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길, 선산 입구 마을 밭에 세워진 참깨다발이 얼마나 반갑던지...... 어려서 시골 살 때 보고는 그 후 통 구경할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돌아오다가 일부러 걸어 오면서 밭에 들어가 찍었다.
그러면서 김준태의 시 '참깨를 털면서'가 생각났다. 어디선가 시인의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기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에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시인은 해남 출신으로 김남주 시인보다 두 살 아래지만 같은 고향이다. 김남주는 전남대 영문과, 김준태는 조선대 독문과 출신으로 5.18 광주의 현장을 보고 쓴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광주일보>에 실었다가 수사기관에 끌려가 옥고를 치르고 재직하던 학교(전남고)에서도 떨려났었다.
광주대 및 조선대 초빙교수를 지냈고, 2007년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작은 학교 '금남로 리케이온'을 바련, 글쓰기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