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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여우 헬렌 ㅣ 쪽빛문고 9
다케타쓰 미노루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인들은 여우를 좋아한다. 며칠 전 다녀온 일본 문학기행에서도 확인한 바였다. 우리가 갔던 '태양의 아이' 후짱이 찾던 신사는 바로 여우를 신으로 섬기는 곳이었다. 빨간 턱받이를 한 여우상과 줄줄이 걸어놓은 여우등이 인상적이었다. 살짝 사진을 올려본다.


이 책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동물병원을 하는 수의사 다케다쓰 미노루 부부가 돌본 아기 여우에 대한 보고서다. 듣고 보고 말하지 못했던 헬렌 켈러처럼, 눈과 귀와 후각까지 상실한 아기 여우를 '헬렌'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기 여우 헬렌은 박사부부에게 와서 힘겹게 한달을 살고는 그만 눈을 감는다. 그 애잔한 기록은 사진을 곁들이고 조곤조곤 헬렌의 삶을 전하며 독자의 눈시울을 적신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올해는 성가신 동물을 진찰하지 않겠다. 진찰하지 않고 우리가 도망치겠다. 입원시키지 않겠다. 모두 안락사시키겠다'고 커다란 종이에 써서 선서까지 했다는 이들 부부는, 25년 전 날개뼈가 없던 솔개가 아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짧은 시간이지만 행복하게 살다 죽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 선서를 지키지 못한다. 바로 이런 깨달음 때문에.
"내가 날지 못하는 솔개를 불행하다고 여긴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한 내 마음은 돌보기 힘들기 때문에 난감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안락사가 옳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그때까지 "돌보기 힘들다고 죽여?"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어쩔 수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 편리한 방법일 뿐이란 것을 그 초등학생들에게 배웠습니다.(34쪽)"
장애를 갖고 병원으로 들어오는 동물들을 돌본다는 게 보상도 없고 성가신 일이라 거부하고 싶었던 그들의 마음도 이해됐지만, 아기 여우 헬렌의 고통과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눈과 귀를 가리고 모래언덕에서 네발로 기었던 그의 행동은 가슴이 뭉클했다. 비로소 암흑과 침묵속에 갇혀서야 헬렌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의 행동에 감동이 일었다. 그건 사랑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기에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아기 여우 헬렌을 맡아서도 안락사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작은 희망을 발견하며 기대를 갖고 돌본다. 헬렌은 생존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갖지 못했다. 먹는 일조차 버거운 헬렌을 먹이고 돌보며 그들은 정이 든다. 처음으로 헬렌이 기쁜 표정을 지었을 때, 꼬리를 살짝 흔들었을 때의 감격으로 그들은 잠시 행복하다. 헬렌을 살리기 위한 부부의 노력은 존경할 만하다. 아기 여우 헬렌은 이들과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려고 그 짧은 생을 왔다 갔나 보다.
이 책을 통해 여우의 특성을 알고 여우에 대한 이해를 배웠다. 오랜동안 북방여우의 생태를 조사해 온 그를 통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자연을 보존하는 일이 소중함을 확인한다. 초등 3학년 이상 어린이들이 읽으면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과 동물사랑을 배울수 있는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올지 기대가 된다. 책에 수록된 감동의 사진을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