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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얼마전 그의 소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의 열기가 아직인데, 얼마 안되서 신작이 나왔다.
70의 고령, 암투병한 모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필체에는 힘이 있고, 여유가 있고, 젊음이 있다.
이 책은 그의 에세이로 글쓰는 작가로써, 그간 암과 투병하던 삶을 통해 겪고 있는 외로움, 사랑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가 쓰여있다.
책을 통해 그의 삶과 그리고 그의 생각, 느낌, 사물에 대한 통찰 등 여러가지를 엿볼 수 있다.
구성은 아래와 같다.
그냥 봐서는 저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책에서 그 흔한 서문이나 추천사, 후기 등도 전혀 없다.
그냥 그 자신과 그 글을 함께 덤덤히 함께 해주는 정태련 화가의 그림이 있다.
오히려 이런 단순하고, 소박한, 깔끔한 구성에도 작가의 이야기와 생각이 숨겨있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 읽어봤다.
이 작가님의 책을....
그래서 스타일도, 취향도, 색깔도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산문을 좋아한다.
그림이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글로 가득한 책을 좋아한다.
그냥 취향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내 취향을 뒤집어 놓았다.
이 책을 받아 한숨에 들이키듯 읽어나고서 나는 한숨을 후우~ 내쉬었다.
중간중간 쉬는 숨을 들이고, 내쉬고 했지만,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의 기분으로 이 책과 함께 정지되었다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방탈출? ㅋㅋㅋ
이 책은 짧다.
그래서 좋기도 하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짧지만 그 안에 정말 딱 핵심, 작가는 말하려는 그 알맹이만 골라내어 잘 배열해내어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잘 전달했고, 나는 잘 전달받았다.
산만하지 않고, 두리뭉실하지 않고, 뱅뱅 돌리지 않는다.
아! 좋다!
문장이 시와 같이 리듬이 있는 듯하다.
숨이 막히게 하거나, 거칠게 몰아가거나 길을 잃게 하거나 어딘가에 올려놓고 우릴 내버려 두지 않는다.
독자와 함께 숨쉬는 느낌이다.
읽기가 참 편하다. 안정적이다. 배려받는 느낌이다.
이 책은 사이다다.
슬그머니 예의바르게 된 나,
슬그머니 말을 돌려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뱅뱅 돌리는 말,
슬그머니 눈치보느라 말하지 못한 나
그런 나의 속을 그가 대신 터뜨려주는 느낌이다.
마지 속이 곪은 꽉찬 여드름을 짜내듯이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편견에서 살짝 뒤로 물러나본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반박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서
'이럴 줄 몰랐지? 요것도 있지롱~'하고 말하듯
우리에게도 조금만 다르게 보는 여유를 갖으라고 하는 듯하다.
저자의 말을
상큼한 것을 배어물었을 때처럼 한 쪽 눈을 찡긋하게 만든다.
그의 표현은 내 가슴의 묵을 뒤집어 섞듯 뭉클한 무언가를 건드린다.
분명, 다른 책들에서도 이렇게 비유를 상징을 사용한 건 맞지만
유독 이외수 작가님의 몇 문장의 표현에서 찌릿하게 만드는 건
그가 좋은 글을 사람을 감동케 하고 읽을 맛이 있어야 한다고 한것처럼
그의 글이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읽는 몇 시간이 다른 것에서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이 작가님의 다른 책들이 궁금하고,
이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넘긴게 후회스럽기도 하고,
(이건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럴수밖에 없었다고 핑계대고 싶음)
몇 가지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에 다시 들어갔다 나온 이 느낌이 또 너무 좋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한, 시야가 탁 트이는 한가을 중턱에서
잠깐 멈추어 이 책을 들어보시길...
이 책을 들고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의 느낌을 정말 추천하고 싶다.
나는 글이나 책이, 읽는 이를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어 깨닫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는 쪽보다는 느끼는 쪽이 더 낫고, 느끼는 쪽보다는 깨닫는 쪽이 더 낫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p.16-17
타고난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타고나지도 않았고, 노력하지도 못했으며, 즐길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괜찮다. 훌륭한 관람객으로 존재하면 된다. p.26
배고픈 이가 밥을 달라고 할 때는
밥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목마른 이가 물을 달라고 할 때는
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창고의 음식을 잔뜩 훔쳐 먹고
뒤룩뒤룩 살이 찐 쥐새끼들이 더 처먹겠다고
지랄발광을 떨며 대면 때려잡는 것이 상책이다.
p.39
항해보다 어렵고 전쟁보다 치열한 인생,
사랑하나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p.57
그러면,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아가 세상을 보다 나은 쪽으로 변모시키는 글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일단 읽는 맛과 감동을 겸비하고 있다.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문자 고문을 끝까지 당해달라는 말과 같다. 대개 감동과 재미를 겸비한 글들은 발효된 진실이 배합되어 있다.p.86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이라고 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겠는가.
진짜 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의 말씀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 비늘만 번쩍거린다고 다 용은 아니다.
p.94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1국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착점을 할 때마다 심리적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과 어떤 경우에도 심리적 동요를 느끼지 못하는 인공지능과의 대결은 인간의 패배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인간이 백전백승을 거두는 방법이 있다. 알파고의 전원 스위치를 꺼 버리는 것이다. 푸헐. p.98
글 쓰는 사람이 지적 혀영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악습은 잘 쓰겠다는 욕심이다. 자신의 능력은 감안하지 않고 청사에 길이 빛날 명작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나 결심을 간직하고 글을 쓰면 결국 감동과는 거리가 먼 문자 노동의 결과물을 양산해 내게 된다. 감동이 없는 글은 죽은 글이다. 그러면 어떤 글이 살아 있는 글인가. 쓰는 이의 진실을 바탕으로 읽는 이의 사랑을 각성시키는 글이 살아있는 글이다. p.116
......나는 그 많은 직업들 중에 왜 하필이면 소설가를 선택했던가.
요즘은 썅칼, 비애감이 얼음물처럼 써늘하게 영혼을 휩싸는 순간들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 p.120
실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실력을 과시하는 일을 즐겁게 생각하고
실력이 탁월한 사람일 수록 실력을 과시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도 수행이요 밥을 먹는 일도 수행이다.
수행을 하러 이 세상에 와서 수행을 마치고 저세상으로 간다.
그렇다면 내 수행의 깊이는 어디쯤 도달해 있을까.
언제나 바보 천치가 부러울 따름이다. p.135
오늘도 할일이 많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위해 할 일보다는 남을 위해 할 일이 태반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면 제일 먼저 스케줄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남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남을 위해 한가지도 할일이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그건 내가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했다는 사실과 동일하니까.
p.143
..... 그러나 일단 일거리를 만나면 오래된 외투처럼 걸치고 있던 나태를 홀가분하게 벗어던진다. 그리고 집요하게 일거리를 물고 늘어진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 일거리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지쳐도 일손을 놓는 경우는 없다. 에너지 충전을 위해 잠깐 휴식을 취할 때도 일거리에서 시선을 떼는 법이 없다. 물론 성취하고 나면 다시 나태 모드로 돌아간다. 일거리를 다 해치운 성취인의 나태는 행복이라는 이름의 방바닥에 깔려 있는 솜이불이다.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혼곤하며 적당히 자유롭고 적당히 방만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성취 이전의 나태를 용납할 수가 없다. 그것은 솜이불이 아니라 가시방석이기 때문이다. p 157
책은
사람을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고 깨닫게 만든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얕은 앎,
얕은 느낌, 얕은 깨달음에 머무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조차 모르게 된다.
책은 우주로 연결된 통로다.
p.186
담 너머로 지나가는 뿔만 보아도 사슴인지 염소인지 아는 사람도 있지만
바닷물을 다 퍼마셔야 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는 것이 다는 아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자주 쓰지만
아는 거에 가려져 진체가 안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깨닮음에 비하면, 안다는 단계는 참으로 부끄러운 단계다.
먼 산머리에 떠 있는 조각구름 한 덩어리,
무슨 거처가 있겠는가.
p.201
출판서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