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식객을 보고 나서 소장 가치가 인정돼 만화 식객을 구입했다. 아들의 아이디 '푸른학'으로 구입해서 순오기는 구매자로 뜨진 않는다. 게으른 엄마는 천천히 이 책을 읽으며 찔리는 구석이 많아 자꾸만 주절주절 페이퍼를 쓴다. 이름하여 엄마로서의 양심선언이다!

만 3년이 지난 일인데, 남편의 사업 부진으로 부부간에도 위기가 있었다. 뭐 살면서 이혼 생각 안 해본 부부가 없겠지만, 나도 홧김에 이혼하려고 했던 건 두번이다. 이번에 수능 본 딸 세살 때는 솔직히 남편을 어떻게 해볼까 하는 깜냥으로 그래본 거였지만, 그 딸이 중3이던 3년 전엔 정말 이혼하려고 했다. 아무 것도 없이 빚이 1억이나 되던 남편에게 위자료나 가사노동비는 기대할 게 못 되었으니 자의든 타의든 '합의이혼' 하기로 했고, 모든 서류를 준비했었다.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이혼하려는 건 아니다. ^^

그때 공과금부터 아이들 학교에 나가는 것까지 모두 남편 통장으로 바꾸고 가정경제에서 손을 뗐다. 사실 내 한 몸 살기 위해선 남편의 돈 10원도 필요치 않았고, 충분히 자급자족할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거리낄 게 없었다. 부족한 가계를 꾸리느라 나는 나대로 부채가 생겼던 상황이라 친정엄마께 빌려다 정리하고, 엄마의 돈은 만 3년에 걸쳐 지난달까지 다 갚았다. (울 엄니 보내지 말라해도 끝까지 갚았더니 지독하다고 혀를 찼지만, 이게 나를 버티는 자존심이고 순오기다) 당시에 중3 딸, 초등5 아들, 초등3 딸, 이렇게 셋이나 두고 갈라선다는 게 미친짓이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지금 이혼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이쯤으로 접어두자. 하여간 그때부터 남편이 장봐오는 대로 음식을 만들었고, 식단이 부실하여 먹을 게 마땅치 않아도 미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은 뭐해서 밥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편으론 편했다.

그 전까진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고, 외식이나 매식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친구들도 잘 불러들였었다. 비빔국수 하나를 하던 반지락 된장국을 끓이든, 소박한 밥상에도 누가 오는 것 자체를 꺼리지 않는 내 성격도 작용했다. 아이들 간식도 다 해 먹여 자타가 공인하는 '좋은 엄마'였다나~~ㅎㅎ 이랬던 내가 나이 먹으며 귀찮기도 했지만, 여유가 없던 경제를 핑계로 그해부터 김장을 하지 않았다. 이웃들이 한통씩 담아다 줘서 묵은지를 한여름까지 먹었으니 그도 내 복이지만, 4년째 김장하지 않고 버티는 우리를 먹여 살린 이웃들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지금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사먹어야 되는 우리를 생각하고, 자기들은 안 먹어도 시댁이나 친정에서 무엇을 주면 사양치 않고 다 가져오단다. 내가 빛고을 광주에 둥지를 튼지 19년이지만, 이렇게 정이 넘치는 전라도 사람들 덕에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내 인생도 성공한 인생이다!

"어, 우리도 김치를 담그네!"

6학년인 막내가  어젯밤, 깍뚜기와 파김치를 담그는 나를 보고 던진 이 말이 우리의 현주소다. ㅎㅎ 그렇다고 3년간 김치 한 번 안 담근 건 아닌데도......  요즘 식객을 보면서 그동안 대충 먹고 살았던 게 미안해져서 반찬도 만들고 김치도 담그게 된다. 자~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어제 담근 김치 사진으로 구경 좀 하실래요? ㅎㅎ


 맛은 어떨지 익어야 알겠지만, 요렇게 사진발을 위해 통깨도 솔솔 뿌렸다. 먹음직스럽나요? 이번 주말엔 배추김치도 담글 예정이지만, 요 파김치도 남편이 공판장에서 감자와 양파를 사오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파김치가 먹고 싶었는지 파를 두단 사와서 담갔다.

 식객 6권에 '마지막 김장'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염치없어도 올해까지는 이웃들한데 얻어 먹고 내년엔 '마지막 김장'이 아닌 앞으로도 주욱~이어질 김장을 해야겠다. 내가 또 한다면 하는 순오기인지라 맛도 제법 전라도스럽게 한답니다.(믿거나 말거나 ^^) 친척 형제들이 모여 김장하는 집도 있지만, 요즘엔 이웃 사촌이라고 가까운 이웃들과 어울려 김장 담그는 풍경도 참 보기 좋은 모습이죠!

자, 엄마의 양심 선언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지만, 부끄러운 치부여도 이렇게 끼적이고 나면 속이 편해진다는 거 다 공감하시죠? 그렇게 읽어주시고 이해해주신다면 감사~~~~^^

오늘도 난, 내 마음을 음식 만드는 엄마의 자리로 되돌려 준 허영만의 식객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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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만화를 보면 그들의 음식을 예찬하는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는 예전에 100권이 넘어가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먹거리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 허영만 선생의 "식객"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만화라고 생각됩니다. 옥의 티라면 입맛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인지라 식객의 에피소드 말미에 나오는 식당의 전화번호나 상호를 보고 찾아간 사람들이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큰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더군요.(예를 들면 하동관이라는 곰탕집) 아울러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불만은. 하고많은 신문 중에 하필이면 동아일보에서 연재를 하는가...가 가장 큰 불만 중에 하나입니다.^^

순오기 2007-11-22 11:39   좋아요 0 | URL
ㅎㅎ 동아일보~~ 저는 결혼전에만 아버지가 보시니까 보았고요. 지금은 문제의 중앙일보를 보고 있다지요.ㅠㅠ 최근엔 신문도 안 들여다 보니까, 남편과 울 애들만 보고 있지만...
그리고 여수사람인 허영만 씨의 입맛에 따른 것이라 그럴 수도 있다 생각돼요. 전라도 맛에 길들여지는데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
전라도, 정말 특유한 맛의 고장... 내 입맛도 이제는 전라도!

라로 2007-11-2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객은 저도 열독했던 만화~.^^;;;
깨소금이 뿌려져 더 맛나 보여요~.^^
근데 전 아직두 김치도 못담근답니다~.(쉿)
내년엔 기필코 배워보려구요~.(오기만땅)
근데,,,,
순오기님의 닉네임의 뜻이 '순오기'일 줄은 알았는데요,,,
존경스러워요...

뽀송이 2007-11-2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진솔한 님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전 이런 님이 좋아요.^^
저도 파김치 무척 좋아합니다. 손맛이 느겨지는 것이 맛있어 보여요.^^
위가 민감한 편이라 많이 먹으면 안되는데도 어찌나 많이 먹어대는지...
친정엄마는 제가 간다면 얼른 파김치부터 감춘다니까요.^^;;


마노아 2007-11-2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았어요. 저도 어제 식객 8권 조금 읽었는데, 이미 읽은 부분도 다시 소장하려고 해요. 2권이랑 8권만 있는데 차차 채워가야죠.^^
빛고을 광주 이야기도 너무 아름다워요. 좋은 이웃을 둔 순오기님의 내공과 인덕도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

miony 2007-11-2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의 닉네임에 그렇게 깊은 뜻이!^^

순오기 2007-11-2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뽀송이님, 마노아님, miony님의 댓글에 감사^^
글 올려놓고 너무 사적인 얘기를 끼적거렸나 후회도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