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논 캐스카트가 우리집에 온지 딱 열흘이 되었다.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정말 웃기겠지만 대충 필요한 단어 하나 넣어 콩글리쉬로 그렁저렁 뜻이 통하는 걸 보며, 6학년 우리 막내는 아주 신기해 한다. "민경아, 엄마가 단어만 알면 뜻이 통한다고 했잖아." 난 무식하고 용감한 아줌마의 전형처럼 이러면서 하고 싶은 말이나 뜻을 대부분 주고 받는다.

처음에는 본토 발음에 적응이 안되어 히어링이 전혀 안 되더니만, 이제는 그래도 하나씩 들린다. 그도 "홧 추 세이?" "세이 미 잉글리쉬" 하면서 우리 애들한테 말했는데, 이제는 나를 보고 말한다. 음~~ 이 말을 알아 들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한영사전에서 찾아 보여주면 그가 읽고, 혹 바른 쓰임이 아닐때는 영한사전에서 다시 찾아 일러준다. 그러면서 "한국말로 어떻게 말해요?" 라고 물으면, 나는 한국말로 가르쳐준다. 그가 한국말을 배우는 것만큼, 나와 우리아이들의 영어실력도 향상돼야 할텐데...... "그까이꺼 뭐 대충 하면 되는 거지" 개그맨 장동민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그까이꺼 대충~~~" 하면서 주고 받은 대화로, 그의 종교가 이슬람이라 쇠고기, 돼지고기, 술, 담배, 커피나 콜라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슬람은 게걸스럽게 먹지 않는다며, 접시에서 음식을 작게 나누어 경건하게 먹는 것을 발견했다. 소스를 위에 뿌린 음식을 먹지 않으며 식초가 가미된 것도 먹지 않았다.

음식을 잘 해주지도 못하지만, 많이 먹지 않으니 음식을 차릴 때마다 입에 맞지 않아 그러나 미안함이 든다. 물론 내가 하는 요리라면 무멋이든 좋다고 말하지만, 아닌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 과일도 잘 먹지 않아 물었더니, 미국에선 아침에 '그레이프 풀(우린 자몽이라 부른다), 점심에 '키위' 저녁엔 과일을 먹지 않는단다. 한국스타일은 아침에 사과를 먹는다 했더니 사과는 반쪽 이상 먹고, 천도복숭아는 그래도 잘 먹는다.

우린 굉장히 싱겁게 먹는 편인데 그는 짜게 먹는다. 참기름에 소금을 넣은 것에 야채(브로콜리, 피망, 당근)도 찍어먹고, 김밥도 찍어먹고, 어떤 땐 밥에도 참기름 소금을 넣어 먹는다. 반찬이 입에 맞으면, "밥 더 주세요!" 하면서 살살 담은 밥 두 공기를 먹는다. 약밥을 두 번 해 주었는데 잘 먹었으며, 감자를 넣은 닭볶음도 간간하고 달콤하게 조리듯 해 주니까 흡족하게 먹었다. 서로 탐색과 대화로 적응해가는 기간이지만, 하여간에 음식 문제가 시집살이 하듯 조심스럽다. 내가 누구든 어려워하지 않고, 또 특별히 잘 해주려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성격이라 그나마 다행이다~ㅎㅎ

일요일, 이웃 중학교의 홈스테이 가정에서 친구들을 초대해 스파게티를 만들어 준다며 오전 10시에 데려가고 오후 6시쯤에 돌아왔다. 함께 광주로 오게 된 세 친구중에 그녀는 완전 한국인이었다. 어쩌면 한국의 해외입양아인지 모르겠다. 그의 외출로 잠시 우리끼리 해방공간을 맞았다. 그동안 크게 불편한 것도 없었는데, 왠지 해방공간이란 말이 확~~~실감난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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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9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9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뽀송이 2007-08-3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푸하하하~~~^^
순오기님 애쓰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젠 조금 적응하시고, 나아지셨나요?
콩글리쉬^^ 음식^^ 해방공간^^
재미나게 읽고 가요.^.~

순오기 2007-09-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제가 해야될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은 콩글리쉬든, 한영사전이든 의지해서 하는데, 도대체 리스닝이 안돼서 그 친구가 하는 말은 '소 귀에 경읽기'랍니다.
그러니 유창한 영어가 제게 무슨 소용이냐구요? ㅎㅎ~ 그 친구도 이런 제 상태를 눈치채고 저한테는 콩글리쉬로 한답니다~~~어우~0 팔려!!

프레이야 2007-09-1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저래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아요. 부럽^^
콩글리쉬든 딩글리쉬든 재밌을 것 같은데 하기야 닥치면 떨리려나요..ㅎㅎ

순오기 2007-09-14 20:13   좋아요 0 | URL
뭐, 떨릴거야 없는데 아는게 없어서 단어가 생각 안나요~ㅎㅎ
그리고 말이 빠르니까 아는 단어 하나 건지는 것도 힘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