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결혼 수업
남인숙 지음 / 해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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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수업'에 관련된 책이라?

결혼 전에 결혼에 대해 미리 알면 좋겠지만

정작 결혼식과 회사업무의 분주함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결혼식 이후의 삶에 대한 지식은 무심코 넘겨버렸었다.


'살다보면 알게 되겠지..'

'부딪혀 봐야 알지 책을 읽으면 그때 뿐이야.'


이 책은 한줄로 요약하자면, 결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결혼 생활을 정리한 책이다.

물론 나는 비교적 신랑이 무던한 사람이기도 하고

시댁 또한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긴 해서,

이 책을 읽었다면 오히려 약간 결혼생활에 대해 겁을 먹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 가령 남자에 대해,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미리 읽어두었더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베테랑 기혼자인 선배언니가 결혼에 대해, 그리고 결혼생활에 관해 조언해주는 듯한 책이다. 결혼과 연애에 대해 많은 고민과 경험을 통한 결론 끝에 기록한 책이라는게 느껴졌다. 적절한 비유와 근거를 제시하여 보다 설득력있게 결혼에 이르는 것부터 그 이후의 삶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유머러스한 요소로 '빵'터지기도 했다.


나의 경우 6년차 주부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은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했는지, 남편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적다고 하면 적을 수도 있지만 신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자사람과 여전히 있는 충돌이 있고, 불만이 끊이지 않는 등 답답했던 문제들이 떠오르면서 해결의 실마리 또한 찾을 수도 있어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결혼을 한 사람이어서 연애관련한 챕터보다는 남자라는 사람에 대하여, 가정에 주부로써 어떻게 임해야할지의 자세에 관련된 내용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남자는 자존심이 그의 존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기존의 남편을 생각하며 적용이 되었다.

또한, 우리 나라 남자들만이 갖고 있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 관련해 읽었을 때는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던 남자들의 특성(?)이어서 저자의 탁월한 시각과 통찰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이 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남자에 대해서 알고 나니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니 해결방법이 보일 뿐 아니라 해결의지도 생겼다.


또한, 책을 보면서 저자가 인용하는 책, 인물의 말 등을 볼 때 저자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고민하여 이 분야(?)에 적합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섹스를 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 봐야한다는 내용은 내 가치관과 충돌이 되어 동의할 수 없었다. 또한, 저자는 과거 중매결혼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결혼생활이 대체로 잘 유지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섹스를 해본 경험이 없어도 결혼 생활은 유지 되는데 괜찮다고 보아야 하지 않나? 

물론 시대적인 상황은 다르기에 그와 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또한 속궁합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도 이해는 된다. 저자의 말대로 결혼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과는 결혼까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조금 섣부른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무조건 바꾸라고 변화시키라고 투쟁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사분담에 대해서 정말로 동등한 가사분담에 대해서는 다음 세대로 미루라고 이야기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는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다고 할 때 공평한 가사분담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잘 교육시킴으로 다음 세대에서는 잘 이루어질 것을 희망한다. 남편들과 시어머니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행동들에 대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대해서는 고려해보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발하는 여성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쨋든 나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서 무조건 억울해 하고 분해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책은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 잘 생각하며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이 된다. 또한, 신혼생활이거나 가정에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상대방이 심각한 문제를 가질 경우를 제외한다)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특히 미혼 시절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의 최첨단 사회를 살다가 느닷없이 19세기식 가족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여자들의 삶이 바뀌는 정도로 따지자면 여느 여권 후진국 못지 않다. p.18


자기 자신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살 수 있는 것이 삶의 속성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사람이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는 이 우주 자체가 인간의 안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하지만, 이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우리 여자들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여러 조건들을 조합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p.42


원래 삶이란 그냥 내버려두면 무질서하고 부정적으로 흐르게 되어있으며,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물리적인 힘을 가해야 좋은 방법으로 가기 마련이다. 어느 면에서건 잘 사는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C역시 부모 덕에 저질로 잘 살게 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며, 어머니의 충고는 그 노력의 지표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라면서 보고 배운 바 없이도 좋은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면 부모가 아닌 새로운 지표를 찾으면 된다. p.49


가정을 직장처럼 여기고 내 역할을 찾기로 했다고 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뼈 빠지게 일만 한다면 곤란하다.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성공하고 인정받는 사람은 이름 모를 미담집에 나오듯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일하는'사람이 아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기획 능력, 실적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하는 일을 홍보하고 영업하는 능력, 큰 틀에서 회사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며 자신을 믿고 도와줄 사람을 섭외하는 정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결혼 생활에도 기획, 영업, 정치, 능력은 필요하다. p.54


결혼 생활에 정치와 영업을 적용하지 않는 여자들은 남편에 대한 불만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결국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한다. 그렇다고 남편을 비롯한 가족이 그 수고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듯 그림자처럼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가슴에 한을 쌓아가는 아내 노릇은 그만두어야 한다. 아내인 나나 다른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p.56


결혼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데만 골몰하지만, 진짜 어렵고도 중요한 것은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결혼해서 벽에 부딪힌다면 열린 마음으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이 가리키는 노력의 방향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노력한 여자들만이 '엄마와는 다른 인생'을 산다.

p.157


당신이 결혼한 후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당신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라. 아마 거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p.208


그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해 주기만 하면, 다각도로 그를 배려하려고 신경 쓰지 않아도 수월하게 사랑과 존경을 유지하며 잘 살 수 있다. p.211


나는 내가 생각해도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러나 그 상황이 지나고 나서 단 한 번도, '그때 속 시원히 퍼부었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한 적은 없다. 언제나 '그때 참기를 잘했지'하는 생각을 한다. p.219


남편을 설득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기 때문이라면, 당신이 그 일로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정확히 어떤 일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는지,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야 한다. ... 내가 아는 사장님처럼 "당신이 설거지와 욕실 청소, 음식물 쓰레기만 담당하면 나머지 모든 것은 내가 할게."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보상이라야 별다른 것이 아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당신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과장된 칭찬, 가끔은 그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는 것 등이다. p.223


남자들이 맞벌이하는데도 가사를 자기 일로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책임감이다. 똑같이 바깥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일은 아내의 일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아내의 일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임시적인 것이지만, 자신의 것은 가족을 위해 절대로 그만둘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책임감을 느끼고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는 아내의 일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단순히 일하는 시간만을 비교해서 일률적으로 가사 분담을 강요하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p.225


기본적으로 남자들은 자기 속의 말을 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남자들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딱 두가지 인데, 정말 할말이 없거나 상대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묵한 남자에 대한 환상은 버리기 바란다.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다면 먼저 그에게 화두를 요령 있게 던져주고 그가 하는 말을 정성 들여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아예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춰서, '그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반드시 그의 입을 여는 데 성공할 것이다. p.279


오히려 돈 문제는 며느리들 쪽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할게 아닌가 싶다. 전통적인 생각 때문에 집은 시부모님이 마련해 주는게 당연하다고 생각들 하는데, 요즘 같은 때 '집 한 채'는 당연한 게 결코 아니다. 만약 그들이 여력이 되어 보금자리를 제공해 준다면 정말 고만운 거다. 시부모님이 결혼 때 아파트를 사주었는데 그 유세를 얼마나 하는지 못 견디겠다고 말하는 여자들을 자주 보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아파트 장만할 돈을 당신이 사회에 나가 직접 번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 돈을 벌기 위해 견뎌내야 할 수모에 비하면 부모님의 간섭이나 잔소리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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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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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과 검은 바탕의 장중해보이는 글씨가 그리고 <칼과 혀>란 제목이 절대 가볍지 않을 소설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하다. 무언가 민족적인 느낌과 함께 분위가 어둡고 깊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이런 내용을 암시하는 책표지의 강렬함과는 또 다르게 소개에서 주제가 요리라고 하여 잠시 <식객>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끊임없이 식욕을 자극하고, 요리사가 어떤 마음으로 장렬하게 요리를 하며, 요리를 맛본 이들의 찬사나 통탄의 평가가 나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는 일제강점기 세 나라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시점은 1인칭이지만, 세 사람이 돌아가며 상황과 그 안의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공간의 만주이며, 때는 1945년으로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시점 이후까지이다. 먼저 첸은 뛰어난 중국 광둥의 요리사로 아빠의 도마에서 시작된 자신의 요리사의 운명을 따라간다. 하지만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원했고, 독립운동의 밀정으로 암살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다음으로 첸의 암살목표가 되는 인물인 모리이다. 관동군의 사령관으로 요리와 미륵불상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길순이라는 한국여성이다.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풀려나 첸을 만나게 된다. 청진이 고향이며 독립군인 친오빠와 첸의 영향으로 사령관의 암살에 동참하는 인물이다.

이 소설의 문장의 표현들이 사실 내게는 어렵게 느껴졌다. 워낙 그대로를 말하는 속시원한 표현과 묘사에 익숙한 내게 작가의 뭔가 내포하는 듯한, 예술성있는 문장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표현에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고, 심층있는 감정이 느껴졌다. 문자자체는 적적하고, 푸석하게 느껴지지만, 덕분에 각 인물로부터의 애수, 그리움, 두려움, 무력함 등의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전쟁과 제국주의라는 상황에서 삼국의 인물의 시점을 통해 접근한 것은 참 신선하다.

대체로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무리, 공동체 등의 감정과 상황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제목에서의 '칼'이 바로 모리를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전쟁을 싫어하고 미륵에게 관심이 있었다. 또한, 음식에 관심을 두는 어찌보면 군인이라는 직급과는 안 어울리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면만 본다면 우리네 인간과는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엽기적인 행각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는 점은 그 당시 우리가 분노하는 일본인의 잔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목의 칼과 다른 '혀'는 첸을 말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는 제국주의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있어서 낯선 중국인이다. 물론 중국도 제국주의의 영향과 피해가 있었지만, 조선에 있던 일제치하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국인들의 상황은 익숙하지 않았다. 길순의 오빠처럼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했던 자경단원이었다.  

그런 칼과 혀가 음식이라는 매개체 앞에서 대립하며 맞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은 그 음식을 통해서 그들은 서로의 상황을 자각하게 되고 서로의 아픔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전개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리라는 인물이 다른 군인과 달리 위게와 질서를 철저히 따르는 것도 아니고,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지만은 않은 인물이라는데 있다. 그는 음식을 좋아했고, 미륵보살을 가지고 고향에서 절을 지을 생각을 가진 당시 군인의 의식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일본 군인의 이미지와 동떨어져보이는 모리가 군인으로 나오는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전쟁을 싫어하는 한 실존인물인 일본인 사령관을 모티브로 사용했다고 한다는 점에서 다소 수긍이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첸이 모리의 취향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세 관점에서 그 당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길순은 같은 여자로써 참 측은함을 느꼈던 인물이다. 위안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첸이라는 남자에게 정착한 듯 하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친오빠와 제국주의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첸의 영향에 이용된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녀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기와는 다른 시대의 한 여자였고,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그녀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로써는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파는 것밖에 없다고 스스로도 이야기하고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 포기한 상태이며,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가족이나 개인적인 감정을 감춘 남자들의 모습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길순이란 인물이 참 ... 의문스러웠다.

저자는 한국인이고, 뭔가 인물에 비중을 더욱 두었을 법한데, 그녀는 여자였고, 무력했다.

겉으론 대의를 위한 행동이었지만 오빠나 남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녀는 첸과 모리의 매개역할을 하고 있다. 첸의 그녀였기 때문에 모리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모리에게 그녀가 있었기 때문에 또한 첸의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게 매개역할을 하는 그것과도 비슷하게 보였다.

그런데다가 제국주의의 일본이 우리나라에 행한 가장 잘못하여 강력하게 지적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작가는 짚어가고자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길순을 우리나라의 인물로 설정한 것은 수긍이 간다.

묵직하고 편하지만은 않은 배경이 있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독립심과 민족심만을 자극하는 소설이 아니라, 제국주의 풍토에서 보여지는 다른 나라의 모습과 처한 상황들에 각각 시점을 둔 것은 굉장히 새롭다. 또한, 칼과 혀의 대립 속에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음식의 묘사도 참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쟁은 우리의 일상을 앗아가며 한 개인이나 공동체에 국한되어 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 나라의 상황을 조명함으로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내용 자체보다는 구성과 의미에 더 집중해서 보게 된 책이었다.


한 접시의 요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접시에 담긴 요리사의 진심이다. 모든 일에는 흥하고 망함이 있다. 너희들이 매 순간 중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자들의 힘도 무뎌지는 것이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자신이 오늘 하루 소꼬리를 잘라내는 데 썼던 그 칼이 진정으로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소꼬리 찜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배우자! p.54


아버지는 재료의 눈을 제압하는 것이 요리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재료에 맛과 향취를 입히기 위해서는 재료를 완전히 굴복시켜야 한다고. 재료가 칼 아래 저를 온전히 내어놓을 때 불과 기름, 온갖 양념과 그것에 더해지는 요리사의 손길을 받아들여 또 다른 생명으로 건너가는 거라고, 그렇다! 음식이란 하나의 재료가 다른 재료들과 더해져 빚어낸 하나의 궁극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요리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p .60


나라는 몸은 무엇이며 나라고 믿는 이 생각은 무엇이며 내가 겪었다고 믿는 과거는 무엇이며 나는 어느 인과를 통해 낯선 신경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는 걸까. 내 와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차나무에 앉아 아침 이슬을 매달고 지리하게 먹이를 기다리는 염낭거미의 반에 반만큼이나 삶은 의미가 있을까? 온종일 먹이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우리의 삶은 간절할까. 거창한 명분을 가진 자들일 수록 모양과 크기에 집착하는 법이잖아. 종종 삶의 가장 진실한 알갱이를 잃어버리기도 해. p 138


혀가 잘린 뒤 나는 비로소 혀의 위대함을 재발견하고 있다. 세상 만물이 지닌 고유의 빛깔은 혀를 만날 때 비로소 제 존재를 찾는다. 혀는 자신의 손바닥에 와 닿는 사물을 그것이 무엇이든 장난꾸러기처럼 뒤집고 툭툭 치고 깊숙이 찔러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충분히 평가가 내려지면 그제야 달콤하거나 쓰거나 매운 느낌들을 뇌로 전달한다. 물론 그 과정들은 인간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혀가 맛을 느끼는게 아니라 음식이 와서 마구 보채는 것이다. 혀는 그 자리에 소처럼 누워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특유의 탐욕을 낼름 숨긴 채. p.202


마술사와 요리사 모두 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다만 마술사는 상대의 눈을 속이지만 요리사는 상대의 혀를 속여야 해. 맛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물은 그대로 있을 뿐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맛이야. 의미란 공통의 관습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 거고. 유능한 요리사는 그런 개인의 습성, 집단의 습성을 빠르게 간파하여 그들의 혀를 속일 수 있어야 해. 마술사들이 젊은 연인들을 앉혀놓고 모자 속에서 빨간 장미를 뽑아내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맛을 대령하는 거지. 곧 죽어갈 머저리들에게. 응 알겠나?  p239


요리사의 진짜 언어는 혀가 아니라 활활 타는 불꽃이다. 나는 혀의 일부를 잃었지만 불로 내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나의 도마 위에서, 제국주의자들과 겨룬 나의 이야기는 어느 요리도 대신할 수 없는 깊은 맛을, 쓰고 맵고 끈질긴 맛을 풍기게 될 것이다.

p.288


아버지는 싱싱한 요리일수록 맛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주 얘기했다. 그것이 재료 본래의 맛을 간직할 순 있다지만, 요리란 재료 본래의 맛을 살려내는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재료에 소스를 입혀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일이라고.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친 것이 발효시켜 썩힌 음식들이었다. 죽은 오리를 진흙 항아리에 넣어 6개월이나 썩힌 이족 요리를 배우던 날, 나는 아침에 먹은 음식을 죄다 토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비웃었다. 썩어가는 것들일수록 더 깊은 맛을 풍기지. 인생도 그렇다. 너의 무엇이 너를 간절하게 하느냐? 그것이 없다면 요리는 겉치레일 뿐이다. p.304


이제 우리의 내기는 끝이 났다고. 나는 무엇도 요리하지 않았고 당신은 무엇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외로웠을 뿐이라고. 나는 요리를 했고 당신은 접시를 비웠다. 불과 싸우던 나의 시간도, 맵거나 짜거나 달콤하거나 시었을 온갖 요리의 맛들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순가의 고통일 뿐이라고.한 접시의 요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 짧은 순간 나는 잘린 혀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p.318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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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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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부유하지 않다. 그 자체만을 가지고도 책 제목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가난함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중에 내가 구차하고 싶지 않았고, 그 가운데서 내 존재 자체를 존중하며 내 가난을 나와 동일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중에도 우아하게 사는 법이라는 책 제목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나의 현재 가난을 부정하며 앞으로 나는 부유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갖고,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가든 나라면 방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 나는 현재의 상황에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배우겠노라 대답하며 결심했다.


그리고 요즘 방법에 대한 책이 워낙 쏟아지는 출판의 상황에서(번역에서 출판업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방법'이라는 것에 혹하리라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제목을 지은 걸지도...) 일본서적을 많이 발견했는데, 독일 서적은 거의 접하질 않아봐서 궁금했다.

우리와 다소 비슷한 일본인들의 서술이나 전개와 달리 독일서적을 통해 알 수 있는 전개와 구성은 어떤 것일지,, 어떻게 문제에 대해 접근하며 풀어갈 것인지 새로운 관점을 접해보고 싶었다.


이 책은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의 언론인인 저자가 실직의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가문이 가난에 어떻게 대처했으며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 한다. 또한, 그와 더불어 자신이 체득한 가난의 유익과 삶에 있어서의 진정한 것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로써의 통찰을 보여준다. 다소 재치와 유머로 책의 내용을 전개해갈 뿐 아니라 언론인으로써 다방면의 지식과 정보, 인맥을 근거로 자신의 가난에 대한 가치를 피력한다.


소유함, 소비함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단지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올바른 행동이다.

매체와 지인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는 소유에서 오는 행복이란 것은 어쩌면 우리를 다루며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 다른 무비판적인 수용과 행위는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비교할 대상은 끝도 없고, 우리의 욕심 또한 끝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저자는 여러 주제(집, 자동차, 외식, 여행 등)를 통해 자신의 가난함과 연관하여 깨달은 삶에서 진정한 것들을 누리기 위함을 이야기하는데 참 인상적이다. 유행이나 미디어를 쫓는 삶이 아니라 주도적인 주체의식을 가지고 이런 주제들에 접근함으로 자신에게 맞는대로, 자신이 그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고 한다.


특히 '휴가여행이 필요한가' 부분에서는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오히려 조금더 아둔해진다는 학문의 결과로 시작하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휴가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미래의 선구자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려줘야하지 않을까?'라는 마지막 말에서는 여행을 덜하는 사람으로써 신명나는 결론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을 가지 않음을 이렇게라도 정당화 하는 것은 어쩌면 비참할지 모르지만, 여행에서 교통수단이나 숙소가 생겨난 상황이 사실은 현재의 여행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개한 저자의 독특한 접근은새롭게 알게 된 정보이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아둔하지 않게 쇼핑하는 법'에서는 소비에 대한 소비자와 생산자의 심리가 다뤄진다. 다소 씁쓸하기도 하고 소비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다. 우리의 소비는 어떠한 근거와 심리에 기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면서도, 그러기에 우리에게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이 더욱 필요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있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실업급여로 받은 댓가가 인도 조종사의 연봉에 맞먹는다는데...(p.13) 이런 표현은 알길이 없어서 답답했다. 언론인 1만명이 해고가 될 정도면(p.74) 경제적인 위기가 있었다는 건데 그건 언제였고 어떠한 시대적인 상황이 있었던건지 알 수가 없다.(저자가 실직당한 911테러 이후일지, 미국에서의 다른 경제위기사건이 일어난 때인지..) 뭐 읽는 독자의 무지함이 부끄럽게도 밝히는 거지만, -친절하게 숫자를 기대한 건 아니더라도 나같은 독자가 있을 수 있는데- 저자의 개성있는 글을 쓰기 위했음 이라할지라도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정확한 표현이 아쉬웠다.


이 책은 제목처럼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보다는 실제로는 '우아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란 제목이 더 걸맞을 것 같다. 가난이라는 단편적인 상황에 주목하지 않고, 세상에서 일반적이고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때론 비판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때론 거꾸로 바라봄으로 삶을 더욱 유연하고 안정적이며 행복하게 누리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구차하고 찌질해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일 때도 사실 많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거야 남의 시선이다.

어떠한 것이든 우리의 행복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일진데, 어떠한 것이 옳고 그르고, 지혜롭고 아둔하다고 따지기 전에 우리의 행동은 과연 어떠한 판단을 따라 행하여 지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유와 환경과 상황들을 따지기 전에, 우리에게 처해진 가난이란 환경에 대해 어떻게 의연하게 사고하며 대처할지 우리가 어떻게하면 보다 행복할 수 있을지 좀더 본질적이고 진정한 것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가난해지는 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며 그 상황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여유로운 시점이, 그리고 만족하는 삶의 태도에 나는 진심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가 미덕인 잉여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실망을 맛보게 된다. 경제는 점점 더 정교한 세뇌작용을 통해서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주입시키려 한다. 그동안 이런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치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윤택한 삶은 많은 돈이나 물건을 쌓아두는 것과 무관하다. 인간은 오로지 올바른 태도를 통해서만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

p.24


먼저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여기에서 결코, 암묵적으로도, 삶의 쾌락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물론 현재 사회를 휩쓰는 여행 열풍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지 않을까 또는 우리가 '잘 먹었다'고 일컫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즐거운 것일까, 이런 문제들을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쾌적한 삶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쾌적한 삶에 이르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삶의 쾌락은 세계와 하나로 묶이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그렇지 못한 인간은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물질적인 것을 외면하고 모든 쾌락에 등을 돌리고 금욕자가 되는 것은 겁쟁이들이나 엄숙주의자들을 위한 길이다. ... 포기할 수 있는 참된 기술은, 첫째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인식하고, 둘째 그것들을 최대한 많이 갖도록 힘쓰는 능력이다. 포기할 수 있는 기술은 삶의 쾌락을 위한 진정한 전제 조건이다. p.27


진정으로 사치스러운 것은 에르메스나 카데베, 마누팍툼 통신판매 회사에서는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기보다는 황폐하게 만들 뿐인 무익한 유혹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지킬 때에만 풍성한 삶이 가능해진다. 진정으로 부유해지고 싶은 사람은 적어도 일부나마 독자적인 태도를 회복하고자 용기를 내야 하며, 예를 들어 결국 좌절만을 맛보게 하는 소비에 무턱대고 탐닉하는 대신 참된 만족을 주는 것만을 누려야 한다. p.60


우리는 매스컴에서 과대 선전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매스컴에서 석유회사 셸이 후원하는 대규모 해양전시회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매일 권장하면, 너도나도 사실 그 전시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먼저 건전하게 무시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매스컴에서 현재 무엇을 선전하는지 모르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면 적어도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다. 어쨋든 얼마만큼이 '사회적인 통합'기능을 위한 것이고-즉, 오로지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 위한 것'이고- 또 얼마만큼이 실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를 따져서 문화 소비에 임해야 한다. p.142


대중매체와 여론, 이벤트의 악영향에 의식적으로 저항하면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과 흐름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많은 돈을 낭비해가며 아주 긴장되고 획일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와 반대로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돈을 절약하고 자주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규격화되고 동질화된 시대에 사치가 아니겠는가

 문화 쓰레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하나는 전문 지식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빠듯한 자금 사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삶에 무리한 부담을 주는 모든 잡동사니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러면 진실로 애착을 느끼는 일들만이 남는다. p.148


아이들은 선물과 장난감 탐하는 마음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자라면서 힘들게 몸에 익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이 제대로 기쁨을 누리도록 훈련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비결은 원한다고 무조건 모든 걸 사주지 않는 것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부모들이 무리하게 형편을 무시하고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을 마련해 주는 경향이 종종 있다. 혹시라도 남들보다 자녀들에게 못해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온갖 잡동사니, 말하는 인형, 디즈니 그림이 그려진 책가방, 비디오게임, 나이키 제품 일체를 사준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학우들에 비해 불이익을 당한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옆 사람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하는 마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전혀 억제할 줄 모른다. 출생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시장이 제공하는 모든 것에 푹 파묻혀 지낸 아이들에게 최악의 경우에는 언젠가 결핍이 혹독한 체험일 수 있따. p.151-152


미래의 소비자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많은 것을 노출시키게 되고, 경제분야는 점점 더 정교한 수단으로 소비자들의 돈을 향해 손을 뻗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자주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곧 깊은 마족을 향한 길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고,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부유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p.160


저명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원숭이의 도움 없이도 이 사실을 인식했다. 두뇌 연구자들의 실험이 있기 이미 오래전에 나온 '성취의 우울증'에 대한 불로흐의 이론에 따르면 소원과 동경은 언제나 성취에 이르는 문턱에서 사그라진다. 이러한 인식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p.163


"당신이 최근에 내가 선전한 환상적인 자동차를 살 수 있을만큼 충분히 돈을 모으면, 이미 다른 새 자동차 선전광고가 나온지 오래지요. 나는 당신보다 세 걸음 앞서 있으며, 당신을 확실하게 실망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결코 눈부신 아름다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나는 신상품으로 당신을 유혹하지만, 그 신상품은 오래 새로운 것으로 머무르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요... 내 임무는 당신의 입에 군침이 고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아무도 당신이 행복해지길 원하지 않아요. 행복한 인간은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p.166


다른 한편으로 그 체험을 통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생활양식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우쳤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결코 부유해질 수 없다. 현재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나보다 더 부유하고 더 화려하게 사는 사람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위를 향한 가능성은 그야말로 한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것을 토대로 부유하게 느끼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때문에 항상 가난하다고 느끼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p.190


그런 다음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부정적인 면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기로 결심하면서, 놀랍게도 이런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때부터 나는 내 쓸쓸한 처지에서 이 세상 다른 어떤 상태에서보다 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따고 추론하기 시작했다."

........

'로빈슨 크루소의 원칙'을 매혹적이게 하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삶의 우여곡절을 받아들이고, 희생자의 역할에 파묻히는 대신 끝까지 행위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능력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고 설파하는 서적들의 잘못된 점은 행복의 진부한 상투어를 독자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이루지 못할 기대를 일깨워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원래 어떤 삶이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려면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인지하고 이루지 못할 꿈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영원한 행복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물질적인 부만 쫓아다니는 사람은 결단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p.20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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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은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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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소설이다.

1960년 4월 1일에서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조윤아 교수와 마로니에북스에서 신문으로부터 원고를 되살렸다고 한다.


그냥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박경리'라는 이름만 보고 편 소설이었다.


처음에 읽어내려가는데 시대 상황을 보고 마치 KBS1에서 하는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았다.

어쩌면 요즘 말로 막장같은 내용을 담기도 했고, 남녀간의 연애를 다룬 것이어서 요

즘의 독자들에게는 내용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러한 내용이어서 재미는 있다.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들을 엿볼 수 있고, 박경리 작가만의 한 여인의 심리와 행동을 덤덤한 문장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낸 데서는 충분히 구별 될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과 드라마(영화)가 다른 점에 대해서 생각해게 되었다.

만약 이 책이 현재 드라마로 나왔더라면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낼만할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지만, 내용의 경우에 충분히 흥미롭지만, 구성이나 사건들이 기존 우리가 보아왔던 드라마의 스토리와 특별히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특성상 다루어질 수 있는 은밀한 심리묘사와 가치, 사회적 인식 등을 드라마와는 달리 읽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단지 막장 드라마나 소설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그래서 그렇게만 볼 순 없다.


주인공 인희의 상황 그리고 판단은 내게 충분히 이입되어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쫓아다니던 그래서 사귄 남자는 미국으로 유학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사업의 어려움으로 다른 사업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인희는 물론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그마저 돌아간 고향에서도 마음 붙일 사람 한명 없음을 인식한다.

오히려 장연실이라는 아버지의 첩이 집에서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녀의 선택은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하여 아이셋을 둔 50대의 홀아비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사실 나는 어땠을까 생각하며 살짝 비참한 느낌도 받았다.

1960년대의 상황에 따라 지은 소설의 주인공의 선택이 내가 할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장녀이고, 아버지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뜻에서 혹여나 그 당시라면 충분히 인희와 같은 선택이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현재라면 아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이면 '해결이 꼭 그 사업가와 결혼하는 것에만 있나?'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을 것이며, 절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실연과 가족의 상실감을 겪은 인희가 선택한 것은

물론 감정에 휩쓸려서 판단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여자가 그런 존재(사업에 충분히 이용될 수 있을만한)였음을 보여주며,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서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당연한 희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인희의 상황이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감정과 당위성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고, 그녀를 끝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끌어내린다. 

그러면서 작가는 인희를 내세우며 서서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서 그 당시 갖고 있는 인식과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려든다.

친구인 은옥과 새로운 남자인 강진호를 통해 인희는 자신의 심리와 상황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것은 기성 관념이며 그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설득받는(?)다. 

그 과정을 통해 끝내는 열지 않으려고 하는 인희의 여리고 안쓰러운 버팀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상황에서 소설은 끝을 낸다.

나는 이러한 내용이 그 당시에는 조금 파격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금이야 자신의 감정을 따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시는 한창 광복과 6.25전쟁을 지나서 혼란스러운 시기가 안정되어져 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과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감정과 인생을 위해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희의 변할 수 없는 변하지 않으려는 애씀은 이해가 되기도 하다.


씁쓸하게 끝나지 않을까 안쓰러우면서도 궁금하고 초조했지만 다행히도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사실 사람의 죽음, 상실감, 실연 등에서 생성된 감정과 상황에서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이성을 찾고 나의 주관을 또렷히 갖고 대처해나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인희의 계속되는 비참한 현실은 그 당시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게 보인다.

여러 아픔의 상황에서 인희라는 나약한 여성을 강하게 강제로 바꾸려 하거나 사회에 수동적으로 물러서기를 두지 않았다. 인희 그대로를 두면서도 서서히 인식과 가치를 변하도록 이끌어낸 것은 어쩌면 그 당시 나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여성들이 조금이나마 감정의 자유를 갖길 바라고, 자신의 선택에 주관을 갖는 등 여성들의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생각했던 저자의 의도되고 진정 말하고 싶었던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여담으로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인희를 제외한 여성들(은옥, 연실, 선자 등)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능동적이었다. 비록 악하고 추잡한 탐욕이 능동적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를 다소 흐리게 하지만 그 자체는 혹시나 생각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비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대적인 관념이나 통념에 물흐르듯이 흘러가지 않고 자신의 주관과 의지(?)를 따른 것은 인희와는 상당히 대조되면서도 남자들을 오히려 휘두름으로 개인적인 통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내 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볼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동병상련 이란 말이 있듯이 같은 불행자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고 자기가 처해있는 불행과 비교해보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자기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견디어보자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11%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인희 씨는 핑계를 삼았을 뿐입니다. 인희 씨는 자기의 사정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반발하는 것입니다. 좀 더 시간을 기다려 냉정히 자신을 정리해보실 수 없을까요?"

"...."

"감정으로서 긍정하는 일은 좋습니다만 감정으로서 부정하다는 것은 퍽 위험한 일입니다. 인희 씨는 아마 이 순간에도 후회를 하고 있을 거예요."

37%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흘러가면 최인희 씨는 자기가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서둘러서 자기를 버리는 행위만은 보류하셔야 합니다."37%


그리고 강진호에 대한 잠재적인 감정을 엄폐하려 드는 자기 자신의 본질이 전혀 외부에서 강요당한 기성 관념의 소산이라는 것을 인희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자기의 감정의 올바른 발로를 굳이 제지하고 있는 인희였던 것이다.

41%


"감정을 밀폐하며 사람은 살아야 합니까? 그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질서 있게 하는 겁니까? 인희씨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남까지 고통을 주지 않았습니까? 인희 씨가 감정에 충실하였다면 더 손쉽게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먼 길을 둘러서 우리가 만나지 않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감정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76%


"언제까지나 낡아빠진 소리만 하구 있어. 감정은 자유야. 좋으면 좋은대루 표시해야지 왜 억젤 하니? 아무튼 그따위 생각을 하다간 넌 또 실패한다. 평생을 두고 후회를 해야 하는 실패를 한단 말이야. 허긴 나도 인생의 실패자지. 그러나 후회를 하지 않아. 유감은 없어. 최선을 다했으니까. 인력으로 될 수 없는 일이야. 하는 수 없지. 그러나 넌 인력으로 자꾸만 자기의 운명을 막는단 말이야. 처음부터 강진호 씨하고 결혼을 했으면 이런 복잡한 사태가 되지는 않았잖아.

83%


"난 너 마음을 잘 알지. 넌 얌전하구 싶은 거야. 나같이 사는 게 마땅치 않는 거야. 그러나 인희, 내 말 잘 들어. 행복이란 순간이야. 그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행복을 잡지 못한다. 넌 첫번째 순간을 스스로 피했고 이번이 두 번째 기회야. 잘 생각해. 나도 이정식 씨 이제 생각 안할 테야. 내 앞에 기회가 온다면 난 서슴치 않고 잡는다. 그리고 그것에 열중하는거야. 이정식 씨와의 역사는 이미 끝났거든. 넌 처음 기회가 있을 때도 송건수와의 역사가 끝난 것을 명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이 빗나간 거야. 강진호 씨는 송건수 씨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 널 생각하는 정열도 그만하면 송건수 이상이야."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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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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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참 재미있다. 며칠전에 신뢰성, 영향력의 순위에서 1위로 발표된 JTBC를 안본다니?

JTBC는 지난 전 대통령의 탄핵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쓰게끔 기여한 언론사다.

본다니 역시나 '보수겠구나'하는 생각에 그대로 적중하는 대상들은 그 사우나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은 사우나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자인 나는, 1%와는 거리가 먼 나는, 굳이 사우나를 즐기지 않는 나는....알 턱이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인지 더 궁금해졌다. 내가 알지도 알 수도 없는 세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런지...


 이 책은 대한민국 1퍼센트 남자들이 벌거벗고 있는 사우나에서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쓴 책이다. 그 밖에 태권,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들의 삶과 일상도 알 수 있다. 작가는 경제적인 이유으로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던지라 사우나 업무에 뛰어든 경력이 있다. 그런 실제적인 경험을 가지고 쓴 이야기라면 조금더 내용에 있어서 신뢰되고, 현실적으로 잘 표현했을 거란 기대감이 든다.


어떤 것이 진실에 가까울지 우리에게 숨은 그림찾기처럼 남겨둔 작가는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그 안의 인물의 행동, 상황들을 묘사해 나간다. 그들의 행동과 표정, 말에서 우리는 인물의 성격과 개성을 알 수 있다. 1퍼센트의 사람들에게서는 그들만의 세계인 이 헬라홀 사우나에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특권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주인공인 태권과의 대화에서는 단지 태권이 을도 못되는 병으로써 대답하지 못할 사이다와 같은 답변으로 갑을 대한다. 엉뚱하고, (속으로 자신의 속내를 감추더라도) 겁없고, 재기발랄하게 보이는 말투는 1퍼센트의 점잖은 채하고 말을 아끼는 갑의 속내를 이끌어내는데 큰 공헌을 하는 것 같다. 때로는 짠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니꼽기도 하고, 때론 유치하고 탐욕스러운, 권위의식에 쩐(?) 갑들의 면모를 주저없이 끄집어낸다.


그와 대조적으로 보이는 태권, 공, 팀장, 프론트 여직원 등 소시민적인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은 초라하고 궁색하게 느껴진다. 1퍼센트의 사람들에게 혹은 세상에 자신의 모습들에게 친절, 연기를 팔아 제공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살아간다.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유인원 아저씨), 자신의 가치에 살아가며(프론트 여직원), 자신의 개성(성격)을 따라 살아가지만(팀장) 결국은 누군가의 하수인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은 그냥 현재를 살아가는 딱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그런 우리에게 1퍼센트와 세상의 법칙, 권위 앞에서에서 소위 '권리'라는 것을 3차례 가량 주인공의 여자친구의 말을 언급하며 우리가 현실가운데 권리를 누려도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정작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보니 대단한 것들이 대단한 게 아니었더라는 것이다. 1퍼센트의 사람들 역시 후줄근한 사우나복을 입으면 별거 없고, 나 또한 당당히 그들 안에서 벗고 다녀도 다른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직원들은 사우나에 들어가지 않는 법칙에 대해 우리는 들어가지 않는다 라고 한다. 탕에 그들의 흐느적이는 괄약근으로 똥물이 되었다는 등 이유로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태권이 소설가의 태권과 사우나 매니저의 태권으로 마주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사실 쉽게 넘기기엔 천천히 읽어야 할 필요를 느껴서 3번 가량 차근히 읽어봤다.

결국은 1퍼센트의 사람뿐 아니라 우리 각자도 투텁고 단단한 관념의 벽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의 웃음으로 긴장을 풀고 마음을 느슨하게 열기를 마지막에 이야기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한다. ~되어야 한다. ~이어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각박하고 관념의식으로 철벽이 처진 세상에서 여유를 갖고 그런 관념의식에 매몰되지 않고 담담한 자세로 살아가길 ...

우리 나라 현실에 대한 고발과 더불어 거기에 물과 같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책을 읽고 그 책 내용을 기억하며 쓰자니

이해가 잘 안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니, 그러니까, 꼭 그렇게 비위를 맞춰야 하냐고요. 그 사람들, 아니 회원님들께선 그냥 왔다가 옷 갈아입고 골프 치고 헬스하고 목욕 한번 하고 집에 가는게 전부잖아요."....

"태권씨, 생각이 너무 많네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운동복에 대한 것과 사우나에 대한 것 두개면 끝입니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의문이잖아요. 팀장님은 내가 왜 이래야 하나 화나고 불쾌한 적 없어요?"

p.36  


아니 면접보러 간 주제(?)에 돈을 받으려면 하라는대로 해야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태권의 저와 같은 당돌한 질문을 나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자리라도 구하려던 태권이 할 수나 있을 말이었을까?

아니 왜 이 장면을 굳이 작가가 넣어야 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뒷 장면을 계속해서 읽어보니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많이 생각하지말고 돈, 소유 등에 대해서만 생각하라고 하지만

그것들을 위해서 우리의 자의식, 자존심도 버리고 우리의 가치마저 하락시키고 우리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을 넣은게 아닐까?

질문조차 하기를 포기하고 단지 지금에 급급해서 살아가는게 아닐지...

그러지 않아도 혹여나 그렇게 해서 올라간 그 특자리가 대단한게 아니던데 말이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이 책이 나는 참 좋았다.

시대의 고발에 그치지 않았고, 단지 JTBC에 편승되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 참 좋았다.

결말은 그냥 찝찝함을 줄지 몰라도 시원시원한 주인공의 말과 나 자신에게 남겨진 생각과 질문을 주었다.

이 가을 생각하고 찾고 깨달아가는 즐거움(?)을 준 좋은 책이었다.


'나는 젊다. 그건 살면서 한 번쯤 뒤통수를 맞아도 웃어넘길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열정의 힘이다.'

돌이켜보니 그 때의 나는 순박했다. 지금의 나라면 마지막 단락을 이렇게 바꿨을 거다.

'나는 아직 젊다. 그건 이 사회에서 누군가 나를 털어 갈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그들이 지닌 열정의 힘이다.'

p.11


"아니, 내가 태권을 좋아하는 몇 안되는 이유야. 난 쓸데없이 바지런한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건 인간의 권리 중 하나를 포기하는 거니까."

"무슨 권리?"

"게으를 권리. 게으르게 늘어질 권리. 그건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다 자연스럽게 누려야 할 권리지. 언젠가부터 우리 인간들만 그걸 죄악시하게 되었지만."

p.42


아버지가 경멸하던 그 무료함 말이다. 그 무료함을 즐길 수 있는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이 헬라홀이었다. 인간의 게으를 권리를 당당히 드러내는 장소가 여기였다. 게으른 거, 그거 지금 이 시대에는 아무나 못하는 거구나 싶었다.

p.57


"태권, 인간에게는 권리가 있어."

"또 무슨 권린인데?"

"인간은 그러니까... 홀딱 벗은 인간 앞에서는 같이 당당하게 홀딱 벗을 권리가 있는 거지."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리 당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벗을 권리는 뭐 둘째 치고 씻을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했다. 팀장도 씻을 때 언제나 구석 자리에 숨어 조심했다. 나와서 옷을 갈아입을 때조차 로커룸에 사람이 없을 때를 골랐다.

p.95


근데 오늘은 잠이 안 오더라. 머릿속만 막 복잡해지고. 그러다 내가 호떡처럼 여겨지는 거야. 반죽일 때는 내가 그래도 뭔가 될 거라 믿잖아. 그런데 모양이 만들어져도 그냥 기름판 위에서 꾹 눌리는 인생이잖아. 멋있지도, 대단하지도, 끝내주지도 않고 그냥 호떡."

p.119


"아무래도 소설가는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와 친구요? 그건 좀 이상하네."

그때 나는 손걸레로 거울을 닦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좀 아닌 거 같아. 안그래? 그런 느낌이 있다고."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손걸레를 잠시 내려놓았다.

"회원님, 그건 당연하죠. 너무 바라는 게 많은 거 아니세요? 저는 여기서 일하는 직원지요. 그리고 회원님 덕분에 월급도 받죠.

그 때문에 회원님은 제 친절을 사잖아요. 그러면 거래는 끝입니다. 하지만 우정을 사려면 그 이상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 노동이 아닌 영혼의 값인데."

그는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얼마면 돼?"

"뭐, 제가 굳이 회원님께 영혼을 팔고 싶진 않고요."

p.162


"내 생각에는.... 치킨이나 피자나 다 그래. 그러니까 정말 배가 고플 때는... 사실 삶은 감자를 입안에서 식혀가면서 천천히 씹으면 닭고기 맛도 부침개 맛도 전부 다 나. 어려을 적에, 그러니까 가난해을 때, 난 그래어. 지금도 입맛이 없으면 감자를 쪄서 입안에서 천천히 식혀가면서 먹네. 오래오래. 그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실은 지금도 그래. 감자야, 감자. 감자가 최고야. 이 세상의 행복은 감자 안에 있어."

p.177


"나 한번 쯤은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싶어."

"그건 그냥 연극일 뿐이잖아.?"

공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태권, 아직도 모르겠어? 진짜 삶에 주인공이 어디 있어? 주인공이라 착각하지만 다들 누군가의 하수인이지. 가짜 인생 연극에는 그나마 주인공이 있단다."

공은 새 맥주 캔을 땄다.

"태권, 나는 계약을 파기할거야. 태권은 여기서 계속 일할 거야? 생각해봐. 인간은 누구나 떠날 권리가 있는 거잖아."

p.200


나는 떠나지 않았다. 대신 헬라홀 남자 사우나에서 일하면서 어금니처럼 당분간의 생계를 책임졌다. 우리의 앞날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물론 특별한 계획도 세우기 힘들었다. 나나 그녀나 모두 뼈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앞날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꿀렁거렸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쉽게 게임 오버되기 쉬운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우리는 그냥 살아간다. 그건 용기나 낙천, 열정 같은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보험 없는 삶이지만 내가 사는 삶이니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희한하게도 헬라홀 남자 사우나는 그거 하나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물론 헬라홀의 회원님들이 가르쳐준 건 아니었다. 그냥 벌거벗은 1퍼센트 남자들 사이를 덤덤하고 시크하게 걷다 보니 습득해 버린 거였다. 대단함이 대단한 게 아니니까 대단해봤자지 이사람아, 같은 담담한 자세.

p.213


"그냥, 운전기사하고 기분 전환 겸 일주일쯤 동남아 놀러갔다왔는데 별거 없네. 그냥 그래 똥남아. 역시 여기저기 다녀도 우리 나라가 제일 살기 좋아. 그럼 된거 아냐?"

나는 그냥 세탁물이나 버리러 갈까하다 말문을 열었다.

"뭐, 회원님께는 그렇겠죠. 돈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죠. 아닌 사람한테는 아니고."

p.216


의정부에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이곳의 이야기를 쓴다면 무덕하고 초라한 상류층 남자들의 사우나를 헬라홀이라 부를 거라고.

1퍼센트의 사람들만, 혹은 자신을 1퍼센트라고 믿는 사람들만 빠져드는 그곳은 분명 어마어마한 구멍이었다. 위험한 맨홀 같기도 하고 시공간이 일그러진 웜홀 같기도 한 헬라홀이었다. 한번 빠진 귀한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달리고 땀을 빼며 영원을 꿈꾸지만 훅 꺼져 사라질 때까지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멍, 헬라헬라 헬라홀.

p.229


"아니야, 그럴 거면 평범한 사람으로 했어야 돼. 소설가는 늘 날을 세우고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그런 존재야.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그런데 너는 노예의 삶에 순응한 거야. 그곳에 있는 1퍼센트 남자들의 부와 여유를 동경하다보니, 노예의 삶을 수긍하게 된거지. 부끄러운 일이라고."

.....

하지만 헬라홀에서 빠져나오니 나는 여전히 단단하고 두터운 관념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헬라홀에서 보았던 1퍼센트 남자들이 보여준 1퍼센트 남자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과도 다른 듯 비슷했다. 나는 여전히 어리석었다.

..............

그래, 그건 비웃음이 아니었다. 온전한 웃음이었다. 웃는 건 중요하다. 단단한 세계의 벽은 웃음 덕에 구멍이 나면서 조금씩 허물어진다. 그 벽에 구멍이 뚫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우리가 사는 관념의 세계는 아주 단단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웃음 때문에 작은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빈틈이 보이면서 무너진다. 헬라홀에 빠진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너무 단단한 사람들도 그걸 모른다. 각자의 관념의 링 속에서 돌고 있으니까. 하긴 세상 사람 누구나 세상을 쉽게 말하지만 결국 우리는 빈 맥주병의 공기에 불과한 존재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자 맥주병에 든 생쥐가 된 것처럼 귀가 먹먹해져 왔다.

p.24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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