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돈의 역사는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다!(p.31)


우리는 돈을 매개로 하여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그 매개가 목적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위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돈'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돈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도 없으며, 돈이 없는 행복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돈을 통해 우리는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로 나뉘어 있으며, 가진 부류가 되기 위해서 삶을 힘껏 살아내고 있다.

돈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문제의 동기가 되며 결과가 된다.

이렇게 돈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있다.


이러한 돈에 있어서 저자는 저 한 마디로 자신이 '인플레이션'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말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과 상황에 맞추어 돈을 생산하고 소비하기에 바쁘지만,

돈에 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상황이 함께 동승했다는 것은 익숙하지는 않다.

우리의 삶에서 결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돈임을 생각했을 때,

돈의 역사가 되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란!!

단어하면,

'물가상승' 그리고 무언가 위험한 것이라는 경고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돈과 역사를 함께한 인플레이션을 알아보자면

우리가 언뜻 알고 있는 것은 꽤나 단편적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원은 라틴어 '인플라레', 크게 부풀어 오르다'의 의미(p.37)로 통화량이 부푸는 것(p.38), 장바구니 물가가 평균이상으로 오른 경우(p56) 등으로 인플레이션의 증상을 이야기하는데,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어떤 사건이 발생한 특정한 시기에 나타났을 것같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최초의 화폐는 등장하자마자

국가에 의해 본래의 화폐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따.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됐다.

p.47

이를 시작으로 이 책은 인플레이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인플레이션이 무엇인지 아는데서 시작하여 그 파장력과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정치인...),

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해와 대처, 그리고 여러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이 닥친 상황

인플레이션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중에 생긴 경제이론들

그리고 현재 인플레이션과 금융위기...

국가와 정치인이 조장한 가운데 피해자가 되는 소시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의 흐름을 잘 타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경제관련 도서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얼핏 알기로는 거부들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금융세계를 그들의 세계에서 좌지우지 한다는 내용의 책도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세계의 역사 중에 돈의 흐름과 이완수축(?)을 담당한 것은 무분별하고 어리석음을 행한 국가와 정치인들이었다는 이 책의 견해에서 또 다른 경제적 위기의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에 소시민들은 그들의 전재산인 돈이 가치하락하여 수레에 싣고 다닐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치행태를 지지하고 저도 모르게 그들의 빚을 갚아주는 역사를 살아왔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개념과 그간의 역사를 알아보니

그냥 시대의 흐름을 좇아 저축하고, 투자하던 것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책에서 제시하는 대로 인플레이션의 영향력과 파장은 기하급수적이다.

20세기에 벌어진 인플레이션(베네수엘라, 헝가리...등)사태으로 인한 거대한 숫자들은 읽기만 해도 피로감이 몰려든다.  

무작정 중앙은행과 국가의 시행과 정책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경제에 대한 주체적인 학습 그리고 스스로가 우리의 상황과 성격에 맞는 투자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율, 물가상승율에 대해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투자방법은 그나마 경제에 문외한인 내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떤 투자방법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가치가 많이 하락하지 않는 안정성, 수익성, 유동성 등을 고려해봐야 함을 배웠다.


이 책을 보면서 정말 경제에 무지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무감각하게도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해서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인플레이션 게임은 더이상 우리의 과거 경제시간에 배우던 이론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가 피하고 싶어한다고 기피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적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시나리오를 동원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p.279)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돈이라는 경제의 근본적인 존재를, 돈의 가치를 좌우하는 인플레이션이란 개념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겠다.


추천사에서처럼 한번에가 아닌 이 책을 세번을 읽어서라도!!


마지막으로

'돈을 잘 버는 법', '이 시대에는 ~에 투자하라!'라는 방법론과 인스턴트식의 해결제안이 아니라서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다.

우리가 간과했던 개념인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돈과 관련하여 그 중요성을 절실히 알게 되었고,

근본적인 문제와 해결대안을 차근차근 짚고 나가는 거시적이고도 총체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내게는 도움이 되었다.


다시말하면 세 번을 읽어서라도 여러가지 병행하여 경제적의 흐름과 기본 그리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보며 알아가면 더 없이 좋을 거라 생각된다.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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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 칼릴 지브란의 철학 우화집
칼릴 지브란 지음, 신혜수 옮김 / 지에이소프트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자이자 화가이고,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칼릴 지브란.

그 이름이 많이 익숙하지 않지만, 낯설지만은 않은 이름이다.

그가 하는 말과 우화들이 이미 많은 책들에 인용되어져 언젠간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철학 우화집이라고 적혀서 어렵지는 않을까? 했는데

어렵다는 인상보다는 그 우화들이 깊은 의미를 담은 것들이라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책장에 두고두고 꺼내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우화이지만 그냥 우화로만 볼 수 없는 이 책은

저자의 철학적인 성향들이 잘 반영되어있다.

짧은 글로 비교적 잘 읽히는 글일지라도

그안에서 우리가 짚어보야 할 내용들은 가볍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는 우화도 좋았지만,

명언 구절들이 더 와닿았다.


읽는 순간

이래서 '칼릴 지브란'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구절에서 강력한 인상과 통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을 다녀오고 난 후, 아버지를 따라서 전국 및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녔다고 한다. 아랍어와 영어를 구사했으며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기독교적인, 영적인 것들을 이야기 중에 담고 있다.


그래서 초반의 이야기 중에 '몽상가'란 제목의 우화도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인으로 예수님이 몽상가로 칭해진 것이 언뜻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글을 통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예수'에 대해 그렇게 이해하고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사색과 삶에 대한 통찰이 가볍게 여겨지거나

무작정 비판하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현 시대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화와 명언들은 그 시대의 것만이 아닌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본성, 삶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 계속 곱씹을만한 것으로

고전으로 오래 읽히기에 손색이 없을 책이겠다.(이미 고전...?^^;)



고통을 헤쳐 나온 사람이 가장 강건한 정신을 갖게 되고 상처로 얼룩진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된다.

p.50


한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이미 이루어 온 것을 보지 말고 그가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어하는지를 보아라. p.62


욕망이 인생의 반쪽이라면 무관심은 죽음의 반쪽이다.

p.93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자기 맘대로 조종하길 원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p.105


안락에 대한 욕망이 영혼의 열정을 잠재운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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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맨부커 수상작으로 이미 어떤 말도 필요없는 작품...

이라지만 나한테는 역시나 어렵긴 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보니

은유가 깃든, 생각을 할만한 요소가 있는 책에 흥미가 있어하는 편이라

이 책은 내게도 위의 평들과 같이 느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행동,,

불편한 표현들,

궁금하지 않은 생활들...


그다지 반가운, 아름다운, 감동적인, 따듯한, 행복해지는...그런 건 없다.

정말 괜찮은 책이야! 라고 나같은 사람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준 높고, 아름답고 마음을 흔드는 소설이라고는 하는데

나같은 사람이 그렇게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나보다.


이 책은 주인공인 영혜가 꿈을 꾼 이후 고기를 끊음으로 생기는 가정의 파탄, 그리고 그녀와 다른 사람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 하고 있다. 영혜를 기준으로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각으로 영혜와의 관계, 생활이 나타난다.

언뜻 보면 한 사람이 그냥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죽어가는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이 책을 그렇게 본다면 빙산의 일각만 본 꼴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나 또한 빙산 전부를 보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광기어린 표현들, 그리고 주인공의 행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단지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들이다.

흐지부지한 결말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섬세하고 명민하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극의 모습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작가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하다.


왜 채식주의자인가?

책 중에 영혜는 꿈을 꾸고 그 이후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간 사장부부를 만나는 식사자리에서 그녀는 '채식주의자'로 명명되어진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채식주의자가 맞지만, 대체로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가치를 근거로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얼핏 해설에서 보니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다른 이가 그렇게 칭한 것으로 되어있기도 하더라...

영혜는, 채식주의자는 우리의 약자를 대변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취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말이다. 그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라치면, 그와 반대되는 일반적인 사람, 평범한 취향을 지닌 사람, 고기를 먹는 사람, 강요하는 자에게서 제재가 그들에게 들이닥친다.


아버지가 그녀의 입을 억지로 열어 고기를 먹이려는 상황,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

남편이 그녀와 이혼하려는 상황,

그녀를 정신병원에서 넣으려는 상황...

그녀에게 억지로 수액과 영양주사를 맞히려는 상황...

그녀를 위해서라지만 그녀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보면서

우리 또한 약자들에게 가하고 있는 것들이 없는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먹을 것을 거부했다. 이또한 상징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을 매몰차게 대하고, 비판한다.

결국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우리가 약자를 대할 때 하는 행동을 볼 때

영혜를 대할 때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다.

소설에서도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영혜의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표면적인 것에 집중하여 막기에 바쁘다.

그녀 또한 "이해할 수 없을테니까..."라고 단정지어버린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녀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죽음의 과정에 발을 내딛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소수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소설로 이와 같이 독특한 상황과 은유로 썼다는 점은 감탄스럽고, 신선하다.

또한 세 사람의 시각으로 한 인물과 상황을 봄으로

어디까지 그녀를 수용하고 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녀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볼 수 있게 한다.


남편은 그녀가 그냥 평범했기 때문에 선택했는데 더이상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고 떠난다.

형부는 자신이 가진 예술적인 기질과 직업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를 수용한다.

언니는 그녀로 인해 자신의 가정과 생활이 파탄났지만, 최대한의 인내심과 가족력을 발휘하여 그녀를 포용한다.


이 책은 어렵게 느껴졌지만,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할 정도로 흡인력있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세계로 충분히 들어오게 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독특하고 남다른 구성과 관점 뿐 아니라 뭔가 남다른 표현방식이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문체, 표현,,, 사실 그런건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안나서 그걸가지고는 자세히는 말을 못하겠다.


사실 형부와의 관계는 상당히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여러모로 채식주의자(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다루기엔 적합한 설정이지 않았나 싶다.


어둡고 불편하지만

독특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대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독자로써 색다른 영광스러운 독서가 된 것도 같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 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p.43


그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사에게 표했던 재발에 대한 우려는 단지 표면적인 이유이며, 영혜를 가까이 둔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그애가 상기시키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을. 사실은, 그애를 은밀히 미워했다는 것을. 이 진창의 삶을 그녀에게 남겨두고 혼자서 경계 저편으로 건너가나 동생의 정신을, 그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을.

p.173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한 석달 동안 그녀는 이따금 혼란 속에서 생각해왔다. 지우가 아니라면-그애가 지워준 책임이 아니라면-자신 역시 그 끈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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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 - 페미니스트 박혜란의 조금 특별한 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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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반가웠다.....


기억은 나지 않는 꽤 오래 전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육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었다.

'~해야한다.', '~게 하면 안된다'가 많은 책들을 읽고 충고에 다소 피로함을 느낀 내게

저자의 책들은 위로와 편안함을 주었다.

그래서 저자의 이름이 보이는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아는 좋아하는 언니를 아주 오랫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책을 들고 읽기로 했을 때,

70세가 다 되어가는 저자의 시점에서 적어내려간 이야기가

과연 내게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고 공감이 될지 의심스럽긴 했다.

나는 아직 몇 학년을 뛰어넘어야 하는 아주 먼 일의 삶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에세이를 좋아했다.

간간히 쓰이는 단어가 매력적이고, 문장이 잘 읽힌다.

학자로써의 딱딱함 보다 부드럽고 잘 읽히는 것이 감성적이기도 하다.

솔직해서 통쾌하기도 하다.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도 좋다.

또한,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와는 다른 연령대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해졌다.

내 자신이 다시 삶의 흐름에 떠밀려가며 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30대나 현재나 자신다움을 고수하려는 저자의 삶에 다시 내 자신을 내어놓고 싶었다.


각 주제에 따른 에세이를 짤막히 적은 것을 묶은 책이다.

딱히 어떠한 확실한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털털하게 서술했다. 굉장히 열려있는 감각과 앞선 생각들이어서인지 세대의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사색이, 생각이 나의 것들과 겹쳐지는 것도 제법 많아서

큰 공감이 된다. 그리고 작게나만 내리는 그의 결론은 내게 담담히 감동이 되고, 깨달음이 된다.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럴 줄 몰랐다. '나이든 사람도 세상이 재미있을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그저 할 수 없이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나이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늙어서 추레한 흔적을 남긴 채 죽지 않고 어느 바람 부는 봄날 벚꽃처럼 멋지게 스러지리라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게 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241


위의 글은 내가 나이 듦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과 비슷했다.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아니 젊은 시절 가졌던 생각이랑 흡사해서 놀랬다.

30대나 40대나 50대나 60대나 70대나 .....

'내 마음은 아직도 20대인데....' 드라마나 혹 현실에서 어르신들에게 쓰이는 말처럼 그 말은 요즘 내게도 쓰이고 있다. 경력과 노하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그리고 때론 열정, 설레임, 두려움 등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삶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매번 새롭고 그에 따르는 여러 감정들이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며 나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해봤다.

그리고 조금씩 그분들의 뒤를 밟아가고 있는 삶을 사는 중에도 나 또한 삶을 대하는 방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나이는 점차 먹어가지만, 나이를 먹고 싶지는 않고, 나이든 사람처럼 서글프지 않길, 처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이 먹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하여 저자는 제목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이듦으로 인한 현상들(망각, 외로움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유로움을 발견하며 당당히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그 안에서도 새로움을 감사한 여러 의미들을 찾아가는 저자의 관점은 나이듦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든 이들이 함께 가져볼만한 마음, 자세다.

 그런 깨달음 나눈 덕에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삶이라는 것이 크기도 하지만 또 별게 있나 하는 생각으로 그간 갖고 있던 긴장감을 이완시켜보기도 했다.


이 책은 편하게 읽어볼 수 있다.

도란도란 책에서 수다떠는 느낌을 갖을 수 있는 책이다.


편하게 보되 또다른 사람의 삶의 지혜를 맛볼 수 있길....



어이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건망증 덕분에 '날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는지. p.28


....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내가 너무나 빠른 시간에 유명해진 게 내가 남보다 똑똑한 데다 말을 잘 해서 그런 줄 알았었다. 아무튼 착각에는 상한선이 없나보다. p.38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항상 남에게 의존하게 되고, 남에게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가 거부당하기라도 하면 스스로 위축되기나 남을 원망하게 된다. 혼자 놀 줄 안다는 건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남에게 섭섭함 따위를 느낄 겨룰이 없다.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늘 여유로워 보여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니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곧, 여럿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나이들어 가면서 혼자 놀 줄 모르면 공연히 주위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다 보면 젊으니는 점점 더 멀어지고 노인은 점점 더 야속해 한다. 나이들수록 혼자 놀 줄 알아야 인생이 그나마 덜 외롭다. 덜 삭막해진다.

p.100


'시어머니로 사는 법'을 고민하는 요즘 신세대 어머니들에게 권한다. 그동안의 사회 변화와 나의 며느리 시절,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을 모두 아우르면서 어떤 시어머니로 살지 성찰해 보자고. 지구상의 수십 억 인구 중에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만났다는 건 정말 보통 인연이 아니지 않은가.

<신 新 시어머니의 십계명>

1) 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2)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다.

3)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4) 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5) 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6) 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마라.

7) 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8) 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9) 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10)생긴 대로 보여 주라.

p.186~~


어제 있었던 모임에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각자 올 한 해에 생겼던 좋은 일들을 소개하고 서로에게 손뼉을 쳐주자고. 멤버가 열댓 명이나 되다 보니 좋은 일도 갖가지였다. ....p.234


돌이켜 보면 또 내게 잘해 주는 사람들에게는 속으로 '내가 당연히 받을 대접'을 받는다는 교만이 앞선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대접은 대접하는 자의 몫이지, 대접받는 자의 몫이 아니지 않은가. 남의 고마움을 인정하고 대접할 줄 알는 사람이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는다.

p.235


모든 일은 그렇게 물처럼 흘러간다. 죽을 것 같았던 고통도 며칠 지나면 그저 어릴 적 읽은 소설의 한 구절처럼 아스라하기만 하다.

p.241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럴 줄 몰랐다. '나이든 사람도 세상이 재미있을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그저 할 수 없이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나이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늙어서 추레한 흔적을 남긴 채 죽지 않고 어느 바람 부는 봄날 벚꽃처럼 멋지게 스러지리라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게 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241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 친구들은 또 '겸손이 지나쳐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며 빈정거리겠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고백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비교적 잔소리를 하지 않고 키웠던 것은 남들이 평가하듯이 무슨 깊은 철학이나 뚜렷한 교육관이 있어서라기보다 아이들한테 이러이러하게 살아라 하고 다그치며 이끌어 줄 자신감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세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를 꿰차긴 했지만 현재는 늘 숨가빴고 미래는 늘 불안했다. 하루하루 쌓이는 일을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내 몸과 마음은 버거웠다. 그러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 보겠다는 뚜렷한 비전 대신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 잠재력이 오롯이 피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지켜본 것이 내가 한 엄마 노릇의 전부였다. 아이들이 아무리 못났다 해도 적어도 엄마인 나보다는 잘났으리라는 믿음 하나만은 확고했으니까.

p.25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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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섭의 글쓰기 훈련소 - 내 문장이 그렇게 유치한가요?
임정섭 지음 / 다산초당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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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지 요즘은 독서에 대한 책 뿐 아니라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이 눈에 띄게 출간되는걸 볼 수 있다. 글을 잘쓰지 않음에도, 글쓰기란 무언가 자연스럽고 자신의 개성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으로 글쓰기에 대한 방법, 잘쓰는 법을 알아본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나는 글을 잘 쓰고 있는지 궁금했고, 함께 사는 이로부터 글에 대해 자주 지적을 당하는 요즘 글쓰기와 관련한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 글쓰기>의 저자인 강원국 님의 추천했을 뿐 아니라 그의 책을 쓰려고 본 책이 바로 이 책 <글쓰기 훈련소>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구성은 하기 사진과 같이 되어있다.(사진은 제대로 못나온 점 죄송합니다.)



언어영역을 12년 넘게 공부했지만, 우리에게 글쓰기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과 같다. 무엇에 대해서 쓰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하는지 막막하다. 머리 속이 텅 빈다. 그런대로 인터넷에서 댓글을 쓰거나, 카톡, 문자를 주고 받는 일은 곧잘 하지만, 어떤 대상을 설명하거나 서술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


저자도 다루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과 달리 '수사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할만큼이나 글쓰기에 대한 교육에 시간을 내지 않는다. 얼핏 미국, 유럽 등에서는 글쓰기와 관련된 강의가 필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상 우리에게 글쓰기란 작가와 기자, 칼럼리스트들의 몫일 뿐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우리가 있는 곳에서 봄직한 글들을 통해 어른답지 못한 글쓰기를 다룬다. 오답노트로 우리 글쓰기의 현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무도 많은 글을 통해서 아이같은 쓰기행태를 드러내었다는 것을 읽는 내내 깨달았다. 

블로그의 글들을 모두 닫아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고, 마음 먹고 다 읽어 편집하고 싶기도 했다.


'~모르겠다.', ~느낀다.'라는 표현은 수준이 떨어지는 요소이며 자신 없는 언어 문화를 드러낸 거라고 한다. 또한, 넉두리성 글도 주의해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감정의 과잉으로 쏟아지는 표현에 대해 저자는 아마추어는 마구 던지고, 프로는 돌려서 은근하게 느끼도록 한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적은 개인적으로라지만 글을 쓰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적랄하게 지적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늘 신중하고,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저자는 글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른다운 글쓰기를 하기 위햇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지 여러 가지로 분류하여 글쓰기의 자세, 기술, 구성연습, 장르 연습 마지막으로 잘 쓰기 위한 습관을 일러준다.

초반에는 글쓰기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하지만, 후반부는 직장인들에게 기안문, 기획서 등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도 프롤로그에서 직장인에 특화된 글쓰기 특강을 적었다고 한다.


항상 글을 쓰기에만 바빴지 정작 읽고, 편집하는데에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장은 길어졌고,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연결이 안될 때도 있었다. 포인트는 찾을 수 없었고, 흥미로움은 없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글쟁이는 초고를 작성할 때와 거의 같은 분량의 시간을 퇴고에 쏟는다고 한다.

사실 글을 쓰고 어서 마치느라 분주해서 다시 읽어보지 못할 때가 허다하고,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야기 하려는 것보다 내 생각, 느낌,  아이디어만 글에 적어내려가기 바빴다.

글쓰기에도 전략이 필요하고, 핵심이 필요하며, 첫인상(첫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글쓰기 방법이었다.


한편으로 글을 쓰는데 나는 진정한 생각을 갖고 썼을까 의문도 들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냥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당위성에 따라서 과제 끝내듯이 한 것은 아닌가 되짚어 봤다. 딱히 내가 쓰는 것은 딱히 전략적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냥 쏟아내기 바빴지 그것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구성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내 글은 텅 빈 수레같았겠구나...

내 글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있었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오탈자가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구성에 대해서는 약간 번복된 것을 쪼개어 다른 구성에 넣은 것으로 보였다.


3장의 기술학습에서 세번째 '포인트 찾기'와 네번째 '핵심부터 적기'에서 처음에는 포인트와 핵심이란 단어자체가 번복되었는데 이것들을 나눈 것이 조금 의아했다.

차라리 포인트(핵심) 찾아 적기라고 하면 어땠을까? 

그래도 포인트찾기는 글의 전체의 핵심을 찾아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찾는거라고 보고, 핵심문장을 쓰는건 글의 흐름, 방향을 잡아 흐트러지지 않게 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저자가 두 가지를 따로 두고 이야기 하할 수도 있겠다.


하나더, 트집을 잡는 것 같아보이기도 하지만,

p.123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문장으로 나타내는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꼭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시로 들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나는 특별히 정치적으로 어느 쪽을 옹호해서 지적하는게 아니다) 꼭 정치적인 그리고 글이 아닌 말을 예시로 들어야 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예시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나는 채식주의자다'라는 것을 자기소개로 하는데 한강의 소설이 바로 생각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거론하는 것은 소설을 거론하기 위해 채식주의자라는 자신을 소개한 예를 끌어들인 것도 같아서 설득력있거나 적절해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가 저지르는 글쓰기의 심각한 오류를 잘 지적하였고, 그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는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러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용기'를 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도 태어날 때부터 펜을 물고 자라지 않았을 거라는 말은 내게 약간의 흥미로움과 위로의 꺼리로 적합했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의 방법 뿐 아니라 글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과 태도로 임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글을 잘 써야 합니다. 글쓰기를 배워야 합니다. 글쓰기 전문가로서 저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남들보다 일을 끝내는 시간이 빠르며, 같은 시간 안에 남들보다 훨씬 나은 결과물을 낸다는 의미다."

p.72


많은 글이 진실하지 않습니다. 글이 진실다고 보는 관념은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히면서 생긴 착각입니다. 글쓰기 초보 때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솜씨가 늘면 자유자재로 속내를 드러냅니다. 이윽고 글을 잘 쓰는 단계에 이르면 거짓을 미화하거나 진실을 깎아내릴 수 있습니다. p.94


일단 초고는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대로 쓰십시오. 완성한 다음 퇴고 과정에서 서두와 결말을 고민하는 쪽이 좋습니다. p.142


만약 글쓰기가

고작 나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타자기를 내다버렸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행위다.

작가는 마치 운동선수처럼 매일매일 '훈련'해야 한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던가?

수전 손택(미국의 비평가)

p.235


요약의 방법으로는 우선 절반을 줄이고, 또 절반을 줄이는 '1/2 감속법'을 권합니다. 그 과정에서 쭉정이는 다 떨어져 나가고 최후의 한 문장이 남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만큼 매우 중요하겠지요. 이것이 앞서 나온 '핵심 문장'입니다.

p.243


 제가 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디어에 대한 글을 매일 쓰라는 겁니다. '일일일상'입니다.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으로 아이디어에 예민해질 수 있는 방편입니다. 직접 쓰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기억창고에 더 잘 보관됩니다. ..... 아이디어 상품부터 기발한 특허, 이색적인 비즈니스 등 소개한 글을 매일 찾아 읽으십시오. 그런 다음 그와 관련한 글을 쓰십시오. 단순 기록도 좋고,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이면 더 좋습니다.

p.268-269


글쓰기 교육은 두가지 측면이 모두 고려돼야 합니다. 사실을 서술하는 기술 향상과, 생각을 심화하는 사고 강화입니다. p.279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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