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은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소설이다.

1960년 4월 1일에서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조윤아 교수와 마로니에북스에서 신문으로부터 원고를 되살렸다고 한다.


그냥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박경리'라는 이름만 보고 편 소설이었다.


처음에 읽어내려가는데 시대 상황을 보고 마치 KBS1에서 하는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았다.

어쩌면 요즘 말로 막장같은 내용을 담기도 했고, 남녀간의 연애를 다룬 것이어서 요

즘의 독자들에게는 내용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러한 내용이어서 재미는 있다.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들을 엿볼 수 있고, 박경리 작가만의 한 여인의 심리와 행동을 덤덤한 문장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낸 데서는 충분히 구별 될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과 드라마(영화)가 다른 점에 대해서 생각해게 되었다.

만약 이 책이 현재 드라마로 나왔더라면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낼만할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지만, 내용의 경우에 충분히 흥미롭지만, 구성이나 사건들이 기존 우리가 보아왔던 드라마의 스토리와 특별히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특성상 다루어질 수 있는 은밀한 심리묘사와 가치, 사회적 인식 등을 드라마와는 달리 읽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단지 막장 드라마나 소설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그래서 그렇게만 볼 순 없다.


주인공 인희의 상황 그리고 판단은 내게 충분히 이입되어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쫓아다니던 그래서 사귄 남자는 미국으로 유학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사업의 어려움으로 다른 사업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인희는 물론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그마저 돌아간 고향에서도 마음 붙일 사람 한명 없음을 인식한다.

오히려 장연실이라는 아버지의 첩이 집에서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녀의 선택은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하여 아이셋을 둔 50대의 홀아비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사실 나는 어땠을까 생각하며 살짝 비참한 느낌도 받았다.

1960년대의 상황에 따라 지은 소설의 주인공의 선택이 내가 할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장녀이고, 아버지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뜻에서 혹여나 그 당시라면 충분히 인희와 같은 선택이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현재라면 아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이면 '해결이 꼭 그 사업가와 결혼하는 것에만 있나?'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을 것이며, 절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실연과 가족의 상실감을 겪은 인희가 선택한 것은

물론 감정에 휩쓸려서 판단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여자가 그런 존재(사업에 충분히 이용될 수 있을만한)였음을 보여주며,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서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당연한 희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인희의 상황이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감정과 당위성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고, 그녀를 끝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끌어내린다. 

그러면서 작가는 인희를 내세우며 서서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서 그 당시 갖고 있는 인식과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려든다.

친구인 은옥과 새로운 남자인 강진호를 통해 인희는 자신의 심리와 상황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것은 기성 관념이며 그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설득받는(?)다. 

그 과정을 통해 끝내는 열지 않으려고 하는 인희의 여리고 안쓰러운 버팀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상황에서 소설은 끝을 낸다.

나는 이러한 내용이 그 당시에는 조금 파격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금이야 자신의 감정을 따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시는 한창 광복과 6.25전쟁을 지나서 혼란스러운 시기가 안정되어져 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과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감정과 인생을 위해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희의 변할 수 없는 변하지 않으려는 애씀은 이해가 되기도 하다.


씁쓸하게 끝나지 않을까 안쓰러우면서도 궁금하고 초조했지만 다행히도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사실 사람의 죽음, 상실감, 실연 등에서 생성된 감정과 상황에서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이성을 찾고 나의 주관을 또렷히 갖고 대처해나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인희의 계속되는 비참한 현실은 그 당시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게 보인다.

여러 아픔의 상황에서 인희라는 나약한 여성을 강하게 강제로 바꾸려 하거나 사회에 수동적으로 물러서기를 두지 않았다. 인희 그대로를 두면서도 서서히 인식과 가치를 변하도록 이끌어낸 것은 어쩌면 그 당시 나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여성들이 조금이나마 감정의 자유를 갖길 바라고, 자신의 선택에 주관을 갖는 등 여성들의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생각했던 저자의 의도되고 진정 말하고 싶었던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여담으로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인희를 제외한 여성들(은옥, 연실, 선자 등)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능동적이었다. 비록 악하고 추잡한 탐욕이 능동적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를 다소 흐리게 하지만 그 자체는 혹시나 생각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비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대적인 관념이나 통념에 물흐르듯이 흘러가지 않고 자신의 주관과 의지(?)를 따른 것은 인희와는 상당히 대조되면서도 남자들을 오히려 휘두름으로 개인적인 통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내 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볼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동병상련 이란 말이 있듯이 같은 불행자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고 자기가 처해있는 불행과 비교해보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자기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견디어보자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11%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인희 씨는 핑계를 삼았을 뿐입니다. 인희 씨는 자기의 사정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반발하는 것입니다. 좀 더 시간을 기다려 냉정히 자신을 정리해보실 수 없을까요?"

"...."

"감정으로서 긍정하는 일은 좋습니다만 감정으로서 부정하다는 것은 퍽 위험한 일입니다. 인희 씨는 아마 이 순간에도 후회를 하고 있을 거예요."

37%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흘러가면 최인희 씨는 자기가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서둘러서 자기를 버리는 행위만은 보류하셔야 합니다."37%


그리고 강진호에 대한 잠재적인 감정을 엄폐하려 드는 자기 자신의 본질이 전혀 외부에서 강요당한 기성 관념의 소산이라는 것을 인희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자기의 감정의 올바른 발로를 굳이 제지하고 있는 인희였던 것이다.

41%


"감정을 밀폐하며 사람은 살아야 합니까? 그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질서 있게 하는 겁니까? 인희씨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남까지 고통을 주지 않았습니까? 인희 씨가 감정에 충실하였다면 더 손쉽게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먼 길을 둘러서 우리가 만나지 않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감정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76%


"언제까지나 낡아빠진 소리만 하구 있어. 감정은 자유야. 좋으면 좋은대루 표시해야지 왜 억젤 하니? 아무튼 그따위 생각을 하다간 넌 또 실패한다. 평생을 두고 후회를 해야 하는 실패를 한단 말이야. 허긴 나도 인생의 실패자지. 그러나 후회를 하지 않아. 유감은 없어. 최선을 다했으니까. 인력으로 될 수 없는 일이야. 하는 수 없지. 그러나 넌 인력으로 자꾸만 자기의 운명을 막는단 말이야. 처음부터 강진호 씨하고 결혼을 했으면 이런 복잡한 사태가 되지는 않았잖아.

83%


"난 너 마음을 잘 알지. 넌 얌전하구 싶은 거야. 나같이 사는 게 마땅치 않는 거야. 그러나 인희, 내 말 잘 들어. 행복이란 순간이야. 그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행복을 잡지 못한다. 넌 첫번째 순간을 스스로 피했고 이번이 두 번째 기회야. 잘 생각해. 나도 이정식 씨 이제 생각 안할 테야. 내 앞에 기회가 온다면 난 서슴치 않고 잡는다. 그리고 그것에 열중하는거야. 이정식 씨와의 역사는 이미 끝났거든. 넌 처음 기회가 있을 때도 송건수와의 역사가 끝난 것을 명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이 빗나간 거야. 강진호 씨는 송건수 씨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 널 생각하는 정열도 그만하면 송건수 이상이야."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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