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 전 아마 2012년 쯤부터 직장인인 나의 삶에 소소한 기쁨이 바로 토요일에 영화관련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었다.

K 본부와 S 본부에서 약간의 시간차로 진행해서 한 프로를 보고 곧 바로 다른 본부의 프로로 갈아타기 식으로 즐겨봤었다.

그 중 한 프로를 보는 이유가 이 책의 저자와 김태훈 칼럼리스트가 영화에 대해서 평론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를 소개해주거나 딱딱하게 영화의 의미를 전해주는 것과 달리 그가 진행하는 코너는 영화이야기와 더불어 영화에 내포하는 것을 소개하는데 그게 꽤 설득력있게 다가왔고, 그것들을 근거하는 뒷이야기들도 쏠쏠히 있어서 정말 개성있고 특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가 빨간 책방이라는 프로의 DJ라는 걸 얼핏 알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독서법을 주제로 한 책을 그가 냈다는데 왠지 모를 반가움과 기대감이 들어 이 책을 바로 찾아 읽어보았다.


독서와 관련한 책을 읽는걸 나는 좋아한다. 독서에 대한 기대감은 늘 갖고 있지만, 독서관련한 책을 읽으면 도전이 될 뿐 아니라 그것이 내 독서생활에 박차를 가하는 동력이 되어 내 삶에 생동감을 주는 것 같아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보는 책들 중에 이 책은 그동안의 책들과는 다르다.


일단 이 책은 책의 장점에 대해 판매영업하는 사람처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물론 주제가, 말하려는 포인트가 책마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태까지 내가 봤던 책들은 저마다 독서의 장점을 거의 신봉하는 수준처럼 제시하곤 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책만큼 질리지 않는 것을 찾기 힘들고, 한번 읽는 매력에 빠지면 책만큼 재밌는게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표현은 담백하고 솔직하게 느껴진다. 어느 과장이나 화려한 표현없이 책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하는 점에서 참 좋았다.


저자는 자신은 독서방법과 관련한 것들을 알지 못했고, 수십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독서방식을 터득했다며 그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방식은 다른 책에서도 본 것과 유사한 면도 있지만, 다르게 신선하고 독특한 면도 있다. 예를 들면, 나만의 서재, 나만의 책을 읽는 전당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가 독서하는 공간 중 가장 좋아하고 독서가 잘 되는 공간은 욕조에서라고 한다. 나같으면 책이 젖어버리면 어쩌지 싶어서 시도하지 못할 방법인데, 나름대로 책을 안 젖게 하게 할수 있다고 하니 그 공간에서의 독서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또한, 좋은 책, 훌륭한 책을 찾기 위한 방법도 공유하는데 책의 2/3 지점을 펴서 읽어보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책을 고를 때는 목차나 혹은 서문을 보고 고르는데 이 방법은 듣도보도 못한 놀라운 방법이어서 꼭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의 독서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참 깊고도 설득력이 있다. 자신이 생각한 것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따라 그리고 근거를 바탕으로 독서에 관한 자신만의 관점을 제시하는데 바로 이러한 면이 독서와 관련된 책들에서 확실히 구분되는 면이라 볼 수 있겠다.

우리 남편의 말에 따르면 독서를 하는 것은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여행?)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생각을 따라 책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하는 독서에 대해서 그의 생각을 따라가는 건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한 흐름을 따라가는 내내 즐겁다.


사실 나 자신은 절대로 사색적이지 않고, 생각하는 것에 서투르며 논리적이지 않다. 그런 나의 생각을 따라가면 늘 어느 시점에서 뭉뚱그려지거나 사라지는데, 이렇게 독서를 하면서 이런 저자의 생각을 천천히 따라가는 것에서 책의 매력을 느끼고 묘미를 알아간다. 나라면 할 수 없는 생각들을 작가를 통해서 함께 해본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2부에서는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의 패널로 매주 등장하는 이다혜 기자와 질문, 대답이 오간다. 기자의 날카로움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갖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거침없이 질문해주어 읽으면서 독서에 관련하여 궁금하던 것들이 세세히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또한, 질문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있는 인터뷰는 한쪽에 편향된 일방적이거나 질문이 상투적이 되기 쉽다. 그런데 이 경우엔 둘다 책에 관해서라면 그 애정과 관심이 상당한 분들이어서 질문도 답변도 내용이 탄탄하고 알찬 것이 흥미롭다.


꼭 독서법에 대해서 알고 싶은게 아니더라도 책읽기에 관련된 생각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면 재미있게 볼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그의 생각을 따라 그가 이야기하는 그만의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책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담담하고 편하게 즐기는 독서로 그의 가이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 또한 500권정도 그의 추천도서 목록도 꼭 한번 보고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추천도서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독서를 찾아가는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추천도서관련 질문을 너무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고 독자들 또한 그의 생각과는 별도로 상당히! 궁금해 할 것이기 때문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즐독하세요 :)


**아래 인용 쓰다보니 책을 다 베낀듯.... 죄송합니다. 너무 좋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그 중요성도 높아집니다.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 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 교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문성도 가질 수 없죠. 사람들은 대체로 깊어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깊이를 갖추기 위한 넓이를 너무 등한시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국경과 시간적 제약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현대에는 넓이에 주목하는 게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넓이를 갖추는 데 굉장히 적합한 활동이 바로 독서입니다. p.27


왜 문학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두 가지 때문이라고 말해요. 하나는 인간이 한번밖에 못 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천 번 만 번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한 번밖에 살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인생에서의 모든 것은 시연없이 무대에 올라가서 딱 한 번 시행하는 연극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타인이라면 다양한 상황과 특정한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주고 감정을 이입하게 해줍니다.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그 한계를 좀더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설정 속에서 인식하게 하고 고민을 숙고하게 만들죠.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직접적인 경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직접적인 경험보다 간접적인 경험이 더 핵심을 보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p.29-30


책을 빨리 읽어버리려면 중간에 덮으면 안 되겠지요. 그래야 책 하누건을 다 읽는 속도를 높일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책 읽는 중간중간에 잠시 멈추는 것, 그것도 독서 행위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좋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것을 넓혀나가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 소화하기 위해서 책을 덮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을 억지로 참아가면서 몇 시간 안에 이 책을 독파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 것은 참 미욱한 짓입니다.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책과의 만남, 그 글을 쓴 저자와의 소통, 또 책을 읽는 나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며 줄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무엇을 위해서 책을 읽는가 생각해봅니다. 독서 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 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그 긴 시간인 것입니다. p.58


 또한 서로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진화심리학에 흥미가 있으니까 그에 관한 책 열권을 두고 읽으면 진화심리학을 체계적으로 파고들어 정말 좋을 것 같잖아요. 저의 경험으로는 그것보다 진화심리학과 역사에 관한 책, 지리에 관한 책을 동시에 읽으면 그것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데 그게 뇌에 자극을 주기에 더 좋은 것 같습니다.  p.64


훌륭한 책은 당연하게도 모든 페이지가 훌륭합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고를 때 마지막(책을 고를 때 먼저 서문을 읽어봄, 다음으로 차례를 봄 그리고 마지막으로를 이야기함.)으로 3분의 2쯤 되는 페이지를 펼쳐봅니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를 읽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시선이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잘 읽히거든요. 집중력도 높아지고요. 물론 앞에서부터 읽어온 것은 아니니까 그 페이지의 내용을 명확히는 잘 모르겠지요. 그래도 집중해서 한 페이지만 보면 그 책이 나한테 맞는지, 좋은 책인지, 잘 쓴 책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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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3분의 2 지점을 보는 거냐면, 저자의 힘이 가장 떨어질 때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무슨 책이든 시작과 끝은 대부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책을 낼 때 그렇습니다. 원고를 배열할 때 잘 쓴 걸 아에 둡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쪽부터 읽어나갈 테니까요. 한편 맨 뒤부터 슬쩍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맨 뒤에 넣죠. 바로 그래서 3분의 2쯤을 읽으면 저자의 약한 급소를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하니까 그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p.76-77



책을 읽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서 체험 자체가 기본적으로 고독한 행위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못하는 것이 바로 그 고독한 행위인데 일삼아서라도 혼자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요.

 한 사람이 책 한권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의 주제 아래 자신의 지적인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 투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어설퍼도 그것에 들어가는 저자의 노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가 만들어낸 지적인 세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세계와 통째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경험입니다. p.79


우리는 일반적으로 책을 내가 습득해야 할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내용이나 생각이 다운로드 되듯 나에게 그대로 옮겨지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그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입니다. p.80


경험해보면, 목적 독서는 지쳐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서는 쾌락을 못 느끼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얻어지는 부산물, 결과를 겨냥하고 책을 읽게 되면 독서를 '견디게' 되거든요. 힘든데, 다 읽고 나면 '한 권 읽었다'에 그치는 거죠. 책이라는 것은 우회로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자꾸 얘기하는 건데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책을 읽으면 지식이 늘고, 화술도 늘고, 글도 잘 쓸 수 있고.... 저는 이 모든 게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 주제도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는 것도 있고 정보라는 것도 있는 거거든요. 굳이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질문을 주는 책들이 더 좋은 책들이죠. 그렇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제대로 질문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책이 거기 있기 때문에 읽는 거예요. 재미있어서 읽는데, 읽다보면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는 거죠.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뭐예요?' 묻는다고요.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99퍼센트의 창작자는 어떤 주제를 말하기 위해 영화를 찍지 않아요. 그냥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로 찍다 보면 거기에 주제도 있고, 질문도 던지고, 여백도 있고, 성찰도 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단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끌어아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보면 책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해준다는 거죠. 아주 세세한 질문이기도 하고, 아주 큰 질문이기도 한데, '이 길이 옳은가'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해 책이 답을 주지 않지만, 일종의 방향성이나 지향성 같은 걸 주는 거죠. 그런 것은 다른 어떤 매체도 갖고 있지 않은, 책이 갖고 있는 자기 반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p.91-92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독서력'이라는게 있다고 쳐보세요. 분명히 독서력은 있어요. 그런데 책을 읽는 초반 단계, 그러니까 아직 독서력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단계에서 나만의 판단 기준을 갖고, 저자의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그러면서 자기만의 확고한 생각을 갖고.... 그런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저자라는 사람은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오래 생각을 한 거죠.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것들로만 거른 것들이 책으로 나오는데 그 책 한 권 후루룩 본 사람이 한 번에 비판할 논점을 꿰뚫어보는 것은 독서력의 초반에는 불가능 하죠. 초반에 비판적 독서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초반에는 좋은 책을 '골라 읽기'가 필요하죠.

그 다음에, 비판을 하려고 하지 말고 요약을 하려고 하라는 거예요. 초반에는 그게 중요해요. 비판은 고차원적인 지적 행위인데, 그 단계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독서력이 쌓여야 하거든요. 초반에는 읽고 나서 요약하기도 어려워요. 소설 읽고 줄거리 요약해보면 어렵잖아요.....

그래서 초반에는 요약만 제대로 해도 굉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요약을 한다는 것은 그 책의 핵심을 간추린다는 얘기거든요. 그리고 구조를 파악한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내용을 제대로 요약하기가 중요하죠. 이런 경험이 어느 정도가 쌓이면 비판적인 판단 기준이 나오죠.

제 생각에 그런 비판적인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와 토론을 하는 거예요. p.109-110


많은 사람들이 책 읽은 뒤에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는데 일단 기억이 안 나는게 당연하고, 두번째는 훈련이 안 되어서 그래요. 뇌가 요약의 형태로 기억하니까 훈련이 되어 있다면 당연히 더 잘 기억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줄거리 요약을 잘하면 그 사람은 나중에 더 많은 것을 더 잘 기억하게 될 거예요. p.116


이 이야기인즉슨, 강제성이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손상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독서에 대해 누차 하는 이야기는 독서의 자발성과 재미인 거예요. 재미를 못 느끼는데 타고난 엄청난 성실성으로 1만 권의 책을 읽었다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재미예요. 몸과 정신에 덜 좋은 것일수록 재미있어져요. 그게 무엇이든. 대표적으로 게임이 그렇죠. 어떤 것은 수백번을 해봐야 비로소 재미가 생기는데, 한번 생기면 그게 평생을 가는게 있단 말이죠. 어느 단계까지만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에 책만큼 재미있는게 없어요. 책만큼 안 지겨운게 없고요. p.136


책을 읽는 진정한 가치를 좀 다르게 표현하면, 책은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거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읽을 때 저자의 세계 전체와 상대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독서행위의 정말 중요한 가치는 '이 사람이 한 권의 책에서 구현해낸 엄청한 세계를 내가 어떻게 빨리 습득하느냐'가 아니죠. '이 책은 저렇게 말하는데 나는 이렇지'하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핵심이 아니죠. 그 둘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두 세계의 사이의 교직에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기 성찰과 반성을 위해서라는 말은 부분적으로 맞지만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깊은 방식일 수 있지만 그 역시 핵심은 아닌 것같아요. 핵심은 그 둘 사이 어디에 있다는 거죠. 그러면 둘 사이에서 만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을 함께 흘려 보내는 식으로 만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한다면 좋은 삶은 뭐겠어요. 시간을 흘려보내는 삶,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잘 선택하는 삶, 그것이 좋은 삶이잖아요. 그래서 앞에서 말한 습관이라는 것도 시간을 경영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면,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검증된, 유쾌한, 훌륭한 방식 중 하나가 책 읽기라는 거죠.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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