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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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그의 소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의 열기가 아직인데, 얼마 안되서 신작이 나왔다.

70의 고령, 암투병한 모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필체에는 힘이 있고, 여유가 있고, 젊음이 있다.

이 책은 그의 에세이로 글쓰는 작가로써, 그간 암과 투병하던 삶을 통해 겪고 있는 외로움, 사랑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가 쓰여있다.

책을 통해 그의 삶과 그리고 그의 생각, 느낌, 사물에 대한 통찰 등 여러가지를 엿볼 수 있다.


구성은 아래와 같다.

그냥 봐서는 저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책에서 그 흔한 서문이나 추천사, 후기 등도 전혀 없다.

그냥 그 자신과 그 글을 함께 덤덤히 함께 해주는 정태련 화가의 그림이 있다.

오히려 이런 단순하고, 소박한, 깔끔한 구성에도 작가의 이야기와 생각이 숨겨있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 읽어봤다.

이 작가님의 책을....

그래서 스타일도, 취향도, 색깔도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산문을 좋아한다.

그림이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글로 가득한 책을 좋아한다.

그냥 취향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내 취향을 뒤집어 놓았다.


이 책을 받아 한숨에 들이키듯 읽어나고서 나는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중간중간 쉬는 숨을 들이고, 내쉬고 했지만,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의 기분으로 이 책과 함께 정지되었다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방탈출? ㅋㅋㅋ


이 책은 짧다.

그래서 좋기도 하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짧지만 그 안에 정말 딱 핵심, 작가는 말하려는 그 알맹이만 골라내어 잘 배열해내어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잘 전달했고, 나는 잘 전달받았다.

산만하지 않고, 두리뭉실하지 않고, 뱅뱅 돌리지 않는다.

아! 좋다!


문장이 시와 같이 리듬이 있는 듯하다.

숨이 막히게 하거나, 거칠게 몰아가거나 길을 잃게 하거나 어딘가에 올려놓고 우릴 내버려 두지 않는다.

독자와 함께 숨쉬는 느낌이다.

읽기가 참 편하다. 안정적이다. 배려받는 느낌이다.


이 책은 사이다다.

슬그머니 예의바르게 된 나,

슬그머니 말을 돌려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뱅뱅 돌리는 말,

슬그머니 눈치보느라 말하지 못한 나

그런 나의 속을 그가 대신 터뜨려주는 느낌이다.

마지 속이 곪은 꽉찬 여드름을 짜내듯이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편견에서 살짝 뒤로 물러나본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반박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이럴 줄 몰랐지? 요것도 있지롱~'하고 말하듯

우리에게도 조금만 다르게 보는 여유를 갖으라고 하는 듯하다.


저자의 말을

상큼한 것을 배어물었을 때처럼 한 쪽 눈을 찡긋하게 만든다.

그의 표현은 내 가슴의 묵을 뒤집어 섞듯 뭉클한 무언가를 건드린다.

분명, 다른 책들에서도 이렇게 비유를 상징을 사용한 건 맞지만

유독 이외수 작가님의 몇 문장의 표현에서 찌릿하게 만드는 건

그가 좋은 글을 사람을 감동케 하고 읽을 맛이 있어야 한다고 한것처럼

그의 글이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읽는 몇 시간이 다른 것에서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이 작가님의 다른 책들이 궁금하고,

이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넘긴게 후회스럽기도 하고,

(이건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럴수밖에 없었다고 핑계대고 싶음)

가지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에 다시 들어갔다 나온 이 느낌이 또 너무 좋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한, 시야가 탁 트이는 한가을 중턱에서

잠깐 멈추어 이 책을 들어보시길...

이 책을 들고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의 느낌을 정말 추천하고 싶다.




나는 글이나 책이, 읽는 이를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어 깨닫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는 쪽보다는 느끼는 쪽이 더 낫고, 느끼는 쪽보다는 깨닫는 쪽이 더 낫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p.16-17


타고난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타고나지도 않았고, 노력하지도 못했으며, 즐길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괜찮다. 훌륭한 관람객으로 존재하면 된다. p.26


배고픈 이가 밥을 달라고 할 때는

밥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목마른 이가 물을 달라고 할 때는

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창고의 음식을 잔뜩 훔쳐 먹고

뒤룩뒤룩 살이 찐 쥐새끼들이 더 처먹겠다고

지랄발광을 떨며 대면 때려잡는 것이 상책이다.

p.39



항해보다 어렵고 전쟁보다 치열한 인생,

사랑하나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p.57


그러면,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아가 세상을 보다 나은 쪽으로 변모시키는 글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일단 읽는 맛과 감동을 겸비하고 있다.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문자 고문을 끝까지 당해달라는 말과 같다. 대개 감동과 재미를 겸비한 글들은 발효된 진실이 배합되어 있다.p.86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이라고 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겠는가.

진짜 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의 말씀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 비늘만 번쩍거린다고 다 용은 아니다.

p.94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1국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착점을 할 때마다 심리적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과 어떤 경우에도 심리적 동요를 느끼지 못하는 인공지능과의 대결은 인간의 패배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인간이 백전백승을 거두는 방법이 있다. 알파고의 전원 스위치를 꺼 버리는 것이다. 푸헐. p.98


글 쓰는 사람이 지적 혀영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악습은 잘 쓰겠다는 욕심이다. 자신의 능력은 감안하지 않고 청사에 길이 빛날 명작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나 결심을 간직하고 글을 쓰면 결국 감동과는 거리가 먼 문자 노동의 결과물을 양산해 내게 된다. 감동이 없는 글은 죽은 글이다. 그러면 어떤 글이 살아 있는 글인가. 쓰는 이의 진실을 바탕으로 읽는 이의 사랑을 각성시키는 글이 살아있는 글이다. p.116


......나는 그 많은 직업들 중에 왜 하필이면 소설가를 선택했던가.

요즘은 썅칼, 비애감이 얼음물처럼 써늘하게 영혼을 휩싸는 순간들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 p.120


실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실력을 과시하는 일을 즐겁게 생각하고

실력이 탁월한 사람일 수록 실력을 과시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도 수행이요 밥을 먹는 일도 수행이다.

수행을 하러 이 세상에 와서 수행을 마치고 저세상으로 간다.

그렇다면 내 수행의 깊이는 어디쯤 도달해 있을까.

언제나 바보 천치가 부러울 따름이다. p.135


오늘도 할일이 많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위해 할 일보다는 남을 위해 할 일이 태반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면 제일 먼저 스케줄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남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남을 위해 한가지도 할일이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그건 내가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했다는 사실과 동일하니까.

p.143


..... 그러나 일단 일거리를 만나면 오래된 외투처럼 걸치고 있던 나태를 홀가분하게 벗어던진다. 그리고 집요하게 일거리를 물고 늘어진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 일거리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지쳐도 일손을 놓는 경우는 없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잠깐 휴식을 취할 때도 일거리에서 시선을 떼는 법이 없다. 물론 성취하고 나면 다시 나태 모드로 돌아간다. 일거리를 다 해치운 성취인의 나태는 행복이라는 이름의 방바닥에 깔려 있는 솜이불이다.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혼곤하며 적당히 자유롭고 적당히 방만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성취 이전의 나태를 용납할 수가 없다. 그것은 솜이불이 아니라 가시방석이기 때문이다. p 157


책은

사람을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고 깨닫게 만든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얕은 앎,

얕은 느낌, 얕은 깨달음에 머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조차 모르게 된다.

책은 우주로 연결된 통로다.

p.186


담 너머로 지나가는 뿔만 보아도 사슴인지 염소인지 아는 사람도 있지만

바닷물을 다 퍼마셔야 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는 것이 다는 아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자주 쓰지만

아는 거에 가려져 진체가 안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깨닮음에 비하면, 안다는 단계는 참으로 부끄러운 단계다.

먼 산머리에 떠 있는 조각구름 한 덩어리,

무슨 거처가 있겠는가.

p.201 

 

 

출판서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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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 Dream 아이 해브 어 드림 -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는 10가지 마법
이혁백 외 지음 / 레드베어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꿈에 관련한 책들은 우리가 접하기가 쉬웠다.

그렇게 아주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사막의 신기루같기만 한 단어가 바로 꿈(DREAM)이다. 

그래서 선뜻 이 책은 다른 강의나 책과 같은 진부하고 피상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꿈이라는 단어자체가 모든 사람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단어이고, 희망을 갖게 하는 단어여서 무관심하게 생각하려 하려고 하지만 눈길이 갔다. 또한 배우, 음악가 등 문화예술인의 강력추천도서라는 말이 이 책에 더 강력하게 이끌렸다. 대체로 경제적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추천사는 많이 봤지만, 문화예술인의 추천 그것도 강력추천이라는게 거의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10인의 작가들이 적은 자신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다.

대체로 꿈을 갖기까지의 과거와 그리고 꿈을 이뤄낸 현재,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는 미래의 이야기로 나누어 전개된다.

작가들은 각기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다. 평범하기도 하고 어쩌면 실패한 듯한 삶이었던 그들에게 작은 생각이 그리고 삶의 전환이 될만한 결심들이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이 책에서 10인이 다루는 꿈이란 '성공'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다.

바로 그것이 다른 꿈을 다룬 책들과는 이 책이 구별되고 매력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얻고, 크나큰 성취를 이루는 성공을 주목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견디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국은 제자리였다라는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10인의 꿈은 '성공' 그것과는 다르다.

먼저 그들은 꿈을 어떤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부유해지기 위해, 타이틀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두번째로, 그들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잘 찾아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정말 행복해 할 만한 것들을 찾아냈고, 그것들을 통해서 남과는 다른 삶을 살 뿐 아니라 그것들이 곧 그들의 꿈이 되고 현실이 되었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10인 모두가 우리가 대체로 생각하는 진부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참 신선하다.

세번째로, 작가들은 10인 모두 자신들의 꿈이 자신들만을 위한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꿈꾼다. 그래서 이 책을 썼고,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일이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갖는 일이 되길 바랐다. 그들의 그런 삶이야말로 정말로 가치있는 삶으로 보인다. 또한, 그래서 그들의 DREAM이 정말 멋지다.


잘 생각해보면 저자들 한명한명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나 환경과는 동떨어지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이(었)고, 엄마가 된 이후 경단녀(경력단절여자)로 좌절을 맛봐야 했고, 가정의 깨어짐으로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과거를 가지고 있는 10인이었다. 그런 그들의 삶이 더욱 공감된다. 그래서 그들이 이룬 꿈이, 찾은 행복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보다 현실적인 희망을 주고, 새롭게 꿈을 향한 도전을 다시끔 회복하게 하는 힘을 준다고 생각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여자로써 엄마로써 공감되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리고 힐링과 위로가 된 구절도 많았는데, 오히려 그런 글들이 꿈이란 단어를 다시끔 내 삶에서 떠올릴 수 있는 힘이 되어줬다. 꿈과는 약간 방향이 다른 것인데, 글들에서 나도 어른이지만 아직도 여리고 무너진 자존감과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지난 2017년 상반기를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현실에 안주된, 스스로 가장 편안한 자세와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익숙해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꿈을 잊고 살아온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도 갖으니 갖는 꿈이 아니라, 무언가 돈을 벌기위해서만의 꿈이 아니라 나 자신이 다시끔 가슴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기로 결심하여 떠나려는 버스를 잡듯이 가까스로 배움을 신청했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 하고 싶은지 나 혼자 되내이며 꿈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새롭게 찾은 것도 있고, 기존에 알만한 것들도 있다. 그렇게 나도 작가들처럼 내 꿈을 찾아가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져본다.


책이 다른 이에게도 나와 같은 작은 움직임을 일으키게 해줄 수 있을거라고 기대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현실에 낙담하지 않고 새롭게 꿈꾸며 살아가길,,,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릴레이 할 수 있길 ....그래서 더 나아가 모두가 살기좋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길 꿈꾼다.

 


 

절대로 풀이는 내가 다 하고 답만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가르쳐 주더라도 문제 뜻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이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개념이 뭔지를 아이에게 물어본다. 모르는 부분에는 어떤 개념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묻고 아이가 스스로 식을 세울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리고 다시 못 풀었거나 틀렸던 문제들은 유사 문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혼자 힘으로 잘 풀 수 있게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수학공부를 하는 목적이 지식의 축적보다는 하나하나의 문제를 풀어 나갈 때 필요로 하는 능력을 길러주고자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p.17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온전히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고, '이 나이에 어떻게...'하며 늘 타인의 시선에 사로잦ㅂ혀 있던 내가 '이 나이니까 해보자'로 관점을 전환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 갔다. 잘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서 하는 것,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p.119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저자 웨인 다이어는 "타인의 시선에 잡혀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만틈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나는 그 도구로 캘리그라피를 활용한 것이다. p.125


우리의 인생이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습관에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일상의 사소한 변화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백팔십도 바꿔야만 변화할 수 있다. p.156


"왜 살아야 하는지,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프랭클은 우리로 하여금 삶이 의미를 찾게 해주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자신이 해야할 일,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찾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여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두번째는 사랑을 찾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를 의미 있게 하고, 세상에 남아있게 만드는 유일한 가치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을 영혼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절망도 죽음에 이르게 하지 못할 것이다. 세번째는 고난을 찾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가 창조와 즐거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괴로움 속에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통이 크고 가혹할수록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시련을 이겨내는 와중에 우리는 강인한 존재가 되며, 삶의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p.168-169


엄마가 된 이후로 내 삶에는 너무나 큰 변화들이 일어났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조차 작은 사치가 된 것이다. 이전에는 내 마음대로 했던 것들이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누릴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자신이 누리던 자유를 빼앗기면 사람은 화가 나고 박탈감을 느낀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아이 때문이라도 말이다. 모성애는 아이를 낳음과 동ㅅ이에 부여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온전히 버리고 한 존재에게 오롯이 반응할 정도로 인간은 이타적이지 않다. 엄마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꿀잠을 자고 싶고, 단 몇 시간만이라도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 p.175


<당신(You)>이라는 책에서 작가 프라이스 프리쳇은 "어떤 일이든 도중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상처에 휩싸여 있을 때는 그 모든 순간들이 아프다. 지금의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이 삶에서 행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너무 아픈 상처 앞에서는 극복하기보다 버티고 견뎌야 한다. 하지만 견뎌야 할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상처를 성자으이 과제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생각을 토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처를 대한다면 우리가 마주할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보석 같은 '깨달음'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p.195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그의 말 속에는 나의 경험들이 모두 녹아있다. 나에 대한 미움, 부정적 감정들과 더불어 자존감 또한 낮았으니 모든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의 잘못된 행동, 생각습관의 원인을 분석하고 공부하며 마침내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나빠서'가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치유하지 못한 상처들이 내 생각과 감정을 지배해 나쁜 행동과 생각을 하게끔 부추기고 있었던 것임을 받아들였다. 나는 조금씩 내 상처를 인정해주고, 나의 지난 실수들과 과오를 수용하기로 했다. p.201-202


상처는 인정하고 포용하며 안아버리는 것이다.p. 203


가슴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받는 것이 더 괴로워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와 열망이 아닌 머리로 살아가과 있다. 가슴으로 사는 삶을 두려워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며 당연한 영혼의 목소리를 억압한다.

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조금 배려가 없어도, 예의가 없어도 가슴으로 살아가는 삶을 기억하고 실천하며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웨인 다이어의 책 제목처럼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살아갈 때 진짜 행복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참으면,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는 늘 그렇지 뭐'라며 타인에게 삶의 주도권을 쥐어준다. 누구나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며 누구에게나 자신의 행복을 찾고, 내면의 욕구를 마음껏 표현할 권리가 있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될 때 행복한 삶이 준비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p.208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타인에게 인정받고 확인하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이 뜨겁게 보듬어주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기억을 잘 더듬어서 내가 어떤 시절에 정말 살아있다고 느꼈는지 내가 어떤 일 앞에서 내 존재감이 확 드러났는지 차분하게 되돌려보는 것이다. 누군가 가벼운 칭찬 한마디 했던 기억도 놓치지 말고 기록해보자. 작은 기억이라도 떠오르면 기록해야 한다....p.226


호주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노인들의 병간호를 한 브로니 웨어(Bronnie Ware)는 시간이 흘러 여러 환자들의 임종을 수년간 지켜보며 죽기 전에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책으로 펴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중에서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5가지를 소개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았더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조금 더 도전해 보았더라면...

내 감정에 충실하게 살았더라면...

일을 조금만 덜 했더라면...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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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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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를 한 책읽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의 시크한 듯한 표정과 "~하지 않습니까?"라는 말투에서 솔직하고 직설적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매번 그녀가 패널로 나오는 그 코너를 나는 참 좋아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뭔가 적지 않은 책을 접한 사람인듯한 느낌, 그리고 평범하거나 대중적이지만은 않는 듯한 책들의 소개는 그녀가 책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배우고 싶고 궁금한 마음에 늘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코너를 접했다.

왠지 나와는 아주 다른 성격이어보일 뿐 아니라 나와는 정반대인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갖은 것 같고, 무언가를 솔직히 대변해 주는 느낌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여행이라는 주제보다는 나는 그냥 저자만 보고 그녀가 쓴 글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책을 이제서야 발견했다.


여행서를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여행서라면 무언가 포인트가 있다.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혼자 혹은 어떤 특별한 이와 떠난 여행, 여행지, 특이한 방식의 여행, 적게 소비된 여행, 여행지에서 발견하는 예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독자들에게 여행에 도움을 주거나 색다른 것들을 보이고자 하는 목적이 반드시 여행서에 있다.

그런 것들과 이 책은 난 구별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뭔가 색다르게 튀어보이진 않지만 또 다른 여행서 같지는 않다.

구성에 있어서는 일반 여행서와는 분명히 다르다.

어쩌면 그게 특이하고 저자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게 내세우는 여행지는 없다. 혼자 다니는 여행을 저자는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내세울 거리가 못된다. 그녀는 자주 갔던 곳을 계속 탐색하고 음미하며 다닌다지만 딱히 독자들에게 권하는 여행방식은 아니다. 많은 여행을 적은 비용으로 다녔다고도 말하지만 그 방식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은 자신의 많은 여행과 여러 일상이 나무의 가지와 같이 연결되어 있다.

여행이라는 큰 나무에 여러가지 주제가 연결되어서 그녀의 입담을 통해 이야기 된다.


이 책은 여행을 간접경험하게 해주는 책은 아니다.

여행에 대한 도움을 주는 책도 아니다.

책의 제목처럼 시간만 나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갔던 그녀답게 일상을 여행을 통해서 보내고, 여행에서 일상을 연결한 책이다.

책 표지에서 '말하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시간'이 딱 이 책을 말해주고 있는데,

저자 뿐 아니라 책 표지 또한 그녀와 같이 솔직하고 직설적이게 이 책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참 그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솔직담백한 여행과 연결된 일상의 이야기는 너무 솔직해서 아는 언니와 수다떨듯이 편하게 깔깔거리는 느낌이다.

독자가 누가 될지도 모르는데, 여성의 생리이야기를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하질 않나

에딘버러의 날씨를 이야기할 때 너무 추워서 설사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이보다 솔직하면서 감이 오는 표현이 있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같은 여자여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여자에게 여행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여행을 대하는 여자들의 태도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남자와 비교하여 여행을 경험하는 여자들의 속사정과 환경은 그럴 듯하며, 실제로 나같아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여자만이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다시한번 솔직하고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필담(? 손담?)이 매력있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을 위한 실제적인 도움이 그다지 되지는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간 잊고 살았던 여행의 욕구에 다시한번 불을 지피게 되었다. 짧막하게 다룬 그녀의 여행내용이 많이 자극이 되었던걸까?

아니..그녀가 작게 나마 여행지에서 느끼고 경험한 그 이야기들이 그다지 괴리가 느껴지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익숙하고 친밀하게 다가와서가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결혼 전에는 혼자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결혼하지 않았다면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여행사나 대중교통비로 내놓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휴일이 생길 때마다 여행지를 찾아 다니고 혼자 누비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국내를 다니기 시작할 즈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혼자만의 여행은 쫑이 났지만 말이다.

그 당시 혼자다니는 걸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낯설어진 지금이지만, 그래서인지 그녀의 혼자 여행이 내겐 친숙하고 지금은 그리워하고 아쉬움을 남기는 가운데 이렇게 나마 책으로 대체적인 경험을 하니 이 책이 내게는 그렇게 뜻밖의 기쁨을 준 것이 되었다.


마지막이다.

거창한 여행이, 화려한 여행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마 내가 아닌 남을 위한 보이기 위한 여행이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또한 저자 자신의 여행을 이야기 하며 우리에게도 자신에게 맞는 여행을 찾아볼 것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무언가를 찾고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하는 여행을 소박하더라도 다녀오고, 그 여행을 통해 또 하나의 일상을 발견하는 것 ... 그냥 떠나는 기쁨으로 떠나는 것...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그 어디가 어디일지라도 떠나는 여행...

아!!! 나도 가고 싶다~ ^^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 기도문 中 p.14



여행이야말로 우아하게 가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집에서 가난한 것보다는, 여행지에서 가난하면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있다는 자위라도 할 수 있으니까. 돈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나면 정말 뭔가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게 뭔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정신승리가 따로 없다. p.33



하지만 그때 그렇게 놀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서른 초반의 삶이 딱히 윤택해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런 철없음이 더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많이 누리는 게 아니라 가진 걸 최선을 다해 누릴 기운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남들 보라고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이렇게 나이를 먹는다. p.79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혼자 여행하는 건 꿈도 못 꾸겠다고. 그 시절이 그립다는 뜻이기도 하고, 배우자와 아이(들)가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냥, 동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게 전부다. p.107



가지 못한 장소를 글로 경험하고 상상하는 것은, 인간이 상상력을 지닌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가본 곳보다 못 가본 곳이 더 많은채 죽을 것이다. 하지만 가본 곳보다 읽어본 곳이 더 많기는 하겠지. 안 가본 곳에 대해 읽고 상상하는 법을, 나는 외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p.118



일본에서의 미니멀리즘이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촉발된 움직임이라면, 한국에서의 미니멀리즘은 저소득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사고 싶은 만큼 사보니 안 사도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과, 원하는 만큼 사본 적이 없지만 그래봐야 부질없다고 배운 뒤 일단 아끼고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하지 않을 자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보니 생각의 깊이란 내 집 침실에서도 얻을 수 있더라 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과, 애초에 여행 가도 별것 없으니 안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할 자유를 누린 뒤에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자유를 충족시킨 뒤에야 일하지 않을 자유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할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하지 않을 자유'를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해보니 별것 없더라"와 "해도 별것 없대"는 다르다. 여건이 된다면, 결론을 내기 위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하기를 권한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고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내안으로 여행하기'를 잘 하려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뭔지부터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다못해 여행을 싫어한다는 사실도, 여행을 해봐야 알 수 있다. 인내와 금기는 엉뚱한 판타지만 키우더라. p.156



미켈란젤로는 이 <피에타>를 정면에서 보는 인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위에서 굽어보시는 하느님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명. 미켈란젤로의 의중을 완벽히 알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위에서 본 <피에타>는 정면에서 본 <피에타>와 다르다. 위에서 보는 순간, 그냥,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p.205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다짜고짜 좋아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먹는 순간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신의 음성이 귓가에 울릴 것 같지만, 그건 음식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더러, 맛을 음미하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지적인 쾌락이다. 미각은 다른 많은 감각처럼 훈련할수록 더 성취도가 높아진다. 미술이나 음악, 소설 같은 예술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법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듯 말이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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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 전 아마 2012년 쯤부터 직장인인 나의 삶에 소소한 기쁨이 바로 토요일에 영화관련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었다.

K 본부와 S 본부에서 약간의 시간차로 진행해서 한 프로를 보고 곧 바로 다른 본부의 프로로 갈아타기 식으로 즐겨봤었다.

그 중 한 프로를 보는 이유가 이 책의 저자와 김태훈 칼럼리스트가 영화에 대해서 평론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를 소개해주거나 딱딱하게 영화의 의미를 전해주는 것과 달리 그가 진행하는 코너는 영화이야기와 더불어 영화에 내포하는 것을 소개하는데 그게 꽤 설득력있게 다가왔고, 그것들을 근거하는 뒷이야기들도 쏠쏠히 있어서 정말 개성있고 특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가 빨간 책방이라는 프로의 DJ라는 걸 얼핏 알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독서법을 주제로 한 책을 그가 냈다는데 왠지 모를 반가움과 기대감이 들어 이 책을 바로 찾아 읽어보았다.


독서와 관련한 책을 읽는걸 나는 좋아한다. 독서에 대한 기대감은 늘 갖고 있지만, 독서관련한 책을 읽으면 도전이 될 뿐 아니라 그것이 내 독서생활에 박차를 가하는 동력이 되어 내 삶에 생동감을 주는 것 같아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보는 책들 중에 이 책은 그동안의 책들과는 다르다.


일단 이 책은 책의 장점에 대해 판매영업하는 사람처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물론 주제가, 말하려는 포인트가 책마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태까지 내가 봤던 책들은 저마다 독서의 장점을 거의 신봉하는 수준처럼 제시하곤 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책만큼 질리지 않는 것을 찾기 힘들고, 한번 읽는 매력에 빠지면 책만큼 재밌는게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표현은 담백하고 솔직하게 느껴진다. 어느 과장이나 화려한 표현없이 책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점에서 참 좋았다.


저자는 자신은 독서방법과 관련한 것들을 알지 못했고, 수십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독서방식을 터득했다며 그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방식은 다른 책에서도 본 것과 유사한 면도 있지만, 다르게 신선하고 독특한 면도 있다. 예를 들면, 나만의 서재, 나만의 책을 읽는 전당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가 독서하는 공간 중 가장 좋아하고 독서가 잘 되는 공간은 욕조에서라고 한다. 나같으면 책이 젖어버리면 어쩌지 싶어서 시도하지 못할 방법인데, 나름대로 책을 안 젖게 하게 할수 있다고 하니 그 공간에서의 독서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또한, 좋은 책, 훌륭한 책을 찾기 위한 방법도 공유하는데 책의 2/3 지점을 펴서 읽어보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책을 고를 때는 목차나 혹은 서문을 보고 고르는데 이 방법은 듣도보도 못한 놀라운 방법이어서 꼭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의 독서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참 깊고도 설득력이 있다. 자신이 생각한 것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따라 그리고 근거를 바탕으로 독서에 관한 자신만의 관점을 제시하는데 바로 이러한 면이 독서와 관련된 책들에서 확실히 구분되는 면이라 볼 수 있겠다.

우리 남편의 말에 따르면 독서를 하는 것은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여행?)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생각을 따라 책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하는 독서에 대해서 그의 생각을 따라가는 건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한 흐름을 따라가는 내내 즐겁다.


사실 나 자신은 절대로 사색적이지 않고, 생각하는 것에 서투르며 논리적이지 않다. 그런 나의 생각을 따라가면 늘 어느 시점에서 뭉뚱그려지거나 사라지는데, 이렇게 독서를 하면서 이런 저자의 생각을 천천히 따라가는 것에서 책의 매력을 느끼고 묘미를 알아간다. 나라면 할 수 없는 생각들을 작가를 통해서 함께 해본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2부에서는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의 패널로 매주 등장하는 이다혜 기자와 질문, 대답이 오간다. 기자의 날카로움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갖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거침없이 질문해주어 읽으면서 독서에 관련하여 궁금하던 것들이 세세히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또한, 질문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있는 인터뷰는 한쪽에 편향된 일방적이거나 질문이 상투적이 되기 쉽다. 그런데 이 경우엔 둘다 책에 관해서라면 그 애정과 관심이 상당한 분들이어서 질문도 답변도 내용이 탄탄하고 알찬 것이 흥미롭다.


꼭 독서법에 대해서 알고 싶은게 아니더라도 책읽기에 관련된 생각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면 재미있게 볼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그의 생각을 따라 그가 이야기하는 그만의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책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담담하고 편하게 즐기는 독서로 그의 가이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 또한 500권정도 그의 추천도서 목록도 꼭 한번 보고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추천도서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독서를 찾아가는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추천도서관련 질문을 너무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고 독자들 또한 그의 생각과는 별도로 상당히! 궁금해 할 것이기 때문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즐독하세요 :)


**아래 인용 쓰다보니 책을 다 베낀듯.... 죄송합니다. 너무 좋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그 중요성도 높아집니다.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 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 교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문성도 가질 수 없죠. 사람들은 대체로 깊어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깊이를 갖추기 위한 넓이를 너무 등한시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국경과 시간적 제약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현대에는 넓이에 주목하는 게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넓이를 갖추는 데 굉장히 적합한 활동이 바로 독서입니다. p.27


왜 문학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두 가지 때문이라고 말해요. 하나는 인간이 한번밖에 못 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천 번 만 번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한 번밖에 살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인생에서의 모든 것은 시연없이 무대에 올라가서 딱 한 번 시행하는 연극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타인이라면 다양한 상황과 특정한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주고 감정을 이입하게 해줍니다.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그 한계를 좀더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설정 속에서 인식하게 하고 고민을 숙고하게 만들죠.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직접적인 경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직접적인 경험보다 간접적인 경험이 더 핵심을 보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p.29-30


책을 빨리 읽어버리려면 중간에 덮으면 안 되겠지요. 그래야 책 하누건을 다 읽는 속도를 높일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책 읽는 중간중간에 잠시 멈추는 것, 그것도 독서 행위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좋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것을 넓혀나가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 소화하기 위해서 책을 덮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을 억지로 참아가면서 몇 시간 안에 이 책을 독파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 것은 참 미욱한 짓입니다.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책과의 만남, 그 글을 쓴 저자와의 소통, 또 책을 읽는 나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줄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무엇을 위해서 책을 읽는가 생각해봅니다. 독서 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 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그 긴 시간인 것입니다. p.58


 또한 서로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진화심리학에 흥미가 있으니까 그에 관한 책 열권을 두고 읽으면 진화심리학을 체계적으로 파고들어 정말 좋을 것 같잖아요. 저의 경험으로는 그것보다 진화심리학과 역사에 관한 책, 지리에 관한 책을 동시에 읽으면 그것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데 그게 뇌에 자극을 주기에 더 좋은 것 같습니다.  p.64


훌륭한 책은 당연하게도 모든 페이지가 훌륭합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고를 때 마지막(책을 고를 때 먼저 서문을 읽어봄, 다음으로 차례를 봄 그리고 마지막으로를 이야기함.)으로 3분의 2쯤 되는 페이지를 펼쳐봅니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를 읽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시선이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잘 읽히거든요. 집중력도 높아지고요. 물론 앞에서부터 읽어온 것은 아니니까 그 페이지의 내용을 명확히는 잘 모르겠지요. 그래도 집중해서 한 페이지만 보면 그 책이 나한테 맞는지, 좋은 책인지, 잘 쓴 책인지 알 수 있습니다.

................................

왜 하필이면 3분의 2 지점을 보는 거냐면, 저자의 힘이 가장 떨어질 때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무슨 책이든 시작과 끝은 대부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책을 낼 때 그렇습니다. 원고를 배열할 때 잘 쓴 걸 아에 둡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쪽부터 읽어나갈 테니까요. 한편 맨 뒤부터 슬쩍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맨 뒤에 넣죠. 바로 그래서 3분의 2쯤을 읽으면 저자의 약한 급소를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하니까 그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p.76-77



책을 읽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서 체험 자체가 기본적으로 고독한 행위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못하는 것이 바로 그 고독한 행위인데 일삼아서라도 혼자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요.

 한 사람이 책 한권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의 주제 아래 자신의 지적인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 투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어설퍼도 그것에 들어가는 저자의 노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가 만들어낸 지적인 세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세계와 통째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경험입니다. p.79


우리는 일반적으로 책을 내가 습득해야 할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내용이나 생각이 다운로드 되듯 나에게 그대로 옮겨지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그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입니다. p.80


경험해보면, 목적 독서는 지쳐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서는 쾌락을 못 느끼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얻어지는 부산물, 결과를 겨냥하고 책을 읽게 되면 독서를 '견디게' 되거든요. 힘든데, 다 읽고 나면 '한 권 읽었다'에 그치는 거죠. 책이라는 것은 우회로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자꾸 얘기하는 건데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책을 읽으면 지식이 늘고, 화술도 늘고, 글도 잘 쓸 수 있고.... 저는 이 모든 게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 주제도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는 것도 있고 정보라는 것도 있는 거거든요. 굳이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질문을 주는 책들이 더 좋은 책들이죠. 그렇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제대로 질문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책이 거기 있기 때문에 읽는 거예요. 재미있어서 읽는데, 읽다보면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는 거죠.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뭐예요?' 묻는다고요.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99퍼센트의 창작자는 어떤 주제를 말하기 위해 영화를 찍지 않아요. 그냥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로 찍다 보면 거기에 주제도 있고, 질문도 던지고, 여백도 있고, 성찰도 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단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끌어아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보면 책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해준다는 거죠. 아주 세세한 질문이기도 하고, 아주 큰 질문이기도 한데, '이 길이 옳은가'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해 책이 답을 주지 않지만, 일종의 방향성이나 지향성 같은 걸 주는 거죠. 그런 것은 다른 어떤 매체도 갖고 있지 않은, 책이 갖고 있는 자기 반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p.91-92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독서력'이라는게 있다고 쳐보세요. 분명히 독서력은 있어요. 그런데 책을 읽는 초반 단계, 그러니까 아직 독서력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단계에서 나만의 판단 기준을 갖고, 저자의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그러면서 자기만의 확고한 생각을 갖고.... 그런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저자라는 사람은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오래 생각을 한 거죠.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것들로만 거른 것들이 책으로 나오는데 그 책 한 권 후루룩 본 사람이 한 번에 비판할 논점을 꿰뚫어보는 것은 독서력의 초반에는 불가능 하죠. 초반에 비판적 독서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초반에는 좋은 책을 '골라 읽기'가 필요하죠.

그 다음에, 비판을 하려고 하지 말고 요약을 하려고 하라는 거예요. 초반에는 그게 중요해요. 비판은 고차원적인 지적 행위인데, 그 단계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독서력이 쌓여야 하거든요. 초반에는 읽고 나서 요약하기도 어려워요. 소설 읽고 줄거리 요약해보면 어렵잖아요.....

그래서 초반에는 요약만 제대로 해도 굉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요약을 한다는 것은 그 책의 핵심을 간추린다는 얘기거든요. 그리고 구조를 파악한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내용을 제대로 요약하기가 중요하죠. 이런 경험이 어느 정도가 쌓이면 비판적인 판단 기준이 나오죠.

제 생각에 그런 비판적인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와 토론을 하는 거예요. p.109-110


많은 사람들이 책 읽은 뒤에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는데 일단 기억이 안 나는게 당연하고, 두번째는 훈련이 안 되어서 그래요. 뇌가 요약의 형태로 기억하니까 훈련이 되어 있다면 당연히 더 잘 기억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줄거리 요약을 잘하면 그 사람은 나중에 더 많은 것을 더 잘 기억하게 될 거예요. p.116


이 이야기인즉슨, 강제성이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손상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독서에 대해 누차 하는 이야기는 독서의 자발성과 재미인 거예요. 재미를 못 느끼는데 타고난 엄청난 성실성으로 1만 권의 책을 읽었다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재미예요. 몸과 정신에 덜 좋은 것일수록 재미있어져요. 그게 무엇이든. 대표적으로 게임이 그렇죠. 어떤 것은 수백번을 해봐야 비로소 재미가 생기는데, 한번 생기면 그게 평생을 가는게 있단 말이죠. 어느 단계까지만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에 책만큼 재미있는게 없어요. 책만큼 안 지겨운게 없고요. p.136


책을 읽는 진정한 가치를 좀 다르게 표현하면, 책은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거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읽을 때 저자의 세계 전체와 상대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독서행위의 정말 중요한 가치는 '이 사람이 한 권의 책에서 구현해낸 엄청한 세계를 내가 어떻게 빨리 습득하느냐'가 아니죠. '이 책은 저렇게 말하는데 나는 이렇지'하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핵심이 아니죠. 그 둘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두 세계의 사이의 교직에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기 성찰과 반성을 위해서라는 말은 부분적으로 맞지만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깊은 방식일 수 있지만 그 역시 핵심은 아닌 것같아요. 핵심은 그 둘 사이 어디에 있다는 거죠. 그러면 둘 사이에서 만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을 함께 흘려 보내는 식으로 만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한다면 좋은 삶은 뭐겠어요. 시간을 흘려보내는 삶,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잘 선택하는 삶, 그것이 좋은 삶이잖아요. 그래서 앞에서 말한 습관이라는 것도 시간을 경영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면,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검증된, 유쾌한, 훌륭한 방식 중 하나가 책 읽기라는 거죠.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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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단색의 소라색(?)이 책의 제목을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게 한다.

제목은 무언가 무게 있으면서도 진중함이 느껴진다.


요즘 말로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속해있는 가정과 그 외의 모임 그리고 내 내면에서 나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그 말들은 나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칫 과하거나 부족해서 잘 전달이 안되거나 오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은 후회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성격도 소심한 탓에 그것들에 대한 묵상(?)이 나도 모르게 깊이 되는지라 괴로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적도 적지 않았다.

말에 대해 여러모로 곱씹어보기도 하고, 안타까워 하면서 후회하던 중에 발견하게 된 책이었다.


지난 <언어의 온도>라는 책으로 따뜻하면서도 세심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이기주 작가님의 두번째 책!


인용된 이야기, 저자의 사색이 마음 깊이 다가와 나도 모르게 책을 읽는 손이 빨라지는 경우가 있지만

저자가 이야기의 말을 기억하며, 서서히 브레이크로 내 속도를 정돈하며 단어를 곱씹었던 시간이었다.


한권의 책은 수십만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인지도 모릅니다. <말의 품격>이라는 숲을 단숨에 내달리기 보다,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듯이 찬찬히 거닐었으면 합니다. <일러두기 中>

어쩜 말에 대한 그의 깊은 사색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다듬고 갈아 어여쁘게 표현했을까? 감탄이 절로 난다.

단순히 한번의 번뜩이는 생각이 아닌 여러 번 곱씹고 되새긴 생각이 만들어 낸 글들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위에서도 말했지만 정말이지 혼자 있을 땐 말에 관해서 많이 생각했다.


'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왜 나는 그때 이렇게 대처하지 못하고 바보같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을까?'

'그때 주책스럽게 그런 말을 그 상황에서 한거야?'


이러한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물어 감정이 격화되거나 분노로 옮겨져서 걷잡을 수 없이 괴로움으로 치닫게 했다.

이러한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다.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내가 만든 허황된 것들일 수 있다라고 토닥이지만, 다시 돌아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납득하지 못한다듯한 절망과 서운함과 여러 감정이 나를 휩싸기도 한다.

어쩔 땐 생각관리, 간수를 제대로 못하는가 싶어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러할 때!

이 책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나의 마음은 '말에 베인 상처'라는 몇 단어의 조합으로 위로가 되었다. 말에는 그러한 위력이 있고, 그러한 말의 힘으로 상처가 됨이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며, 상처로 인해 속이 욱씬거리다가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그리고 치유되는 상쾌한 느낌까지 갖게한다. 


그러다가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단어는 와타나베 준이치(<실낙원>의 저자)가 말한 '둔감력'이라나 단어였다.

둔감이란 단어는 평소에 정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단어다. 선호하지 않는 단어다. 둔감이란 단어를 개인에게 사용했을 때 기분 좋을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들을 복원하고 토닥이는데 우리에게 바로 이 '둔감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게 딱맞는 만능지우개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마지막의 말 '그러한 둔감력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감정으로 혼란으로 잔뜩 흐트러진 내 정신을 바짝 세워 일으켜주는 듯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여기에서 끝나지만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는 말은 다시끔 우리가 보지 못한 말의 새로운 위력을 보게 해 준다. 방향성이 아까와는 다르다.

내가 받은 말들로 인해 그것을 보듬어가고 복원하는 과정이었던 것과는 다르다.

바로 우리가 들었던 말은 어디에서 온걸까?

우리가 받은 말에 대해 과연 상대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생각에 다시 빠지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이 다 유익하고 선한 말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우리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알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그 말들이 상대와 나의 입과 귀를 거쳐서 나한테 돌아온 것은 아닐지 정말이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면서 말은 곧 그 사람의 인품이고 성품이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는 매사 신중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그 사람처럼 꾸미거나 우리의 외모를 꾸민다고 해서 우리의 인품이 또한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남을 속이려고 했다가 결국 내가 속았다. 결국 나는 드러난다고 한다는 말이 충격적이다!

그것들이 돌고 도는 인생이 바로 삶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흘려버리는 말은 그렇게 우리와 상대의 오감과 심령에서 돌고 돈다는 것을 생각할 떄 정말 삶이 새롭게 보여진다. 그리고 그간 나의 행동과 말들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모든 관계를 청산해야하나 하는 정말 부끄러운 생각도 했다.

그게 모자란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에너지가 그쪽으로 과다하게 쓰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일까??

그런 생각에 그냥 위의 생각은 한켠으로 치우다 꺼내다 하기만을 반복했다.


그러한 고민을 갖고 읽은 이책에서

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시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의 표현대로 꽝광 얼었던 것이 움츠러든다고 결코 녹아내릴 수 없다.

움켜쥐었던 자세를 다시 흔들어 펴고 일으켜서 걸음을 내딛어야 녹아내림도 경험하고 다시 오는 봄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사용한 봄과 관련한 비유는 정말이지 평범하고 소소한 자연에서 진리로움을 이끌어낸 상당히 놀라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이 문장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정리함;;)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의 감정도 그 빠른 속도에 따라서 여기저기 밀치고 흘러가는 듯하다.

특히 말에 있어서 보이는 듯 안보이게 함께 변화에 흘러가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잠시 우리를 되돌아 보면 어떨까?

토닥이며 그리고 힘을 내라는 너무도 따사롭고도 섬세하게 힘을 주는 이 책을 읽어보기 위해 잠시 쉬어볼 것을 권한다. 

 

 

쉼이 필요한 것은 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그럴 싸한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게 대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숙성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 p.86


평소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좋은 이들이 많지만, 인간에 대한 배려를 몸과 마음에서 깨끗이 지운 채 분노와 악의로 빚어진 언어를 날카롭게 휘두르는 일들도 더러 본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문장에 마음이 베일 때면, 누군가에게 나도 저런 말을 했었던가 하고 되짚어보면서 상대방의 입술을 은밀하게 바라본다.

.......................................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말과 글과 숨결이 지나간 흔적을, 그리고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는 건 아닌지를,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뾰족한 무기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p.103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칼에 베인 상처는 바로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숨막히는 세상이다. 정제되지 않은 예리한 말의 파편이 여기저기서 튀어 올라 우리의 마음을 긁고 할퀸다. 이같이 난잡한 세상에서 허덕지덕 힘겹게 버티다 보면 헷갈리는 게 있다. 날카로운 언어의 창이 우리를 겨눌 때 촉수를 곤두세우며 예민하게 대응해야할까, 아니면 외부적 자극에 둔감하게 반응하며 무덤덤하게 임해야 할까.

소설 <실낙원>의 저자로 잘 알려진 와타나베 준이치는 이런 고민에 휩싸인 이들에게 "둔감력(鈍感力)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와타나베 준이치는 둔한 감정과 감각이라는 뜻의 '둔감鈍感'에 힘을 뜻하는 역 力자를 붙인 '둔감력'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둔감력은 무신경이 아닌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p.106-107


둔감력은 좌절감을 극복하는 마음의 근력 또는 힘을 의미하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같은 단어와 어감이 묘하게 겹쳐진다.

타인의 말에 쉽게 낙담하지 않고 가벼운 질책에 좌절하지 않으며 ㅏ자신이 고수하는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힘,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바로 둔감력이다. p.108


나는 글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좌우봉원 左右逢原'이라는 말을 가슴에 아로새긴다.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건과 현상 모두가 학문 수양의 원천이 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삼라만상 모두가 공부의 자원이다. 진리와 이치를 먼 데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주변을 진득하게 응시하면 어느 순간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p.117


모든 힘은 밖으로 향하는 동시에 안으로도 작용하는 법이다.

말의 힘도 그렇다. 말과 문장이 지닌 무게와 힘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허다하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되돌아온다.


일본의 심리학자 시부야 쇼조에 따르면, 타인을 깎아내리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살마은 칭찬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상대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상대방을 뒷담화로 내리찍어 자기 수준으로 격하시켜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p.126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 성대중이 당대의 풍속을 엮은 잡록집인 <청성잡기>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내부족자 기사번 심무주자 기사황 內不足者 基辭煩 心無主者 基辭荒"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p.137


사람과 말의 본질도 매일반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하고 감추려 해도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은 언젠가 드러나고 만다.

본성과 본질, 진심 같은 것은 다른 것과 잘 뒤섞이지 않는다. 쉽게 으깨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진실한 것은 세월의 풍화와 침식을 견뎌낸다. p.148-149


타인을 향해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는 만인이 고민하는 숙제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혹자는 누군가의 화법과 말투를 무작정 따라 하다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복기復碁하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히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p.153


인생은 작은 오해와 인연을 맺거나 풀어가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다만 인생이라는 강은 단번에 건너뛸 수 없다. 사귐도 그렇다. 크고 작은 돌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씩 밟아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차근차근 건너가야 한다.

삶과 사람 앞에서 디딜 곳이 없다고 조급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인생과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p.170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수양서인 <사소절 士小節>에서 성인이 알아둬야 할 행실과 언어생활에 대해 소상하게 적었다.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마음을 짓눌러야 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해로움이 따르게 될 텐데,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176


"당신 멋져!"

몇 해전 송년회 자리에서 접한 건배사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당신이 멋있다"는 겉뜻을 벗겨내면 "당당하게, 신나게 살고, 멋지게 져주자"는 속뜻이 드러난다. p.182


편견의 감옥이 높고 넓을수록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상대의 생각을 교정하려 든다.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과 진실을 본인이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은 편견의 감옥 바깥쪽에 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p.192


사람의 마음에는 저마다 강이 흐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말이 우리의 귀로 들어오는 순간 말은 마음의 강물에 실려 감정의 밑바닥까지 떠내려온다. p.203


타자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은 교황이 남긴 몇몇 어록에 진하게 배어 있다. 언론과 가진 첫 공식인터뷰에서는 "이혼과 낙태 문제에 대한 교회의 공식 입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역할입니다."라고 했다. p.229


이른 봄에 골목이나 처마 밑을 지나다 보면 희끄무레한 잔설이 쌓여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연의 섭리가 그렇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 얼음이 저절로 녹을 리 없다. 빛을 쫴야 겨우내 언 땅이 풀린다.

사람 감정도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따스한 햇볕 아래 서 있을 대 삶의 비애와 슬픔을 말려버릴 수 있다. 그떄 비로소 시들한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꽁꽁 얼어붙은 가슴도 녹아내린다.

봄기운이 바람에 실려온다 싶으면 컴컴한 곳에 눌러 앉아 있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을 솟구쳐서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삶의 바깥쪽에서 서성이지 말고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런 것처럼 광장으로, 볕이 드는 곳으로, 삶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p.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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