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함께 얘기해 봐요!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책읽는 가족 54
이용포 지음, 한지선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자라면서 엄마한테 들은 "너 닮은 딸 하나만 낳아봐라!" 하는 말씀처럼 뼛속까지 공감되는 말이 또 있을까? 난, 나 닮은 딸을 둘이나 낳았는데, 큰딸의 사춘기를 겪으며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은 바로 어머니의 그 말씀이었다. 이 다음, 우리 딸도 나처럼 읊어대며 제 딸을 키우리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둔 자식들에게 "늬들도 늙어봐라. 늙어보면 알 테지......." 하는 말씀을 들으면, 이 말을 실감할 날도 멀지 않았다 싶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다.

나이 들수록 옷을 화려하게 입어야 한다는 말씀처럼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의 할머니들은 화려한 의상과 악세서리로 표지에서 활짝 웃고 계시다. 자글자글 주름진 모습이지만 노년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신다.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에 실린 다섯 편의 동화는 우리 부모님 모습이고 마치 이웃 노인의 이야기처럼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내 자신을 돌아보며 가슴 아프게 공감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이것은 작가의 특별한 체험이 보편성을 얻은 결과라고 생각된다. 특별한 체험에 보편성을 불어넣음으로 바로 독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된 세대들은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린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책 속 화자들의 이야기에 어린 독자들도 같은 마음일지 궁금하다. 버럭할배의 환이 형아나, 태진아 팬클럽과 우리 할머니 시집간대요의 4학년 손자 손녀는 관찰자 입장에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 간다. 작가는 화자의 심리묘사로 요즘 아이들의 영악한 이면을 잘 보여줘, 또래 독자들은 마치 자기들이 주인공인양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까? 6학년 우리 민경이는,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이 제일 공감된다고 한다. 역시 자신의 경험 세계만큼 이해하는 듯하다. '수제비'의 할머니가 가장 불쌍하고, 버럭 할배의 환이 형아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좋단다. 만약 엄마에게 '우리 할머니 시집간대요'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수의 고모처럼 반대하지 않고 엄마가 좋다면 찬성한대나......ㅎㅎ 우리 민경이 덕에 늙어서 시집 한 번 더 갈려나 모르겠다!


태진아 팬클럽의 임옥경 할머니가 막내아들 장가보내고 한 이혼선언에 충분히 공감한다. 자식들의 간청으로 한 달만에 마음을 바꾸며 하신 말씀, "인저 나하고 싶은 거 하며 살란다. 노래도 들으러 댕기고...... 바퀴 달린 신발도 신어보고......불쌍한 애들도 돌봐 주고......운전도 하고...... 맛난 것도 먹으러 댕기고...... 그럴란다! 기운 더 빠지기 전에...... 그 소리 듣고 늬 아빠 무릎 꿇고 펑펑 울었다." 라는 부분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눈물나서 아예 책을 놓고 울었다. 멀뚱히 바라보는 민경이의 눈빛이 '저렇게 눈물나고 슬픈 이야기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우리 어머니들이 다 이런 세월을 사셨다는 걸 너희들이 어찌 알겠느냐?' 자문하는 내 마음이 아프다. 보육원 다녀오던 길, 운전하던 할아버지가 "예끼 망할놈의 할망구! 무릎도 좋지 않은 사람이 길 같지도 않은 길을 어떻게 다녔어!"라는 고함에서 할머니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전해온다.


'개구리 이마에도 뿔이 날까'의 치매할머니는 내 마음을 울렸다. 우리네 정서가 맘은 그게 아닌데도 살갑게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아짐씨라고 불렀던 못된 둘째 녀석 달용이가 사다 준 진달래빛 보자기에 집착하는 할머니가 눈물겹다. 잃어버린 기억 저편에 싸구려 보자기를 받고 펑펑 울었던 순간이 남아 있다니......이것이 소중한 사랑의 기억이구나 감동하며 "아따, 그놈 안목하고는, 선물을 혀도 저리 촌시런 색깔로다 했으까!" 할아버지의 눈흘김에 나도 따라 웃었다.


가슴이 아리지만 따뜻해지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작가 주변 사람들이 실제 모델이라는데, 독자들이 한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은 바로 보편적인 정서가 통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특별한 체험에 보편성을 불어 넣은 동화집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은 노령화 사회로 접어 든 우리나라의 노인 문제를 이해와 사랑이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표지처럼 화려한 노후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