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카프카 대표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8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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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강렬한 포스가 느껴지는 책, 보물창고의 '올에이지클래식'시리즈로 새로 나온 카프카의 변신이다. 타 출판사의 표지 카프카를 보니 꽃미남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꽃미남을 압도하는 그의 눈빛에 빨려들었다. 우와~ 이 강렬함...... 학창시절, 억지로라도 한번쯤은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을 세대들에겐 반가운 만남을 주선하는 책이다. 한때 문학이나 독서를 한다는 사람이면 빼놓을 수없는 책으로, 아직 '변신'을 못 읽었다면 부끄러운(?) 이력이 되기도 했었다. 자~ 아직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다면, 새로 나온 보물창고의 '변신'을 만나보자,

이 책은 카프카를 연구했다는 이옥용씨의 번역으로 막힘없이 매끄럽게 읽힌다. 번역서를 읽을 때마다, '어~ 이게 무슨 말이야?' 되돌려 읽어야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번역서에서 발견되는 우리말 표기의 어색함이 눈에 띄지 않았다. 또한 끝에 덧붙인 작품해설에서 카프카의 생애를 친절하게 조명한다. 체코인이나 독일인도 아니었고 더구나 유대인이면서 유대인도 아니었던 그는 평생 어딘가에 속하기를 갈망했던 정체성 결핍의 사람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아버지에 의한 억압이 깔려 있었다는 해설로 그가 짠하게 다가왔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카프카의 감정을 작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변신'에 그려진 그레고르 잠자의 아버지와 '선고'에서 아들에게 익사를 내리는 아버지. 추송웅의 1인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알려진 원작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그 외 짧은 이야기들, '양동이를 탄 사람, 다리, 법 앞에서' 등에 그려진 인간들의 모습이 그렇다. 바로 억압되고 굴절된 아버지의 표상이 그렇게 형상화되었을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변신'뿐 아니라 카프카의 다른 글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집안의 빚을 갚고 윤택한 생활을 보장해주던 실질 가장이었던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한마리 벌레로 변신해 버린다. 그 황당함과 충격을 당사자인 고레고르보다 가족의 태도와 심리를 관찰하는 고레고르의 진술로 전개된다. 아~ 이 오싹함이라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자신을 살펴보는 일보다 가족의 안위를 더 걱정해야 하는 고레고르 잠자. 하지만 가족들은 그가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해도 살아낼 방도를 찾아내어 나름대로 살아간다. '나 없으면 되는 일이 없어!'라고 착각했다면 그야말로 그건 착각이다. 세상은 나 하나 없어져도 눈하나 깜짝 않고 잘 굴러간다. 가정사도 마찬가지고......

작가는 절대 해충으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을 그리지 말라고 당부했다지만, 책을 읽은 독자는 자연스레 그 끔찍한 해충을 그리지 않을 수없다. 막내와 둘째는 바퀴벌레로 그려지고, 큰딸은 거대한 지네로 그려진단다. 난 그려보는 것 자체가 끔찍해서 충실한 카프카의 독자로 절대 형상을 그려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EBS에서 방영한 영화 '변신'을 봤었기에 거대한 거미?)같던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까지 지우진 못했다.ㅜㅜ

우리집에선 요즘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벌레라는 말로 다 통한다. 방학이라고 한껏 게으름 피우는 삼남매의 생활이 정말 벌레처럼 흐느적대는 꼴이라서 '넌 벌레야~' 혹은 '넌, 벌레니까!' 라고 말해도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그래도 굶어죽지 말라고 먹을거리는 제공하는 분위기? ㅋㅋㅋ어젯밤엔 방학하고 처음으로 셋이서 줄넘기와 훌라후프를 갖고 집 뒤의 공원에 갔다 왔다. 드디어 벌레에서 사람으로 변신하려나 보다!ㅎㅎㅎ

아이들과 만약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벌레로의 변신이 아니라, 가족중 누군가 질병으로 오래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레고르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이었다. 요즘 자녀들이 치매노인을 돌보지 못해 시설에 맡기는 일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고 나의 모습일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으니, 카프카의 변신을 이런 상황으로 받아들여도 이해가 된다.

표제작인 '변신'과 더불어 수록된 카프카의 단상과 우화와 단편들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공감되는 이유는, 작가가 친구에게 쓴 편지라고 작품해설에서 밝힌 구절 때문이다.

   
  내 생각에 책을 읽는 사람을 꽉 깨물고 콕콕 찔러대는 것만 읽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자네가 편지에 쓴 것처럼 우리가 행복하려고 읽는 걸까? 맙소사, 설령 책이 한 권도 없다 해도 우리는 역시나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또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책은 필요할 경우, 우리가 손수 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책이 필요한 거야.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 같고, 우리 자신보다도 더 끔찍이 사랑했던 그 어떤 사람의 죽음 같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뚝 떨어져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 필요하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얼어 버린 바다를 깨뜨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나는 과연 어떤 독자인지와 더불어 어떤 인간인지를 생각케 하는 카프카의 변신은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으로 접수한 책읽기였다. 내가 만약 벌레가 변신한 인간이라면, 변신하기 이전의 나와 변신한 후의 나는 어떤게 진짜일까? 내가 맘대로 변신할 수 있다면 무엇으로 변신하고 싶을까? 날도 더운데 머리 속이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이 뜨거운 여름이 괴로우면서 행복했다면 된 거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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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8-05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구절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대체 우리 머리를 쳐대지 않는 책을 읽어서 뭐하겠는가 이런식이었는데. 제가 본 것이 더 거칠고 막 나가는군요. 순오기님의 리뷰는 팔을 쭉 펴서 주위에 있는 것들을 보듬는 느낌이 나요.

순오기 2008-08-05 19:58   좋아요 0 | URL
머리를 쳐대지 않는 책은 재미로 읽는다지요~ㅎㅎㅎ거칠고 막 나가며 한대 쳐주는 것도 좋지요. 그래야 가끔은 정줄놓에서 돌아올 수 있겠죠.ㅋㅋ
'팔을 쭉 펴서 주위에 있는 것들을 보듬는 느낌'이 어떤 걸까요? 시니에님 문장은 명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