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부터 우리 고국을 이 무한한 만주 벌판과 분리시키고 있는 국경의 강은 막을 길 없이
흐르고 흘렀다.
이편은 모든 것이 크고 음침하고 진지하였으나, 저편은 모든 것이 잘고 쾌활하였다.
언덕에는 빛나는 초가집들이 산재해 있었다. 또한 많은 굴뚝에서는 벌써 저녁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멀리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산맥과 산맥이 연달아 물결치고 있었다. 산은 햇빛에 빛났다.
또다시 황혼의 아름다운 빛에 물들었다가 서서히 푸른 이내에 잠겨 갔다.
나는 먼 남쪽의 골짜기며 시내가 있는 수양산을 눈앞에 보는 듯했다. 소년 시절 언제나 저녁 음악을 들었던 이층탑 건물도 눈앞에 선했다. 나는 한 번 더 저 남쪽에서 들려 오는 황홀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착각에 빠졌다.
소리없이 압록강은 흘렀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어두워졌다. 나는 다시 언덕을 내려와서 철도로 걸어갔다.(186쪽)
언젠가 우체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알지 못하는 집 앞에 섰다.
그 집 정원에는 한 포기 꽈리가 서 있었고 그 열매는 햇빛에 빛났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그처럼 많이 봤고, 또 어릴 때 즐겨 갖고 놀았던 이 열매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였던지. 나에겐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내 앞에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집에서 어떤 부인이 나오더니 왜 그렇게 서 있는지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나의 소년 시절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 부인은 꽈리를 한 가지 꺾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얼마 후에 눈이 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성벽에 흰 눈이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흰 눈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 휘날리던 눈과 같았다.
이 날 아침, 나는 먼 고향에서의 첫 소식을 받았다. 나의 맏누님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217~218쪽)
수암- 이것은 나와 함께 자라난 내 사촌 형의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