야, 내가 보기엔 너무 평범해. 그에 비해 남편은 아주 괜찮던데, 뜻밖이야."
"그래요, 뜻밖이에요. 내 말이 그 말이에요." 라는 대답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왔다. ㅋㅋㅋ
이 책 제목은 '속 깊은 이성 친구'지만 이야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결코 속 깊지 않은 친구를 등장시켜 위트와 유머를 구사하는 상뻬아저씨에게 쏙 빠지게 되는 책이다. 때론 미처 상뻬 아저씨의 위트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쳇말로 '뭥미'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다시 보면 아하~ 공감한다. 이 책 마지막 장에 있는 그림 한 장, 이런 아이디어라면 정말 다툴일 없이 평화로운 속 깊은 이성 친구가 되지 않을까?
뭔가 몰두하느라 머리가 아플 때나 생각이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 같을 때, 잠시 휴식을 취하며 부담없이 아무 곳이나 골라 읽기에 좋은 책이다. 그러다 홀연히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를 누를 수 없다면 가을여행을 훌쩍 떠나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