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광주사람이 아니라 조금은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 영화를 봤다. 80년 5월 인천, 화려한 청춘을 보내던 나의 일상에서 5.18은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였다. 광주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광주에 살면서 비로소 5.18을 알게 되어 산자의 죄의식에 동참했고, 1997년 출판된 작가 임철우의 장편소설 '봄날'에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5.18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광주를 쓸어버리라는 작전명령이 '화려한 휴가'였다니~~ 정말 할말을 잊게 한다. 수도 없이 봐 온 TV속 자료 화면이 적나라한 영상으로 보여지는데 27년의 세월이 걸렸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당신들, 그 한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금요일밤의 하남점, '화려한 휴가' 심야는 조금만 늦었어도 못 볼뻔했다. 로비에 꽉 들어찬 사람들과, 매회 빈좌석이 없었다는 말을 들으며 과연 '광주'구나. 이곳 광주에선 누구나 꼭 봐야지 맘 먹겠지만, 과연 다른 지역에서도 그럴까? 이 삼복 더위에 '화려한 휴가'를 봐 줄지 걱정스럽다. 왜 5.18에 개봉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이 영화를 본 다음날, 내고향 충청도에 가면서 삽교천을 지났다.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준공식 행사 후, 박정희대통령의 죽음으로 시작된 '광주의 비극' - 집권세력의 시나리오대로 '광주사태'를 유발한 '화려한 휴가'의 시발점을 아이에게 설명하며 가슴이 메었다. 전국에서 모인 아홉쌍의 사촌형제들에게 광주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 영화를 보라고 권면했더니,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광주사람이 다 됐구나!" 이것이 외지인의 눈길이고 인식이다.

영화는 담양 메타세쿼이어 길을 그림처럼 보여주며 평화로운 일상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시작하는 도입부, 겁나게 거시기한 전라도 말에 웃음이 절로 났다. 광주에 산지 18년... 이제 못 알아 듣는 전라도 말이 없기에 전라도 말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는 무거운 접근을 피하고 가벼운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영화적 요소를 잘 따르며 진행된다. 하긴 그래야 광주를 제외한 지역에서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시위 현장, 학생들이 처참하게 맞고 끌려가도 처음엔 구경하던 시민들, 5월 22일의 국기하강식 애국가에 맞춰 쏟아지는 총알들... 내 아들이 죽고 형제가 죽어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픈 절규와 오열이 터졌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지켜 본 두 시간....스스로 살기 위해 광주를 지키자고 하나로 응집된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슴 터질듯 치받쳐 올랐을 시민들의 불덩어리 같은 분노는 표출되지 못해 아쉽다.

왜? 바로 사건의 핵이 되는 그 일당을 당당하게 거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주의 비극만 보여주지 그 비극의 죄인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영화는, 뇌관을 제거했던 그날 밤 도청의 폭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80년 5월의 참혹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를 보고 5.18을 제대로 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생각한다. 또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 그들을 죄인으로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리라 기다린다.

인천에 살때, 80년 5월 광주에 갔다 와서 '국난극복기장'이란 것을 받았다는 공수출신의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해서 훈장을 받았다는 것은 그땐 상상도 못했다. 그럼 그 사람도 광주시민들을 두들겨패고, 이렇게 총칼로 훈장을 받았다는 것인데...... 요즘엔 그 훈장을 자랑하거나 광주에 갔었다는 것을 쉬쉬하는 현실이라는 것만도 다행이다. 당시의 집권세력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사는 부끄러운 오늘도 우리 역사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상황을 100% 사실이라고 받아들일까? 이 영화를 보고도 왜곡이나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 밤에 잠들지 못했던 광주 시민들처럼 나도 이 밤에 잠들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편안함이 그들의 희생으로 얻은 것임을 잊고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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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8-0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고을에서 영화를 보셨으니... 더 감회가 깊으셨겠네요...
부산 사람들도 매회 매진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돌려대는데도, 사람이 그득 하더라구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기록 영화로도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오기 2007-09-0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에 초등생 데리고 다시 또 봤습니다. 그리고 수요일밤엔 아직도'산자의 죄의식'에 눌려사는 남편과 초,중 남매가 보았고요. 초등6년 민경이는 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말로 감상을 전하는데 제대로 이해한 듯합니다.

프레이야 2007-08-27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 6년 딸아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잘 이해한 거라 생각되네요.
우리집 큰딸은 중2인데 같이 보러가자니까 굳이 안 가겠다고 해서 못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