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길, 선산 입구 마을 밭에 세워진 참깨다발이 얼마나 반갑던지...... 어려서 시골 살 때 보고는 그 후 통 구경할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돌아오다가 일부러 걸어 오면서 밭에 들어가 찍었다.
그러면서 김준태의 시 '참깨를 털면서'가 생각났다. 어디선가 시인의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기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에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시인은 해남 출신으로 김남주 시인보다 두 살 아래지만 같은 고향이다. 김남주는 전남대 영문과, 김준태는 조선대 독문과 출신으로 5.18 광주의 현장을 보고 쓴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광주일보>에 실었다가 수사기관에 끌려가 옥고를 치르고 재직하던 학교(전남고)에서도 떨려났었다. 
광주대 및 조선대 초빙교수를 지냈고, 2007년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작은 학교 '금남로 리케이온'을 바련, 글쓰기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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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7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09-1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근데 모가지까지 털어진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순오기 2008-09-17 17:57   좋아요 0 | URL
다닥다닥 달린 참깨송이가 바로 '모가지'예요.ㅎㅎㅎ
살살 털어서 벌어진 틈으로 깨만 쏟아내야지 모가지까지 털어지면 그 속에 든 깨가 나오지 않아서 힘들고 그걸 주워내는 수고를 또 하잖아요. 그래서 너무 힘주지 말고 살살 달래듯 털어야해요.^^
웬디양 같은 도시촌넘(?)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일~~~~우하하하

배꽃 2008-09-17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주 어릴적 시골에서 살았어요.저 참깨 두드릴때 엄마옆에서 동생하고놀이하며 알싸한 깨내음도 맡았더라는;;< 풀내음이었을지도>언제봐도 넉넉하고 정겨운 풍경이지요?/

순오기 2008-09-17 17:58   좋아요 0 | URL
깻대가 말랐으니까 풀내음은 아니고 깨내음이었을 듯...고향 풍경은 언제나 입가에 미소가 감돌만큼 정겹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성에 성묘하러 갔는데 거기는 메밀이 정말 희고 이뻤어요.시골집 마당에서 가을에 곡식을 말리며 손질하고 있으면 옆에 강아지나 고양이가 와서 뭐하나...하고 주인 쳐다볼 때 정말 귀엽죠?

순오기 2008-09-17 18:03   좋아요 0 | URL
곡성~~ 중학교 후배가 곡성초등학교에 근무하는데 가보진 못했어요.
봄에 고창 청보리밭에 갔었는데 보리 수확이 끝나면 메밀을 심더군요. '웰컴투 동막골'촬영지라던데~ 이제 메밀꽃 보러 가야겠군요.^^
흐흐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는 풍경~~~ 근사한데요.

2008-09-17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8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1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효석 때문에 봉평 메밀밭이 제일 큰 줄 아는 이들이 많은데 고창의 그 곳이 전국최대 메밀밭이죠.

순오기 2008-09-19 06:40   좋아요 0 | URL
봉평~~ 그 메밀밭이 보고 싶었는데~~ 고창 메밀밭으로 발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