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의 둔하게 삽시다
이시형 지음, 이영미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어느 까페에서 받았다.

사실 이미 둔하다고 생각하는 내게 '둔하게 삽시다'라는 책제목이 한번에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여기서 어떻게 더 둔해???'


나는 태생이 무언가를 잘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둔함이란 그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과민함과 민감함에 대해서 둔감하라는 것이다.

그게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이 책을 선물한 분은 아주 나를 잘 파악하셨다.


30년이 훨씬 넘게 40년이 가깝게 살아가는 내게 과민,민감함이란 존재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사는게 아주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냥 남들은 넘어가는 것 같은데 나의 경우에 그렇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행히도 매사에 그렇지는 않다. 특정분야(?)에서 그것들이 작용한다. 하지만 정말 괴롭다. 신경을 곤두세워서 계속 그것들을 묵상(?)하는 것이 결국 나를 죽이듯 괴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선택한 때가 괴로운 순간이었다.

주셨으니 읽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첫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된 타이밍이 너무 적합해서 내 인연과도 같은 책이라 여겨졌다.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비합리적으로 그리고 이미 불쾌함으로 생각하는 방식, 습관이 내게 문제였다는걸 알아차렸다. 늘 명확하지 않은 그 예민, 민감의 존재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그걸 지목받은 것만으로도 굉장히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나의 사고방식과 흐름의 습관을 고치고 싶어졌다. 아마 이렇게 원인을 제대로 직면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의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특히 빠른 변화속도를 따라가는 한국 사람들 안에 있는 스트레스와 과민함을 주목한다. 사회적인 환경들에서 비롯된 현대인의 감정상황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듯이 사회적인 현상이 단지 그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개인의 도량 문제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해결을 비롯해 개인적으로도 개선과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알만한 방식을 제안한다.

제목처럼 '둔하게 살자'이다.


문제에 대해서는 원인과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분석하고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데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쉬운 면이 있었다. 물론 개인의 감정, 상황 등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양해서 책 한권으로 그것을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과잉의 시대, 불행,,, 이것들이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외부적인 행동이나 노력으로 긍정적이고 둔한 삶을 제시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걸 뛰어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자가 아무래도 뇌과학자이자 정신과 전문가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사회적인 현상을 가지고 문제를 캐치해 낸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 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잘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과잉경쟁, 빨라져가는 변화속도, 그리고 극한 갈등 등이 우리의 환경이다.

그 안에서 과민과 민감함에 과연 자유로웠는지 또한 우리 속에 감추어져 파악하지 못한 열등과 괴로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그렇다고 무거운 책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며 우리의 긴장을 풀고 새롭게 나아가게끔 돕는다. 


자극과 감정 사이에 끼어 있는 부정적인 사고를 찾아내 이를 교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화는 물론이고 감정은 내 의지대로 조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감정은 만들어낼 수도 없다. 기분 나쁜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바끌 수 있다면 세상 살기가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슬퍼할 이유도 없는데 슬픈 감정을 만들어보라. 억지로 슬퍼하는 게 되던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무슨 짓을 해도 지금의 내 감정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그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케 한 생각을 바꾸는 길밖에 없다.....

 생각이 이렇게 되어간다면 녀석을 만나는 순간 기분 나쁜 감정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진작 이렇게 생각했어야 했다. 이게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간 나 자신이 화가 난 사건을 두고 지나치게 과장, 확대 해석하고 몇 년을 속앓이해온 게 아닌가. 나의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이 즉각 화를 내게 한 원흉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은 점점 악화된다. 이게 과민증후군이다. 녀석 목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고 불쾌해진다. 과잉이요. 과민인 것이다.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는 데는 반드시 불쾌한 사고(思考)가 선행한다. 그리고 그 사고는 대체로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에 따라 감정 역시 비합리적으로 된다. 이를 합리적인 생각을 하도록 바꾸는 일, 이걸 합리적 정서치료Ret, Rational Emotive Therapy라 부른다. 성(화)를 촉발하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합리적으로 바꾼다면 감정 역시 합리적으로 순화된다. 성내거나 고함을 치거나 다투는 행동도 사라진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이를 '합리적 정서 행동요법REBT'이라 불렀다.

p.37-38


그런데 아무리 우리 사회가 신경과민을 촉발하는 환경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긴장은 하되 적당히 하고 또 때로는 느슨하고 수월하고 대충하기도 하는 등 강약조절을 잘한다. 자기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신경과로를 잘 해소하고 치유해나간다.

 문제는 어떤 환경에서든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비슷한 환경인데도 남들과 달리 과잉 및 비상 반응을 하는 등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우선 상황 판단부터 과잉이고, 또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데도 걸핏하면 과잉 반응을 하거나 비상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과민증후군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환경이 아무리 고약해도 결국은 개인의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정책 변화를 기회로 여기고 도전적으로 동기 부여를 함으로써 발전의 계기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화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고 구태의연하게 해오던 대로 하다가 어느샌가 낙오자로 전락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문제는 개인이 처한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를 하느냐에 달려있다.

p.76-77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자면 여간 노력으로는 안 된다. 행여 싫어하지나 않을까 계속 상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이 있으면 그만 안달이 난다.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바짝 긴장해야 한다. 전형적인 과민증후군이다.

 이런 사람의 해결책은 목적의식을 갖는 일에서 시작된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사노라면 줏대 없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목적을 위해 일로 매진만 한다면 남들이 뭐라 하든지 왜 신경이 쓰이겠는가. 그리고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되는 사람에게까지 왜 신경과민이 되어야 하겠는가. 설령 원수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있다.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소신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따. 남이야 뭐라 하든, 자기가 살아 있어야 한다.

p.126


인생의 어떤 힘든 일에도 그 속에는 숭고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걸 읽어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도 마찬가지로 힘든 스트레스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잘 알려주어야 한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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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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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우자가 죽었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그 배우자가 내가 생각한 것과 반대의 삶을 살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배우자의 과거의 삶에 대해 궁금할까?


책의 부제처럼 그는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로 이 책에서 그의 여정이 기록되어있다.

아내의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 ....그녀의 시간을 따라 여행하는 것...

어쩌면 익숙하기도 하고 로맨틱하여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사용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흥미롭게 느껴진다. 궁금하다. 그리고 아내의 시간을 찾아나서는 마음은 어떨까?

기대와 궁금증을 살며시 안고 읽어내려갔다.


주인공 아서는 아내를 잃은지 1년째 삶을 보내고 있다.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그는 규칙과 일정한 질서를 따라 사는 쳇바퀴 도는 듯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의 집으로 항상 음식을 가져다 주는 버나뎃을 피해다녔고, 그의 아내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사무쳐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선 누구의 말과 같이 최근에 유명했던 책 <오베라는 남자>가 떠오르기도 한다.

비슷하게 괴팍하고 자신의 질서세계에 빠져 사는 노년의 남자....

오베가 그의 아내와 이웃에게서 삶의 이유를, 의미를 찾았다면,

아서는 그와는 약간 상이하다.

아서를 행동하게 하고 그의 삶을 바꾼 것은 그의 아내가 죽은지 1년 만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참(charm)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그의 행동을 자극하여 그녀의 과거를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의 삶의 의미를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아내의 시간을 여행하는 간단한 소개와 달리 그가 참을 따라 발견하게 된 아내의 과거 그리고 그의 여정은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그가 알고 있었던 아내는 훨씬 매력적이었고, 다채로웠다. 그게 한편으로는 질투를 느끼게 했고, 그를 깊이 좌절케 했다. 그녀의 반전의 삶이 그리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미묘하게 감정을 긴장시키고 이완시킨다.

그가 다닌 여행에서 그가 후회하고, 

새로운 기회를 갖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될 때,

독자들도 그와 함께 자신의 삶에서 후회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새로운 기회가 내게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그것을 어떤 의미로 바라볼지 고민해볼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현재가 힘이 들고, 이 시기가 계속 될 것 같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 잡혀있다. 지금 살기에 급급해서 서둘러 무언가를 해치우는게 먼저가 될 때가 많다. 또한, 내 삶에 어떠한 기준과 편견이 강력하게 들어서 있다. 예를 들어 아서는 어떨결에 누드를 하게 되는 건 내 상식에서는 절대 용납이 안되는 일이다. 그런 상식에 어긋나고 이해가 되지 않은 일들 속에서 머물러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분노할 것인지,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지,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데서 신선함을 느꼈다. 현실에 안주하고 안정만을 쫓는 삶을 살고 있는 내 시야가 약간은 트이는 느낌이었다. 왜 좁은 소견을 갖고 삶에 여유를 버리고 살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언가 옳고 그르는데 치우쳐있는데서 다른 의미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선을 확대시켜볼 수 있었다.

 

그러고나니 현실에 갇혀있는 내가 보였고, 그것을 뛰어넘어 무언가 시도해보고 싶은 욕구도 슬금슬금 올라왔다. 무언가 다른 것을 꿈꿔보고 싶은 생각이 어느 장면에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장면들이 내게는 상큼한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참 인상적인 것은 섬세하고 차근히 따라간 아서의 심리선의 전개였다. 그 어떤 책에서보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처럼 따라가고 있었다.

웃긴 건 깊이 매료되어 빠져드는데 실상은 많은 페이지를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참 신기하다 싶었다.(대체로 책에 빠져들면 페이지 수가 휙휙 늘어나는데 이 책의 경우는 반대였다. 내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아픈 다리 관절이 내꺼마냥 아프게 느껴졌고, 그의 소매치기 당함이 내가 당한 듯 한탄스러웠다.

자녀와의 허심탄히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한 것이 내 그것인 마냥 가슴저리게 느껴졌고, 내가 생각한 미리엄과는 너무도 다른 사실을 접했을 땐 비오는 바다앞에서 괴로워하는 그처럼 괴로워했다.

어찌 이리 독자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사로잡아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하는지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게 보였다.

주인공 아서의 행동과 심리에 빠지다 보니 함정(?오해?)에 빠질 때도 있어 반전타격을 당한 듯 충격받고 안도하곤 했다.


간단히 아내의 시간을 걸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가 단지 흥미로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책을 집어든다면, 나는 그 누군가가 삶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여기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기억이 혹은 우리의 과거가 후회스럽고 실수해서 나약했을지라도 그것을 발판으로 혹은 그것을 정리하여 살아내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그게, 요즘에는 말입니다."아서가 말했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은 게 문제예요. 내가 젊었을 땐 그저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고 살았거든요.

그땐 크리스마스에 양말 두개 만 받아도 행복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전부 다 갖고 싶어 하죠. 전화기 한 대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별의별 기능이 다 있어야 해요. 컴퓨터도 있어야 하고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셔야 하죠. 그저 평범한 음식으론 안 되고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비싼 병맥주를 시켜야 하고.,,,161p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요. 그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말이에요. 아마 아내 분은 아서를 만나기 이전의 삶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떄로 삶의 한 장(章)이 끝나고 나면 다시 돌아 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 p.216


"여행을 하면서 미리엄이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이 날 기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구나. 미리엄은 더 이상 여기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아직 살아 있어."

p.272


아서는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기억은 마음과 기분의 명령에 따라 잊히거나 복원되고, 강화되거나 흐려진다. 아서는 참을 준 사람들에게 미리엄이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생각하며 온갖 감정들을 빚어냈다. 그는 미리엄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리엄이 그를 사랑했다는 것, 댄과 루시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p.392-393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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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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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 다른 여성이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처지에서 하나의 위기를 만난다.

그녀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관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견뎠고, 순종했고, 순응했다.

책 속의 그녀들은 과연 자신들의 한계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책은 말한대로 다른 나라, 다른 신분의 처지, 환경, 위기의 상황에 있는 세 여성의 이야기다.

작가의 필체는 굉장히 무덤덤하게 서술하는 듯 하지만, 상황을 은유적이고 감각적인 단어들을 선택해 상황의 묵직함을 과감없이 표현했다.

오히려 담담해보이는 투와는 달리,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각자의 길에 놓여진 여성들의 아픔과 처절함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여성의 인권은 점차 긍정적으로 신장되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관습과 환경은 책 내에서는 제자리 걸음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인도는 1955년 불가촉천민법으로 신분제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차별이 여전할 뿐 아니라 여성에게 있어서는 특히나 더욱 비참한 현실이 존재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여성의 인권이 비교적 나아진 선진국에서조차 어느 정도의 차별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여성은 더욱 피마르는 상황을 이겨내며 살아내야 한다.


그러한 이들을 좌절하고 낙담하게 하는 상황들이 온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딸이 자신과 같은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갈 미래가 불보듯 뻔하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사업 부도와 가정경제의 악화라는 상황이 내 삶에 들어왔다.

-그동안 뼈를 깎아내며 올라온 자리인데 '암'이라는 병으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되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몰라도(?) 이 소설에서의 인물들은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그들에게 분명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새로운 희망이 찾았고, 극복할 용기를 얻었다.

기회를 찾아냈고 그 안에서 자신의 환경을 넘어설 의지를 내보인다.

속았고, 당했고, 쓰라린 환경에서 그들은 신에게서, 한 사람에게서, 그리고 그들에게서 받은 머리카락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빛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간다.


읽으면서 각 나라에서 여성의 상황들을 서슴없이 이야기 한 것은 좋았다.

그런데 이 여성들을 마지막에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따로 저자의 말이 없기 때문에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기로는...

여성이라는 같은 성별로 차별받는 환경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각자의 위기를 극복하고 주어진 환경에 부딪혀보는데에 서로 공생되는 상황에서 뭔가 희망을 주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강한 의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그러한 한사람의 의지가 다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하지만 더욱 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들을 연결함으로 서로가 힘이 되고 그것이 변화로 나아가는데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각자가 머리카락이라는 소재로 연결되었다는 걸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가지고 새로운 희망을 보았고, 용기를 얻었다. 머리카락은 이 책에서 큰 역할을 하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왜 저자는 머리카락이라는 소재를 선택했을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머리카락은 여자에게 하나의 상징과 같다.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기르기도 해왔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하나의 표현수단이고 여성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나라와 상황 모든 것을 초월하여 어쩌면 약속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듯한 여성에게 있어 가치있는 소유물이다.

또한, 머리카락은 누구에게나 계속 자라나는 것일 뿐 아니라 잘라내도 전혀 인체에 무해하다. 이것이 누구에게는 버려야 할 것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필요한 것이 될 것이 된다. 썩지 않고, 지속되며, 무해하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소재 선택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성이라는 성을 연결할 수 있고, 충분히 융통가능한게 바로 머리카락이다.


페미니즘 관련한 책들이 최근들어 많이 보인다.

여권 신장과 함께 더욱 여성들의 음지에서 자행되었던 일들이 이제는 드러나고 있다.

더이상 아픔을 자신 안에 품지 않고 그것을 꺼내어 극복하고자 일어나고 있다.


이전에 그런 페미니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가 나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과 의도에 따른 것이지만 그 책을 읽고난 후는 씁쓸함과 찝찝함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생각한 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들이 양지로 드러났지만, 그 상황에서도 작가는 희망을 보고자 했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더이상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나 또한 여자로써 필요한 태도를 발견했으며,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을 여성만 보고 용기를 얻는데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좀더 넓게 보고 씁쓸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꿈꿀 수 있길 소망한다.

여성이라는 성을 떠나서 평등하게 다뤄져야 할 인권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또한 이를 함께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한다.

표지에 함께 잡은 손 그림과 같이....

 

사라는 아이라는 무게를 떠맡지 않아도 되는 남편의 홀가분함, 남자들만 가지고 있는 매혹적인 가벼움을 질투했다.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아이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전혀 미안한 생각 없이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출근할 때 남자들은 필요한 서류만 챙겨나갔지만, 사라는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다니는 거북이처럼 죄의식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p.40

'달리트는 얼마나 많은 호수를 우리의 피로 채워야 이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채,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다음 생은 더 좋을거야.'라는 희망을 품고서.
 고통스러운 윤회를 끝내기 위해서는 갠지스로 가야 한다. 신성한 강물에 몸을 씻으면 영혼이 윤회에서 벗어나 휴식할 수 있다고 했다. 절대에 녹아들어 우주와 하나되는 니르바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행운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종착점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듭해서 생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질서는 신이 내린 형벌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은 끝없이 반복되니까. 순응하고 다음 생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달리트는 굴종의 삶을 견뎠다.

스미타는 다르다. 그는 굴복할 생각이 없다.
그는 삶을 잔인한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딸마저 굽실거리며 살게 할 수는 없다. 모두가 잠들어 버린 어두운 움막 안, 비슈누 신의 제단 앞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안 돼, 랄리타가 그들 앞에 무릎 꿇게 할 수는 없어.'
그의 반란은 말없이 고요하다. 그의 결심은 정적에 가려 들리지도 않고 어둠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오늘, 그의 반란이 움텄다.
p.88-89

"달리트 여자가 최고 자리에 올랐어!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여자는 헬리콥터를 타고 다닌대. 그 여자는 허리 굽혀 순응한 것이 아니야. 죽음이 자신을 현생에서 해방시켜주기를 기다리지 않았어. 대신 자신을 위해, 자신과 같은 처지의 모두를 위해 투쟁했어!"
p.120

"다른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지는 마. 너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해. 넌 의지가 굳은 아이야. 나는 네 능력과 힘을 믿는단다. 끈질기게 밀고 나가야만 해. 삶이 네 몫으로 중요한 일을 마련해놓았어."
p.249

"병과 싸우면서 자신을 방치하지는 말아요. 자신을 존중하는 것도 회복을 위한 투쟁이니까요.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당신의 동맹군이어야지, 적이어서는 안 돼요."
p.284

상점을 나서면서 사라는 세계 저편, 인도에서 자기 머리카락을 내어준 사람을 그려보았다. 머리카락을 참을성있게 고르고 손질했을 시칠리아의 장인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온 세상이 그의 회복에 협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생명을 구하는 자가 온 세상을 구한다."
탈무드의 구절이 떠올랐다. 오늘, 온 세상이 그를 구하러 나섰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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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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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 사내, 3백일, 1만 리의 일본 견문록!!
이 책 <조선통신사>는 그런 일본으로 간 통신사의 이야기다.


 역사관련 소설은 대체로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다룬 혹은 왕에 대한 업적과 그와 관련된 비화로 엮어진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외로 간 왕의 지시를 받아 왜로 넘어간 대다수 사람이 인물인 이야기는 낯설다.

저자의 말 - "왕후장상과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다."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소설들에 대조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남다른 개성이 돋보이는 듯한 점이 이 소설에 관심을 가져볼만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간 영웅과 왕에 대해서는 여러 소설을 통해 접하며 그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들을 알았고,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존경을 마다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 안의 새로운 역사관과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500인의 사내를 통해서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조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1763년 일본으로 파견된 '계미사행단'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 따르면 강호까지 다녀온 마지막 사행단인 계미사행단의 사행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이전 사행단과 달리 집안의 편지를 받지 못했고, 영조의 강력한 금주령으로 왜에서 조차 술을 마시기 힘들었다. 또한, 사행원 하나가 일본인에게 살해되는 일까지 일어났다.(책 표지 참조)
이러한 계미사행단의 남다른 점은 소설을 읽으면서 충분히 제시되어져 알 수 있다.

초반에는 왕명에 따라 왜로 가려는 통신사를 선발하는 과정이 나온다.
외국에 선발되어 간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왠지 영광스럽고 신비스러운 세상을 접한다는 상황은 참으로 매력적일만 한데, '왜'라는 나라로의 통신사는 그다지 환영받을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조선의 상황은 중국에서 여러 문물과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으로의 파견은 환영받을 일이었단다. 하지만 일본으로 가는 것은 그 길이 바다길이어서 풍파 등으로 위험할 뿐 아니라 우리가 그들보다는 비교적 선진국으로 보았기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럴 때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박지원의 <열하일기>이다. 상식적으로 제일 많이 들어본, 우리 선조 중 한 사람이 외국으로 간 이야기중 유명한 여행기다. 이 책은 청나라 즉, 우리보다 선진문물을 향유하고 있는 나라에 가서 그들의 실상을 직접 목격하고 온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여러 형태의 발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책이다. 하지만, 왜에 간 이야기는 존재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다지 눈여겨보거나 그들에게서 배울만한 점을 찾을 것이 없다고 여겨왔던 선조들의 생각도 반영이 되었을 것 같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따라 500명의 신분과 구성에 따른 이야기들을 조합했다. 이 이야기가 짤막한 스토리가 조선통신사로 가는 그 모든 과정들을 연결하여 나열되었다.

사실적인 사건 서술과 대화로 구성되었으며, 주변에 대한 묘사나 정서적인 표현 등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사회가 흐름에 부응하지 못했고, 성리학적 관념과 신분사회에만 얽매며있는 상황을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잘 표현했다.
통신사를 뽑는 과정에서 뽑히고자 서로 밟고 밟히는 상황에서는 마치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 마냥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또한, 글로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의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지 못하고 수용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들이 주저없이 나타나는 곳곳에서는 현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던 듯하다. 그 말들이 양반이 아닌 그들을 섬기는 아랫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남은 저술들은 양반의 것만 존재하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의 생각은 현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문헌작가 김시덕님의 글 참조). 그들의 생각을 혹은 비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평민과 노비들을 작가가 대변한 듯 하다.

이 책에서의 통신사의 상황들을 보면 그 당시 조선의 암담하게 된 백성들의 현실과  국가적으로 침체되어져가는 상황들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양반들은 그들의 신분을 내세웠고, 백성들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파견된 통신사들에게 벌어진 이야기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들에게 합당하고 적합한 대우가 곳곳에 틈새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소설에서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관심있게 보지 못한 조선통신사로 그들의 발자취가 -시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보일지 몰라도- 현재 우리에게나 혹은 일본에 남아있으며 그들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이다. 모두 각자의 자신의 분야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에 따라 통신사에 처해진 상황을 바라보는 눈도 달랐다. 서로간의 이해관계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

특별하고 감동적이고 뜨거운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기 보다 그들의 그러한 행적들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자산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헤쳐온 숱한 과정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게 하는 거울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만 보더라도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조선통신사의 유네스코 등재와 함께 발간되었다. 이를 통해 그간 교과서에서 얼핏 지나쳐본 역사적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함께 우리의 현상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을 듯하다.        


"....원래 좋은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읽히지 않는 법이란다. 나라와 주군께 충성하고 어버이께 효도하자, 삼강하고 오륜하자, 좋은 놈 잘 되고 나쁜 놈 망한다, 사랑은 숭고하다, 이런 도덕 염불로 도배된 이야기나 팔리지. 진짜 이야기는 알아먹는 사람이나 알아먹는 것인지라 안 팔리는게 당연하다. 자기계발, 처세술 책보다 안 팔리는게 진짜 이야기야. 대중이 못 알아먹거든. 하지만 진짜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란다. 너에게 희망을 건다."p.60

"맹추야, 이래서 우리가 평생 양반짜리들 개로 사는 것이다. 울분을 모아 싸워야 하는데, 어쩌다 던져주는 뼈다귀 한 개면 다시 금방 꼬리치는 강아지로 돌아가니, 한심하다. 한심해."
....
"미련퉁아, 애초에 우리한테 먹을 걸 넉넉히 줬어야 할 것 아냐. 왜 지들은 일공이 안나와도 먹을 양식이 있고, 우리는 없는 건데? 그거에 대해 의심해봤어?"
"아뇨! 대가리 아프게 뭘 그딴 의심을 해? 주면 먹고 안 주면 굶는거지."
p.241

"이게 다 평생 비럭질로 살아서 그렇다. 이 나라와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 곰파본 적이 없으니, 화낼 줄도 모르고, 분노할 줄도 모르고, 뭐라도 주기만 하면 감읍해서 어쩔 줄 모른다. 이러니 평생 양반놈들한테 착취당하며 사는 것이다."p.87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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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157회 수상작이라고 하는 이 책은 아마존재팬에서 베스트셀러 1위까지 하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적잖은 기대를 안겨주고 있는 작품이다.

표지부터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것을 시작으로 수상작품인 이 소설에서 사토 쇼코란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을까?

"나는 달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날 거야. 너를 만나러 갈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 당신에게 돌아올게."

라고 겉표지에 쓰인 글귀로 받을 수 있는 소설의 인상은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 불변의 사랑정도다. 하지만 달처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상대를 만나러 돌아오겠다는 표현은 그게 깊이는 어떤 뜻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역자의 표현으로는 달의 차고 기우는 것, 즉 책 제목의 영휴라는 것이 환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달이 없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차고 기우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서 환생을 말한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반복해서라도 당신에게 돌아오겠다. 그만큼 상대를 향한 의지와 사랑을 보이는 듯 하다. 책을 읽고 그 표현을 다시 보았다. 사랑에 대해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주인공은 그렇게(환생)라도 할 수 있으면 해 보겠다며 애절함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구나 싶었다.

결국 하나로 맞추어보면 완성되는 퍼즐과 같이 띄엄띄엄 스토리가 조각으로 나누어져 구성되었다.

처음은 한 모녀와 중년의 한 남성이 만나는 장면이다. 그림을 건내는데 받는 여자아이의 말투는 당당하기 이를데 없고, 남자는 그가 가져온 그림을 내보였다가 자신의 딸 것이라며 움츠러든다. 또, 상황을 읽어볼 때 남자와 여자아이가 손가락에 꼽을 만큼정도만 만났을 것 같은 사이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여자아이는 그 남자와 도라야키를 같이 먹었다고 하고 남자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 도무지 어떤 상황인지.. 아직 안 오는 남성은 또 이들과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중년의 남자인 오사나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루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사나이의 딸인 루리는 7살즈음에 원인 모를 열로 일주일간 앓는다. 심각하다 여겨질 때즈음 회복하지만, 딸의 행동이 이전과는 차이가 있음을 그녀의 엄마이자 오사나이의 아내는 인지하게 된다.
그러다가 엄마와 아이는 그로부터 10년쯤 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가 가족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남자의 이야기에서 제목과 책 표지의 글들, 이게 바로 그것이었고,
저자가 인물의 사랑을 이어주고자 선택한 장치임을 알 수 있다. 

달과 같이 영휴를 하고자하는 주인공인 '루리'는 겉으론 사고사로 보이지만 의도가 있는 죽음을 통해 환생을 하는데 성공한다.
그녀가 지나간 여자아이들을 통해서 미스미와 만나기 위해 아이의 모습으로 시도하는 모습은 어쩔 땐 애처롭기까지 하다. 성인의 경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이의 경우 유괴와 실종, 성범죄 등 여러가지 문제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어른들의 관심과 신경을 비껴나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3명의 아이를 통해 최종적으론 미스미 아키히코와의 만남을 이루게 된다.

그 만남을 이루기까지 여자아이 3명의 주변관계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흥미롭게 구성되어있다. 마사키 루리는 그녀의 남편의 사장 딸인 루리, 그리고 한 평범한 사람의 딸 루리, 루리의 친구의 딸인 루리로 환생을 하게 된다. 그들 간의 얼키고 설킨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미도리자카 모녀는 오사나이가 그의 딸에게 있었던 일, 그리고 매체를 통해 접한 사건의 내막들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면서 오사나이 자신도 관심을 갖게 된 전생, 환생의 문제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반전의 희열을 하나하나 선사한다.

이 책이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루리와 미스미의 관계는 영화 <건축학 개론>과 같이 설레이는 풋사랑 같은 느낌을 갖을 수 있었고, 루리와 류노스케의 사이는 열정있지만 성숙하진 못하지만 온건한 느낌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충분히 생소한 소재이면서 신비스러운 상상력이 발휘되어서 재미있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어떤 인물들이 연결될지 생각해볼만하다. 또한, 영화(4월의 이야기)와 소설(안나 카레리나)를 연상케 하는 상황으로 그 상황을 더 쉽고 애틋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들 모두를 작가의 섬세한 인물해석과 흡인력있는 필력으로 잘 완성해낸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덧붙이는 말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열이 날 때 루리병(루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7살즈음 원인 모를 열로 앓다가 이후에 달라지는 현상으로 내가 지은 병이름^^)을 의심하며 이 소설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우리 아이에게 누군가가??......'


"언젠가 본 영화에서 어떤 책에 쓰여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어. 인간의 조상은 나무 같은 죽음을 선택해 버린 거지. 하지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그래서 아키히코 군 앞에 계속 나타나는 거야."
p.182

예를 들어 "이제부터는 만나면 만날수록 괴로운 마음이 될 거야, 서로에게"라든가 "만나면 만날 수록 불행해진다고 해도"라고 하는 순애보 드라마의 시나리오에서 주워 온 것 같은 대사 또한 솔직한 마음에서 한 말이었을지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불행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피할 수 없는 불행을 회피하기 위해서, 크게 모순되는 말이지만, 애초에 있을 수 없는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역전의 발상으로 자살을, 즉 '시험 삼아 죽는 것'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에 이르는 길을 모색했는지도 모른다. p.191

"사람이 죽는다는 건." 마사키는 거친 숨이 가라앉자 다시 시작했다.
"그건 정말 무참한 거야. 우리 아버지 죽을 때 이야기 들려줬지? 아버지는 환갑을 맞이하기 전에 췌장암으로 죽었어. 여위어 홀쭉해져서 피부는 갈색이 되고 퍼석퍼석 죽은 나무같이 돼서 숨이 끊어졌어.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무참한 모습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열심히 살아 냈다고. 생을 완수하고 그런 끝에 죽음을 맞이 한다. 인류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살아남은 우리들이 살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죽음을 돌본다. 그게 인류의 책무야. 야에가시 선배는 고귀한 생명을 그런 식으로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은 식의 건방진 유서쪽지로 조롱했어. 모독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할 수 없어. 난 계속 화가 나. 화가 멈추지 않아. 내가 아까부터 말한 모독의 의미는... 루리, 혀 내밀지 마."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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