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두달만에 집에 돌아온 우리 딸 '민주'가 재잘재잘 쏟아 놓은 말이 가슴 아프다. 지난 3월 28일 시청앞 광장에서 있었던 전국대학생 및 시민단체의 '등록금 해결 범국민 촉구대회'에 참여한 소회가 너무 실망스러웠단다. 앞에서 주도하는 소수만 열심이고, 나머지는 여길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의심스런 행태를 보여 한심했단다. 그저 머릿수 채우러 왔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뭐, 어쩌겠는가! 모두가 한 마음으로 '민주'를 부르짖던 4.19나 5.18의 처절한 상황이 아니기에 그런 열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민주가 소속된 사회과 1학년 중에서 달랑 둘이만 참여했단다. 5.18을 겪은 광주 출신 우리딸과, 부마항쟁의 마산 출신 친구랑... 직접 아픔을 겪지는 않았어도, 짓밟힌 땅에서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투사의 정신, 민주의 염원이 마음 밭에 심겨지는가 보다.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근현대사를 배웠음에도 전두환과 5.18을 연결하지 못하고, 왜 광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도 없더란다. ㅠㅠ 4.3의 제주, 5.18의 광주, 부마항쟁의 마산 친구랑 셋이서만 그래도 소통이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공부 좀 했다는 애들이 모인 학교인데도...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갖고 있던 4.19화보집을 보며 자랐다. 그땐 그게 무언지도 모르면서 들여다 봤지만, 심한 충격으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이나 피로 물든 현장이 꿈에서도 나타났다. '아~ 내가 태어나기 한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가슴 아프게 인식한 것은 초등 5,6학년 때였던거 같다. 그렇게 눈뜨면서 72년 대선 때 '대중은 김대중'을 외치며 유년기를 보냈다. 충청도 시골이었지만 야당이 강해 박정희가 헬리곱터를 타고 내려올 정도였으니, 나의 정치성향은 그때 결정된 듯하다.
이제 광주사람이 되어 산지 20년, '광주사람보다 더 광주사람답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 피가 뜨거운 건지 빛고을 광주의 피가 뜨거운지는 모르겠다. "오늘이 4.19네요. 착잡한 맘... 아이들과 얘기 나누며 기억하고 묵념하는 거라도 주욱~ 해야할 듯..." 이라는 독서회원의 문자를 받고, 광주 아줌마는 멋지단 생각에 4.19를 기억하는 시를 한 편 올린다.
-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전문-
신동엽 시인에 대해선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에 나온 내용 밖에 모르지만, 이참에 신동엽 시인의 시집과 평전이 있나 싶어 찾아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