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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나는 저자를 한 책읽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의 시크한 듯한 표정과 "~하지 않습니까?"라는 말투에서 솔직하고 직설적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매번 그녀가 패널로 나오는 그 코너를 나는 참 좋아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뭔가 적지 않은 책을 접한 사람인듯한 느낌, 그리고 평범하거나 대중적이지만은 않는 듯한 책들의 소개는 그녀가 책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배우고 싶고 궁금한 마음에 늘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코너를 접했다.
왠지 나와는 아주 다른 성격이어보일 뿐 아니라 나와는 정반대인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갖은 것 같고, 무언가를 솔직히 대변해 주는 느낌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여행이라는 주제보다는 나는 그냥 저자만 보고 그녀가 쓴 글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책을 이제서야 발견했다.
여행서를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여행서라면 무언가 포인트가 있다.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혼자 혹은 어떤 특별한 이와 떠난 여행, 여행지, 특이한 방식의 여행, 적게 소비된 여행, 여행지에서 발견하는 예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독자들에게 여행에 도움을 주거나 색다른 것들을 보이고자 하는 목적이 반드시 여행서에 있다.
그런 것들과 이 책은 난 구별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뭔가 색다르게 튀어보이진 않지만 또 다른 여행서 같지는 않다.
구성에 있어서는 일반 여행서와는 분명히 다르다.
어쩌면 그게 특이하고 저자만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게 내세우는 여행지는 없다. 혼자 다니는 여행을 저자는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내세울 거리가 못된다. 그녀는 자주 갔던 곳을 계속 탐색하고 음미하며 다닌다지만 딱히 독자들에게 권하는 여행방식은 아니다. 많은 여행을 적은 비용으로 다녔다고도 말하지만 그 방식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은 자신의 많은 여행과 여러 일상이 나무의 가지와 같이 연결되어 있다.
여행이라는 큰 나무에 여러가지 주제가 연결되어서 그녀의 입담을 통해 이야기 된다.
이 책은 여행을 간접경험하게 해주는 책은 아니다.
여행에 대한 도움을 주는 책도 아니다.
책의 제목처럼 시간만 나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갔던 그녀답게 일상을 여행을 통해서 보내고, 여행에서 일상을 연결한 책이다.
책 표지에서 '말하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시간'이 딱 이 책을 말해주고 있는데,
저자 뿐 아니라 책 표지 또한 그녀와 같이 솔직하고 직설적이게 이 책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참 그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솔직담백한 여행과 연결된 일상의 이야기는 너무 솔직해서 아는 언니와 수다떨듯이 편하게 깔깔거리는 느낌이다.
독자가 누가 될지도 모르는데, 여성의 생리이야기를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하질 않나
에딘버러의 날씨를 이야기할 때 너무 추워서 설사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이보다 솔직하면서 감이 오는 표현이 있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같은 여자여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여자에게 여행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여행을 대하는 여자들의 태도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남자와 비교하여 여행을 경험하는 여자들의 속사정과 환경은 그럴 듯하며, 실제로 나같아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여자만이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다시한번 솔직하고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필담(? 손담?)이 매력있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을 위한 실제적인 도움이 그다지 되지는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간 잊고 살았던 여행의 욕구에 다시한번 불을 지피게 되었다. 짧막하게 다룬 그녀의 여행내용이 많이 자극이 되었던걸까?
아니..그녀가 작게 나마 여행지에서 느끼고 경험한 그 이야기들이 그다지 괴리가 느껴지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익숙하고 친밀하게 다가와서가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결혼 전에는 혼자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결혼하지 않았다면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여행사나 대중교통비로 내놓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휴일이 생길 때마다 여행지를 찾아 다니고 혼자 누비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국내를 다니기 시작할 즈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혼자만의 여행은 쫑이 났지만 말이다.
그 당시 혼자다니는 걸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낯설어진 지금이지만, 그래서인지 그녀의 혼자 여행이 내겐 친숙하고 지금은 그리워하고 아쉬움을 남기는 가운데 이렇게 나마 책으로 대체적인 경험을 하니 이 책이 내게는 그렇게 뜻밖의 기쁨을 준 것이 되었다.
마지막이다.
거창한 여행이, 화려한 여행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마 내가 아닌 남을 위한 보이기 위한 여행이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또한 저자 자신의 여행을 이야기 하며 우리에게도 자신에게 맞는 여행을 찾아볼 것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무언가를 찾고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하는 여행을 소박하더라도 다녀오고, 그 여행을 통해 또 하나의 일상을 발견하는 것 ... 그냥 떠나는 기쁨으로 떠나는 것...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그 어디가 어디일지라도 떠나는 여행...
아!!! 나도 가고 싶다~ ^^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 기도문 中 p.14
여행이야말로 우아하게 가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집에서 가난한 것보다는, 여행지에서 가난하면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있다는 자위라도 할 수 있으니까. 돈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나면 정말 뭔가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게 뭔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정신승리가 따로 없다. p.33
하지만 그때 그렇게 놀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서른 초반의 삶이 딱히 윤택해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런 철없음이 더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많이 누리는 게 아니라 가진 걸 최선을 다해 누릴 기운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남들 보라고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이렇게 나이를 먹는다. p.79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혼자 여행하는 건 꿈도 못 꾸겠다고. 그 시절이 그립다는 뜻이기도 하고, 배우자와 아이(들)가 함께하는 여행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냥, 동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게 전부다. p.107
가지 못한 장소를 글로 경험하고 상상하는 것은, 인간이 상상력을 지닌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가본 곳보다 못 가본 곳이 더 많은채 죽을 것이다. 하지만 가본 곳보다 읽어본 곳이 더 많기는 하겠지. 안 가본 곳에 대해 읽고 상상하는 법을, 나는 외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p.118
일본에서의 미니멀리즘이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촉발된 움직임이라면, 한국에서의 미니멀리즘은 저소득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사고 싶은 만큼 사보니 안 사도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과, 원하는 만큼 사본 적이 없지만 그래봐야 부질없다고 배운 뒤 일단 아끼고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하지 않을 자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보니 생각의 깊이란 내 집 침실에서도 얻을 수 있더라 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과, 애초에 여행 가도 별것 없으니 안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할 자유를 누린 뒤에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자유를 충족시킨 뒤에야 일하지 않을 자유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할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하지 않을 자유'를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해보니 별것 없더라"와 "해도 별것 없대"는 다르다. 여건이 된다면, 결론을 내기 위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하기를 권한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고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내안으로 여행하기'를 잘 하려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뭔지부터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다못해 여행을 싫어한다는 사실도, 여행을 해봐야 알 수 있다. 인내와 금기는 엉뚱한 판타지만 키우더라. p.156
미켈란젤로는 이 <피에타>를 정면에서 보는 인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위에서 굽어보시는 하느님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명. 미켈란젤로의 의중을 완벽히 알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위에서 본 <피에타>는 정면에서 본 <피에타>와 다르다. 위에서 보는 순간, 그냥,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p.205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다짜고짜 좋아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먹는 순간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신의 음성이 귓가에 울릴 것 같지만, 그건 음식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더러, 맛을 음미하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지적인 쾌락이다. 미각은 다른 많은 감각처럼 훈련할수록 더 성취도가 높아진다. 미술이나 음악, 소설 같은 예술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법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듯 말이다.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