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촛불과 호롱불을 들고 방이며 곳간이며, 뜰에 있는 웅덩이를 샅샅이 뒤졌다. 이윽고 우리가 그렇게 찾아다녔던 거북을 구월이가 가마솥에서 찾아냈다. (...) 수암은 1미터 높이의 언덕이 될 때까지 오후 내내 삽질을 했다. 나는 거북을 무덤으로 옮기기 위해 굵은 나뭇가지 두 개와 새끼줄로 들것을 만들었다. 거북은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거기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죽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 산신령과 놀이 친구에게 술을 대신하여 물을 한 잔 바쳤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자 죽은 거북을 땅에 묻었다.(67~68쪽)


내가 또 그에게 몸을 굽혀 인사를 드리자, 그는 내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 자리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으라는 것인지를 여쭈었다. 나는 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여태껏 방석에만 앉았기 때문이었다.(92쪽)


다음 날 아침, 나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입구에 서 있었다. 그것은 도시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여러 채의 유럽풍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 그들은 모두 ‘의학’이라는 글자가 박힌 황금색 배지를 단 감청색 교복을 입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아직 각자 자기 나라의 복색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흰색 옷을, 일본 학생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학교 사무실로 가서 학생증과 시간표, 그리고 교복과 모자에 달 배지를 받았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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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쇠다이사할 때 안다. 서너 권씩 잡고 상자에 넣을 때의 너낌, 상자를 옮길 때의 너낌!

재생지여서 가벼우면 반갑고, 잉크향이 독하면 실망이다맨 뒷장에 재료 성분 표시가 있다면 무엇이 들었는지 아니까머리맡에 안 두거나아기가 못 만지게 할 수 있다화장지 표백 갖고도 따지는데책 성분은 뭔지도 모른 채 그동안 너무 쉽게 용인돼 왔다.


요사이 책 한 권을 우편함에 두고오가며 산책 시킨다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한적한 곳에서 들고 흔들면서 냄새를 뺀다그러면서 생각한다컴퓨터그래픽 영화는 ‘CG’영화라고 공표하지만인공지능 합작인지 알지 못하는(알리지 않는책을집에 그만 들일 때가 다가온다고다음 생은 염소가 될 것이다까만 염소누렇게 변색된 향기롭고 바삭한 책을 별미 삼아 먹겠다책벌레도 못 살 정도로 독한 표지에변색도 잘 안 되는 책은 무슨 맛이겠는가. 염소니까 먹기는 먹겠지만 할 수 없이 먹는 것이다그러고는 장소 구애 없이 선 채로 후두둑 혹은 촤르르 초코환약 열 알을 메에에에에

 

경향신문 박은하 특파원(2024.12.27)에 의하면 중국이 전기차를 위해그 거대한 싼샤댐의 3배 크기를 티베트에 건설한다고 한다물이 흐르지 않으면 주변국도 고통을 겪는다휘발유를 대신하는 전기차는 지구를 살리는가앞으로도 압록강은 계속 흐르게 둘 것인가글쎄...! 이러는 중에 중앙일보 서정민 기자(2025.2.15.)의 조천현 사진전 기사를 본다. 바로 저것이다, 무릎을 친다미래는 (경쟁력은무동력에 있는 것이다. 저 사진전은 한국을 관광대국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전 세계 환경정책을 견인할 것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보리 출판사, 조천현의 <뗏목>(압록강 뗏목 이야기)는 환생염소에게 맛난 책은 아니다글 보다 사진에 최적화됐기 때문이다비록 선호하는 가벼운 바디감은 아니지만염소 눈에도 이 책에는 억만금의 가치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네치아는 노 젓는 곤돌라로 관광객이 미어터져 문제고마카오는 호텔 안에 베네치아 운하와 똑같이 만들어놓고 곤돌라를 태우는데줄을 선다고 한다베트남이나 태국의손수 노 젓는 배도 관광객을 매료시킨다쿠바의 어떤 바나나 농부는 야생 줄기로 배를 뚝딱 만들어강을 따라 바나나를 옮긴다강원도 영월 뗏목도 축제로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사람들은 노 젓는 무동력 배를 사랑한다작을수록 더 사랑한다. (태워다 주고갈 때는 노를 젓지 않고 모터 소리 내며 빠르게 사라지는 것에 어안이 벙벙해 본 적이 있다.)  

 

전에 이 책을 샀을 때나 이번 기사를 봤을 때나뗏목 소식은 그저 반갑다. 휘발유도 배터리도 없이 이동을 하는 것이다책에 얼굴이 나온 이들은세월이 지나서 그만 뒀거나사망했기에 부담이 덜해 가능했지 싶다

압록강이 맑은지 탁한지 물 빛깔을 확인하고 싶다. 이의경미륵의 압록강이여뗏목꾼들의 압록강이여 흘러라. 그들이 지나갈 때 물어보면 좋겠다. (원더염소!)는 궁금한 것이다되돌아 갈 때도 무동력으로 가니껴어예 가니껴여자는 바지 입고 남자는 치마 입고, 성의 장벽을 깨나가면 어떨니껴노 젓는 작은 뗏목들로 서울한강공원에서 관광객 받으면 어떨니껴.   

 

전 세계 어디나 세련되게 축소 개조한 뗏목은 인기를 끌게 돼 있다게다가 개량이더라도, 우리들이 한복을 입고 길에 나다니면 내외국인 모두 기절한다아름다워서. 그러나 이것은 일단 실패할 것이다. 마음이 동해야지, 운동으로 되는 게 있는가. 그렇다. 그래서 각 운동들은 실패한 것이다.

결국 염소의 독후감은 정책 제안인 바, 나라 경제도 살리고 지구를 살릴 묘안을 브레인스토밍 형식으로 적어두는 것이다. 뜨거운 염소 마음. 메에에에에

강물에 기름이 떠서야 되겠는가버슬랑 밖에 두고 관광객들이 들어가 대기하면서한 잔에 이천 원 숭늉라떼를 홀짝홀짝삼천 원 수정과를 홀짝홀짝메에에에에.       



 

한반도에서 가장 긴 물줄기
압록강 이천 리 물길엔
지금도 뗏목이 뜹니다(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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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은 이상하고, 너는 그에게 이상해.”

 

롤랑 마나르는 비 내리는 날 고향으로 돌아온다. 차창으로 주룩주룩 흐르는 빗물은 카메라 빛에 어리어, 마치 그의 뺨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창 밖에는 우산을 쓰고 성당 계단을 내려오는 신랑신부와 거기 참석한 동생이 보이지만, 그는 버스에서 내려 달려가지 않는다. 십 오년에서 오 년 감형된 십 년 형을 채우고,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한 것이다. 단 한 번의 면회도 오지 않은 동생, 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행을 택했던 그는, 동네에 다다라서야 버스에서 내리고, 능숙하게 산등성이 지름길로 가 자신의 집으로 간다. 형의 존재에 대해 왜곡된 사연을 들은 적 있는 여자는, 출소 후 그가 자신의 집으로 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피로연장에 남편을 두고, 보채는 아이만 데리고 집으로 왔다. 재우려고 안고 섰는데, 낯선 이가 눈앞에서 몸을 밀착하며 다그친다. 여자는 공포에 휩싸여 얼어붙는다. 자신과 아이의 평화를 깬 침입자로부터 되려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내 집에 무단 침입해 있는 지금 당신은) “누구세요?”

 

프랑스 북부 아미앵 근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제라르마나르농업회사를 운영하는 ‘They’는 아내와 세 살 된 딸과 살고 있다. 농촌의 넓은 농지를 가졌지만 별 뾰족한 수 없이 역시나 쇠락의 길을 가는 중이다. 회사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직원이라곤 고작 자신과 조수 한 명인데, 그로써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대형 제초기트랙터에 올라타고 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순식간에 풀이 깎이기 때문이다. 조수는 적재함차량으로 그와 호흡을 맞추며 옆에서 나란히 달린다. 깎인 풀은 잘게 분쇄되어 원통형 굴뚝으로 뿜어져 나와, 옆 차량의 적재함에 쌓인다. 거칠고 메마른 정서를 가진 제라르는 짙은 풀 향내가 나는 그 순간의 음미도, 굉음과 대형 칼날이 지나가면서 불가피하게 짓이기고 파괴한 다른 종의 세계에 대한 일말의 내적 갈등도 없다. 그저 심란하여 행동이 더 난폭해질 뿐이다. (오 년이나 일찍) 형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롤랑이 돌아온 그날은, 파리에서 와 이곳에 정착한 지 십 년이 되는 이태리인 수의사 베리노의 결혼식이 있었다. 제라르가 그와 매우 오랜 친구인 듯 행동해서 아내는 속아왔지만, 그들이 은밀하고 석연찮은 관계임이 계속 복선으로 깔린다. 제라르 집 냉장고에 붙은 모든 결혼사진엔 제라르와 아내, 베리노, 셋이 있다. 롤랑은 그것을 보고 그것을 간파한다. 제라르는 형에게 진실의 일부만 말한다. 형의 주장이 옳았노라고. 소들은 아팠고 뇌수막염에 고기는 썩었고, 베리노가 보험을 위한 서류를 해주는 대신, 자신은 그의 정착을 돕고 고객을 모아주었노라고. 음흉한 롤랑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제라르의 아내는, 그의 짐을 뒤지다가 들킨다. 롤랑은 짐 속 책을 꺼내 설명해준다. 미국인들의 점령에 맞서 싸운 플로리다 족장 오세올라의 죽음을. 원주민들은 고속도로에서 팔찌를 팔거나 히치하이커들이라고. 그것은 자신의 신세와 같음을 암시한다.


제라르는 자신의 자가용 겸 풀 깎는 기계인 노란색 트랙터 둘레에, 전구를 칭칭 감고 거칠게 밤길을 돌진한다(사람인 형이더라도, 형이 없었으면 싶은 그의 심정을 담고). 그의 트랙터가 달리면, 매달린 전구들은 크리스마스트리의 그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인다. 전구가 꺼지면 동시에 파티도 끝나고, 의무뿐인 집 문을 여는 일만 남았다. 십 년 청춘을 날리고, 범죄인 평판 낙인이 찍힌 형이 돌아오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가정의 안온함도 깨졌다. 무섭고 불편한 객식구인 형을 내보내라는 아내와 손찌검도 오가며 싸우지만, 그에겐 형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우리(추측건대 자신과 베리노)가 여기서 행복한 게 수치스러워서 면회를 안 간 거라고, 형이 뭘 원하든 (그것이 내 아내인 너의 몸이더라도) 줘야 한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형뿐 아니라, 아내 또한 형에 대한 감정이 심상찮음을 눈치 챈 제라르는 형에게 (줄 것 중에) 내 가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형과 동생의 아내는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족 간 불협화음과 오가는 폭력이 괴로운 형은,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떠난다.

 

형이 멍청해서, 아버지가 농장 대신 제빵견습생이 되게 한 거라고 형에게 쏘아붙이지만, 여러 장면에서, 사람과 동물을 잘 다루는 진실하고 훌륭한 조련사로서의 면모를 형 롤랑은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늘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감독은 롤랑이 유희를 목적으로 드라이브할 때 나란히 달리던 개를 치어, 차바퀴가 생명을 죽인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낸다. 마지막 날, 롤랑이 지나는 차를 얻어 타고 떠나려고 길에 섰는데, 그녀가 달려와 붙잡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아이와 같이 떠나자고 하자 제수씨는 망설인다. “아미앵까지 태워줄게요.” “처음부터 짙었던 당신 눈썹은, 내가 떠나는 게 낫다는 뜻이에요.” 히치하이커 롤랑은 대형 트럭을 얻어 타고 떠난다. 

 

날은 어둑하고, 제라르가 트랙터를 몰고 오다 멈춘다. 흙바닥에서 혼자 노는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가려 한다. 장난감을 집어 올렸으나, 머리 부분이 쏙 빠진다. 그것은 장난감 윗부분과 아래 부분이 분리된 것을 모르는 무심한 아빠를 의미한다. 또한 십 년 전 그날, 제라르의 과오로 불에 타 죽은 농장일꾼의 딸로서, 최근 목을 맨 알코올 중독자 카롤린 불레의 목을 의미한다. 부부사이의 종말이며, 형제간 파탄이고, 아주버님과 제수씨라는 족쇄의 박탈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제 형에 대한 부채가 소멸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제라르는 그간 사람들의 표준에 맞춰 산 덕에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으나, 꺄페와 주스와 아르마냑을 파는 인간적인 사람인 아미르네 꺄페든 어디든, 동네사람들 수군거림을 들을 것이다. 그녀는 갔니더시즈곤, 엘레빠띠. 몸과 마음의 소리에 경도되어 둘 중에서만 고르느라, 여럿 중에 고르는 것도 방법이라는, 바람에 실려 온 소리는 안/못 듣는 그녀는, 그러므로 갔니더. 작고 다부진 그만이 이 세상에서 오로지 멋진 것이다.

 

 

 

원제:Peaux de Vaches(Thick Skinned)무정한 사람
Patricia Mazuy감독 1988년 프랑스영화
출연_ Sandrine Bonnaire, Jacques Spiesser, Jean Francois Steve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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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는 세계의 온갖 인종들이 다 모인 곳이었다.  

... 사람들은 모두 이리저리 막 몰고 다니는 자동차에 치이지 않기 위해서 앞을 다투어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그렇게 긴장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사정없이 달리고 항구의 배들도 그리고 큰 건물의 지붕 위에 달린 선전물들과 사람들의 마음까지 서두르게 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고 집중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세상 같았다. 행동이 민첩하고 강한 자가 생존경쟁에서 승자가 되고, 그렇지 못하고 느릿느릿하며 약한 자는 패자가 되는 그저 난폭하고 매정한 인간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울 시간도 웃을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146~147쪽)


... 수백 명의 품팔이꾼들은 손수레를 끌면서 자기네끼리 방향이나 속력을 서로 말하기 위해 이상스러운 소리들을 지르며 달렸다. 짐꾼들은 목적지에 도달하면 품삯을 받지만 그 돈으로는 담배 한 갑도 살까말까 하는 박한 노임이었다. 돈이 적다고 짐 주인에게 몇 푼 더 달라고 손을 내밀다가는 어떤 때는 뺨을 한 대 얻어맞는 수도 있고 때로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정수리를 얻어맞는 일도 간혹 있었다.그러면 이 불쌍한 일꾼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서서 도망쳐버리곤 했다. 이 일꾼들은 벌써 직업적으로 귀가 밝아서 어디서 짐꾼을 부르는 소리가 나면 얼른 알아듣고 손수레를 끌고 좋아서 누가 부르는 쪽으로 달려갔다. 일꾼들은 대부분 상의를 벗고 짐을 끌기 때문에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몸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147~148쪽)


요 며칠 전에 나는 어떤 부인을 한 분 알게 되었다. 그 여자는 바로 젊은 나이에 영웅적인 애국 행위를 하고 세상을 떠난 너무나도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부인이었다.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원수였던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가 바로 안중근 의사에 의해서 살해됐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물론 일본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그의 가족에게까지도 화가 미치게 되자 이 부인은 조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부인은 일곱 살 된 딸과 세 살밖에 안 된 아들을 데리고 막연하게 북쪽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 후 안 여사는 10년이나 시베리아 땅에서 방랑 생활을 했고, 성장일로에 있던 일본 세력은 이 가족을 더욱 추적했을 것이며, 혹한과 가난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끊인 날이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이 부인도 상해에 오게 되었고 마침내 조국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친 의사의 부인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결국 한국 남자들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얼굴도 갸름하고 나이는 사십쯤 되어 보이는 이 부인은 내가 회색으로 도배질되어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부인은 "얘가 내 딸이에요"라고 열일곱 살쯤 돼 보이는, 중국 옷차림으로 서 있는 여학생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소개했다. 아들 아이는 소련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아주 튼튼하게 생긴 것이 얼굴색은 더욱 건강해 보였다.(152쪽)


최씨는 내 옆에 서서 비난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더니  .....  "지전은 아직 얼마나 남아 있니?"

"한 푼도 없어." 그의 큼직한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되더니 내 얼굴과 동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는 자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뭘 열심히 계산하는 눈치였다. "이것 받아둬!" 이 돈 내가 주는 것이니 좀 조심해야 돼. 너는 이제 다른 대륙에 와 있어, 이 철학자야."

나는 그 돈을 받아 접어서 제일 안쪽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 되는 안봉근이 콘크리트 방에서 돌아오더니 말했다. "자, 이제 우리 갈 길을 가자, 그럼 정거장으로 가야지." 우리는 모두 파리로 가게 될 다른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형들! 잘 가요."       "그럼 훗날 조국에 돌아가서 다시 만납시다."(194~195쪽)    

 










1910년 8월 28일, 일본의 군인이며 정치가였던 데라우치(데라우치 마사다케. 1852~1919. 1910년 당시 초대 조선 총독)에게는 대단히 중대한 문서가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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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부터 우리 고국을 이 무한한 만주 벌판과 분리시키고 있는 국경의 강은 막을 길 없이

흐르고 흘렀다. 

이편은 모든 것이 크고 음침하고 진지하였으나, 저편은 모든 것이 잘고 쾌활하였다.

언덕에는 빛나는 초가집들이 산재해 있었다. 또한 많은 굴뚝에서는 벌써 저녁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멀리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산맥과 산맥이 연달아 물결치고 있었다. 산은 햇빛에 빛났다.

또다시 황혼의 아름다운 빛에 물들었다가 서서히 푸른 이내에 잠겨 갔다.

나는 먼 남쪽의 골짜기며 시내가 있는 수양산을 눈앞에 보는 듯했다. 소년 시절 언제나 저녁 음악을 들었던 이층탑 건물도 눈앞에 선했다. 나는 한 번 더 저 남쪽에서 들려 오는 황홀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착각에 빠졌다.

소리없이 압록강은 흘렀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어두워졌다. 나는 다시 언덕을 내려와서 철도로 걸어갔다.(186쪽)


언젠가 우체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알지 못하는 집 앞에 섰다.

그 집 정원에는 한 포기 꽈리가 서 있었고 그 열매는 햇빛에 빛났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그처럼 많이 봤고, 또 어릴 때 즐겨 갖고 놀았던 이 열매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였던지. 나에겐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내 앞에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집에서 어떤 부인이 나오더니 왜 그렇게 서 있는지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나의 소년 시절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 부인은 꽈리를 한 가지 꺾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얼마 후에 눈이 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성벽에 흰 눈이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흰 눈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 휘날리던 눈과 같았다.

이 날 아침, 나는 먼 고향에서의 첫 소식을 받았다. 나의 맏누님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217~218쪽)

  

수암- 이것은 나와 함께 자라난 내 사촌 형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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